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들이 있습니다. 그중 미역국은 의미가 참 남다른 것 같습니다. 생일이 되면 생각나고, 챙겨 먹지 않으면 허전하고 아쉬운 음식. 다 못 먹어도 생일날 미역국 한 그릇만 제대로 챙겨 먹으면 그래도 기본은 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특별히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아무다 다 잘 먹습니다.
저는 미역국을 정말 좋아합니다. 생일에 먹는 국이라지만 사실 그냥 먹고 싶을 때면 끓여 먹으니까요. 못해도 일 년에 너댓번은 끓여 먹는 것 같습니다. 보기보다 맛 내기도 아주 쉽고, 금방 후루룩 끓일 수 있으니까요. 많은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음에도 깊고 복잡스러운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소고기로 끓인 미역국에는 굵은 기름이 방울방울 떠 있습니다. 고기가 머금고 있던 기름과 고소한 들기름이 합쳐져 떠오른 기름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잘근잘근 씹히는 미역은 그 모든 것을 한데 어우러지게 만듭니다. 고깃국의 깊고 진한 맛과 해조류의 가벼움이 만나서 기가 막힌 맛의 조화를 이뤄냅니다. 참 생일 때만 먹기 아쉬운 음식입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요. 저희 집은 누군가의 생일이 아니어도 미역국을 곧잘 끓여 먹곤 했습니다. 제가 미역국을 워낙 좋아하던 탓에 식탁에 자주 올라왔습니다. 덕분에 생일이 아닌 날에도 저 역시 미역국을 스스럼없이 끓입니다.
오늘 마침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오래간 먹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사실 지난주 제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날은 워낙 겨를이 없어 불을 올리지 못했기에 늦은 미역국을 챙겼습니다. 생일에 연연하지 않고 미역국을 끓여 먹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새로 시작한 일에 적응하느라 하루가 가는지도 잘 모르는 요즘입니다. 그렇게 지나간 생일이지만 미역국을 먹으면서 조금이나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역국 덕분에 지나간 생일 간신히 붙잡았습니다. 덕분에요.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 있습니다. 가끔은 음식이 더 거대한 경우도 있습니다. 생일이어서 미역국이 아니라, 미역국이라 생일인 경우도 있습니다. 미역국이라도 먹으며 생일을 되뇌는 경우도 있습니다. 날의 힘이 아니라 음식의 힘으로 날을 세워 올리는 것입니다.
제게는 오늘이, 그리고 그날이 그랬습니다. 일 년 중 어쩌면 가장 개인에게 특별한 날조차 휘리릭 지나가 버렸지만 미역국이 살렸습니다. 미역국이 그냥 좋아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미역국에 의지한 날입니다. 오늘만큼은 그냥 좋은 미역국이 아니라 생일이라 좋은 미역국입니다.
미역국에 기댄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