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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Jan 17. 2024

핸드드립도 합니다

  핸드드립도 합니다. 집에서 곧잘 내려 먹습니다. 저는 커피를 참 좋아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커피를 만들었습니다. 한 때는 커피 만드는 것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2평 남짓한 바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제법 재미있었으니까요. 하루종일 원두 냄새에 파묻혀 살고 음료 만드는 게 제 천직이라 여긴 적이 있었거든요. 잡생각을 할 필요 없었거든요. 몰아치는 주문을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버렸습니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들면서 손님의 미소를 보는 것이 즐겁다. 커피 한 잔에 영혼을 갈아 넣고 싶다. 세계 최고의 커피를 추출하겠다. 뭐 이런 거창한 다짐은 없었습니다. 그냥 재미가 있었으니까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선택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요, 재미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지 뭡니까. 


  많이는 아니지만 같이 커피 하는 사람들을 꽤나 만났습니다. 제 또래부터 부모님 뻘 분들까지도요. 단순히 아르바이트생부터 이것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까지도요.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나 정도면 커피를 꽤 한다고 생각했던 그 자신감은 사그라졌습니다. 제 실력은 너무 미천했고 그 뒤에 있던 열정도 너무 미지근해 보였으니까요. 


  요새는 평생직장은 없다고들 하지만 적어도 이십 대를 바쳐 일할만큼의 열정은 제게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이런 고민을 하는 것부터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열정과 능력으로 저울질한다는 것은 이미 마음을 떠나보내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가 하는 아주 그럴듯한 변명이었습니다. 남들에게,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말할 수 있는 아주 근사하고 나이스한 변명이요. 사실 두려웠던 겁니다. 지금도 커피는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바 안에서 일하는 것도 적성에 맞구요. 그러나 알아버렸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고된지, 그리고 얼마나 극단적인지. 


  솔직히 저는 윤택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풍요롭지는 않아도 넉넉하게는 살고 싶었습니다. 슬프게도 커피로 제가 생각하는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고단한 등반을 해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압니다. 얼마나 단편적이고, 편협하고, 겁이 많은지요. 커피로 충분히 근사하고 보람된 삶을 살 수 있는 것 역시 압니다. 어쩌면 제가 하는 생각이 누군가의 삶을 제단하고 예단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미 그런 생각을 품어 버렸습니다. 내가 커피를 사랑하지 못하는구나. 이것저것 재고 있구나. 나는 겁을 먹었구나. 


  그것 역시 압니다. 커피 이외의 것을 택하더라도 제가 생각하는 윤택함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요. 어쩌면 커피보다 더 힘들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어쩌겠습니다. 내 스무 살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커피에게, 그리고 커피가 나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때때로 굉장히 이성적이고 싶어 하지만 결국은 감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군요. 그 어떤 논리도 이유도 사실 제 마음 앞에서는 크게 힘을 쓰지 못합니다. 내 감성이, 내 마음이 커피로부터 빗겨나갔으니까요. 그 어떤 말도 맞습니다. 그 어떤 말도 틀리고요. 나는 그냥 이런 마음을 품어 버린 겁니다. 


  가장 오랫동안 일했던 매장에서 야매로 핸드드립을 배웠습니다. 별 다른 기술도, 지식도 없던 상태에서 부단히도 노력해 먹어줄 만한 커피를 내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어이가 없습니다. 손의 감각이 이토록 중요한 추출법인데 나는 왜 자신했을까. 왜 사장님은 나에게 핸드드립을 맡겼을까. 손님들은 왜 컴플레인을 걸지 않았을까. 


  그때의 기억, 그때의 생각을 되살려 핸드드립은 합니다. 집에서 먹을 요량으로 몇 가지 도구들을 구비했습니다. 맛도 들쑥날쑥, 향도 제각각입니다. 그럼에도 내려 마시는 이유는 실마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나는 이렇게 쥐뿔도 모르지만 어떻게든 커피를 부여잡고 있었구나 하는 실마리. 내가 이런 것도 했다는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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