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는 분당 서울대 병원 응급실 앞에 멈췄다. 택시에서 내렸지만 걸을 수 있고 의식이 있어 말도 제대로 할 수 있는 내가 스스로 걸어서 응급실로 들어가기에는 무엇인가 석연치 않았다. 분명히 방금 전에는 죽을 것 같아 차를 도로에 놔두고 택시를 타고 여기까지 왔지만 막상 응급실로 들어가려니 오버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외래 창구로 가야겠다.
이 나이 먹도록 외래 접수는 처음 해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데스크에서 증상을 말하자 내 안색이 좋지는 않았던지 바로 응급실로 가보라고 한다. 다시 응급실로 갔다. 그 사이에 좀 전의 죽을 것 같았던 경험은 또 잊고 다시 괜찮아진 것 같다. 이상하다. 응급실만 도착하면 좀 살 것 같다. 아님 응급실까지 도착하기 전까지 시간이 좀 흘렀으니 그 사이에 괜찮아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응급실 담당 의사에게 지난 요 며칠 일련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아울러 심장에 분명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확고하게 의견도 전달했다. 일본의 응급실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검사를 했다. 몇 가지 검사를 하면 할수록 더욱 괜찮아지는 느낌이다. 의사도 내가 현재로서는 응급을 요하는 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외래 진료의 심장내과 진찰을 받아 보길 권했다. 오늘은 공휴일이니 내일 받기로 했다. 내일 또 휴가를 내야겠다. 응급실에서 심장내과 예약을 해줬고 나는 병원을 나섰다.
다시 택시를 탔다. 여러 생각이 든다. 최근 일주일 사이에 응급실에 세 번이나 오게 됐다. 당시에는 정말 죽을 것 같았지만 응급실을 가면 별도의 조치를 받지 않아도 괜찮아진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응급실을 갈 정도로 힘들었나? 그렇다. 지금도 죽을 것 같은가? 아니다. 평소와 같다. 하지만 언제 또 쓰러질 것 같은 그 증상이 올지 몰라 무섭다. 지금은 괜찮다. 이런 생각에 잠겨 결론을 내지 못하고 좀 전의 지하차도 근처에 주차된 내 차로 향했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조심스럽게 다시 집으로 향한다. 20살부터 해왔던 운전이 어색하다. 운전이 소심해졌다. 시속 50~60킬로 미터 정도밖에 속도를 내지 못하겠다.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라 다행히 문제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휴대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몇 개 있다. 오늘 시술받기로 한 병원일 것이다. 예약시간에 오지 않았으니 당연히 연락이 있었을 것이다. 전화를 했다. 시술하러 가던 도중에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갔다가 이제 들어왔다고 둘러댔고 시술은 취소했다.
주말이지만 팀장에게 메시지로 내일 진료를 위해 휴가를 쓰겠다고 연락했다. 물론 상황을 알고 있던지라 그렇게 하라고 한다. 일본에서의 2회 응급실행이 별 것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반드시 원인을 알아야겠다. 어서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진찰을 받고 원인을 알고 싶다.
월요일 오전, 심장내과 전문 교수의 방에 앉아있다. 어제 응급실에 다녀와서 그런지 차트에 비교적 상세하게 최근 나의 상황이 적혀 있는 모양이다. 곧바로 24시간 심전도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가슴에 기기를 장착하고 24시간의 심장 박동을 확인하는 검사라고 한다. 기기를 착용한 채 일상생활을 하고 24시간 후에 이 기기를 반납하고 이후 결과를 확인하러 가면 된다. 그 와중에 의사에게 음주를 해도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다. 매주 월요일에는 여기저기 국내외 손님들이 회사 많이 방문하기 때문에 저녁에 술 마실 일이 많다. 나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참석을 하기 때문에 물어본 것이다. 일상생활을 측정하는 것이니 문제없다고 한다. 그렇게 기기를 장착하고 서울 소공동 회사로 향했다. 택시로..
