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식작가 Jan 03. 2024

나의 소울 햄버거

  제가 생각해도 저는 좀 특이한 어린이였습니다. 초콜릿을 싫어했고 피자를 멀리했습니다. 치킨은 몇 조각 못 먹었고 느끼한 음식을 안 좋아했습니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은 야채를 덥썩덥썩 잘 먹었죠. 저를 건강하게 키우려는 엄마와 아빠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그건 실제 어린 시절의 제 입맛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햄버거를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시골에 살았고, 엄마는 요리 솜씨가 정말 좋습니다. 제 요리 실려과 그 습관은 대부분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외식과 중식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일 년에 손꼽을 정도였죠. 얼마든 나가서 먹을 수 있었지만 엄마와 아빠가 썩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집밥을 가장 좋아했죠. 그간 도시에서 살며 질리게 먹어왔던 탓일까요. 그래도 저는 불만이 없었습니다. 저는 학교를 다니며 점심에는 급식을 먹었고 간간히 매점을 갔으니까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는 아예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더욱 개의치 않았죠.  


  그리고 그렇게 서서히 집밥과 멀어지면서 입맛도 바뀌었습니다. 초콜릿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피자와 치킨 같이 기름지고 느끼한 음식도 이제 좋아졌습니다. 조금은 제 또래 같은 입맛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스무 살에 독립을 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본가를 떠났습니다. 학교 앞, 원룸에서 첫 자취를 시작했죠. 제가 독립을 가장 실감했던 순간은 밥을 먹을 때였습니다. 엄마가 해주던 집밥과 학교에서 나오던 급식처럼 짜인 식단에서 벗어나 매일, 매 끼니 무엇을 먹을지 선택할 수 있었고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모든 음식이 언제든 배달되고, 집 근처에 넘처나는 식당은 제가 살던 작은 시골 도시와 비교할 바가 안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햄버거나 어쩌나 맛있던지요. 폭신한 빵에 끼워진 고기와 야채와 치즈는 입안을 풍성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줄줄 흐르는 기름과 소스는 마음마저도 풍족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어린 시절 안 먹었던 것을 몰아서 먹는 것처럼 미친 듯이 먹었습니다. 아무리 참고 참아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사 먹었습니다. 술을 먹고 난 다음에도 햄버거로 해장했습니다. 한동안 제 주사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면 햄버거를 주문하는 것이었으니 말 다했습니다. 


  고작 열아홉에서 스무 살로 변한 것뿐인데 주변은 너무 달랐던 겁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를 비로소 느꼈습니다. 원 없이 놀고, 원 없이 행복했습니다. 햄버거도 원 없이 먹으며 스물의 특권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먹고사는 것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쾌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사 먹었습니다. 신제품이 나오면 꼭 사 먹어봤습니다. 늘어가는 햄버거에 대한 경험과 함께 살도 조금씩 붙어 갔습니다. 동시에 잔고도 빠르게 줄어갔습니다. 좋아하는 것만, 맛있는 것만 먹으며 살 수 없구나.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되는구나를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먹을까요. 요리하기 귀찮은 날이면 가끔 사 먹습니다. 원 없이 놀지도 않습니다. 원 없이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차근차근하고 있습니다. 다가올 것들에 적당히 걱정하며 적당히 버텨내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것에 대한 선택과 결정이 이따금씩 무겁다는 것을 뭉근하게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 햄버거를 먹을 때면, 정말 원 없이 먹었던 스무 살이 아스라이 그리워지곤 합니다.   



이전 03화 라면보다 어려운 파스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