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밥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아무 김밥이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도 편의점 김밥을 사 먹으며 느꼈다. 어쩌면 사 먹는 것과 해 먹는 것의 차이가 가장 큰 음식은 아닐까. 집에서는 전문점의 절대 흉내 낼 수 없다. 반대로 전문점에서도 집에서 싸는 김밥을 죽어도 흉내 낼 수 없다. 김밥은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음식이다.
희한하다. 김, 햄, 단무지, 맛살 등등 들어가는 재료는 공산품 천지인데 정작 말아놓고 보면 정말 천차만별이다. 아주 어렸을 때는 다른 집 김밥을 먹어볼 일이 많았다. 친구 집에 놀러 갈 때 친구 어머니는 김밥을 곧잘 싸주셨다. 소풍이나 나들이를 갈 때면 언제나 도시락은 김밥이었으므로 친구들과 서로의 김밥을 나눠먹기도 했다. 대게 비슷해 보이는 재료들이지만 눈을 감고 먹어도 우리 집 김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도전했다. 다른 음식들은 비슷하게 흉내라도 낼 수 있고, 사 먹을 법도 하지만 김밥만큼은 집에서 말아주던 김밥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도전한 것이다. 요즘에는 김밥 세트가 나온다. 김부터 단무지와 햄, 맛살 등의 재료를 세트로 판매한다. 나는 호기롭게 구매했다. 밥솥에 밥도 지었다. 찬 바라에 식혔고 참기름과 소금으로 밥 간을 했다. 대나무 발도 샀고 장갑까지 끼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밥은 너무 두껍게 펴졌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밥을 훨씬 얇고 넓게 펼쳐야 했다. 내용물을 얼마나 넣어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아 옆구리가 터지거나 빈약한 김밥뿐이었다. 속재료의 간도 들쑥날쑥이었고 왜인지 모르지만 김도 습기를 잔뜩 머금었다. 요리를 꽤 한다고 자부했지만 참 오랜만에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당연스럽게 맛도 달랐다. 물론 들어가는 내용물부터 우리 집 김밥과 꽤 차이가 있었지만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어쩌면 김밥은 집집마다를 넘어서 마는 사람마다 다른 음식은 아닐까 싶다. 그 무엇보다 손맛에 예민한 음식이며 그 무엇보다 난이도가 높은 음식인 것 같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실력이 는다는 것이다. 쓰디쓴 실패를 맛보고 몇 달 뒤, 나는 두 번째 도전을 이어나갔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었지만 나름 또 한 번 싸봤다고 준비도 척척했고 요령도 생겼다. 적어도 터무니없이 두꺼운 김밥이나, 빈약한 김밥은 나오지 않았다. 속도도 제법 빨라졌고 조금 더 나은 재료를 골랐다.
요리를 하다 보면 충만한 순간들이 여러 번 찾아온다. 이것도 그것들 중 하나다. 내가 더 나아지고 있음을 발견했을 때. 그래도 처음보다는 봐줄 만해졌을 때. 스스로 자신감이 붙었을 때. 내가 발전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기 유독 어려운 요즘에 요리는, 그리고 김밥은 나를 저 위로 띄워주곤 한다.
그럼에도 신기한 것은 맛이었다. 모양은 그럴싸해졌지만 맛만큼은 처음의 그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엄마의 김밥과는 절대 같지 않은 그 맛. 어딘가 묘하게 이질적인 그 맛. 처음은 우연이었을지 몰라도 두 번째는 아니다. 이게 내 김밥 맛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게 내 손맛이라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세상에 같은 김밥은 없다. 그 같지 않은 김밥들 중, 내 김밥도 하나라 생각해야겠다.
세 번째 김밥을 말 때면 분명 모양은 더 진화와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 손맛과 김밥맛을 가진 체, 김밥 도전기는 어쩌면 쭈욱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