사무실에 들어서니 맘이 한결 편하다. 무엇보다 십 년 넘게 다니고 있는 회사라 사람들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의 내 상황을 알고 있던 가까운 사람들이 다가와 이것저것 물었다. 당시 상황을 설명을 하고는 있지만 지금은 괜찮다. 지금 괜찮은 내가 어색하다. 예상했던 대로 그날 저녁 일본에서 우리 부서에 손님이 왔다.
대여섯 명이 모여 저녁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던 도중에 내가 지난주에 일본에서 쓰러져 응급실에 다녀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약간 술기운도 올랐기도 했고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듯이 나는 셔츠 단추 몇 개를 풀어 착용하고 있던 기계를 보여줬다. 대부분 생소한 기계인지 신기한 듯 바라보며 이것저것 묻는다. 어제 한국에서도 응급실에 다녀왔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 기계를 장착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한국에서도 응급실에 갔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 술을 마셔도 되냐고 반문한다. 괜찮다. 지금 여러 친한 사람들과 이렇게 술 한 잔 하고 있으니 세 번이나 응급실에 갔었던 그리고 그 당시의 공포와 그 느낌이 아득하게 멀어진다. 이대로 순간 이동하여 침대에 눕고 푹 자는 상상을 해본다.
다음날이다. 병원에 24시간 심전도 측정 기기를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결과를 확인하러 오라고 한다. 돌아오니 점심시간이다. 며칠 동안은 회사에 나가지 않을 생각이다. 난 영업 담당이니 출근하지 않고 적당히 계획을 세워 거래처로 바로 갈 생각이다. 시간이 좀 있으니 계속 걷기 운동을 한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얼마 전부터 매일 해왔던 같은 코스를 걷는다. 기분이 좋다. 쓰러질 당시의 공포와 극도의 긴장감은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아득하다. 정말이지 요 며칠간의 경험은 내가 경험한 것이 아닌 듯 한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보통 금연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든 순간이 술자리라고 하던데 나는 어제 그렇지 않았다. 담배는 소지하고 있었지만 일본에서 쓰러진 이후로 한 번도 피우지 않았다.
다음날 오후 병원에 24시간 심전도 결과를 확인하러 갔다. 매우 지극히 정상이라고 한다. 오히려 정상보다 더 정상이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한다. 내가 ‘다행이네요.’ 하자, 의사는 세 번이나 쓰러진 원인을 알지 못하니 다행히 아니라고 한다. 의사가 공황장애가 아닌지 의심된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정신병이라고요?”라고 물었다. 솔직히 이때까지 공황장애는 연예인들, 돈은 많지만 나약한 사람들이 동정심을 유발하는 일종의 ‘꾀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같은 대학병원 내에 신경정신과가 있으니 바로 진찰을 받아보라는 교수의 말에 “제가 심리학 전공이라 내용을 조금 아는데 공황장애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심장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니 그것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공손하게 얘기한 후 병원을 나왔다. 공황장애가 정확히 무엇인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공황장애는 아니길 바랬다.
‘내가 공황장애? 말도 안 되는 소리’ 속으로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병원 때문에 운동을 못했으니 가는 길은 걸어서 가야겠다. 여기서 걸어가면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탄천을 따라 가면 풍경도 좋을 거다. 기분 전환도 하고 운동도 해야겠다. 보통 걸음으로 걷는 내내 ‘공황장애’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학부시절 배운 내가 아는 공황장애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공황발작’이라는 단어였다. 즉, 입에 거품을 물로 정신을 잃는 그런 증상을 갖는 정신병을 공황장애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배울 때는 크게 공감을 하지 못했고 시험을 위해 단지 외웠던 얕은 지식인지라 확신이 없었지만 기분 나쁜 병명이다. 휴대폰으로 자세하게 검색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진짜로 공황장애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두려웠다. 집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천변을 올라가 차도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차도에 올라와 1킬로 정도만 걸으면 집이다.
차도에 올라 횡단보도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뇌에 살짝 불꽃이 튀는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머리가 무거워지며 몸을 가누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몸이 오른쪽으로 기운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자 이번에는 왼쪽으로 기운다. 심장이 빨라진다. 심장이 쿵쾅대는 모습이 머리에 그려진다. 분명 곧 터질 것 같다. 자동차가 횡단보도 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듬성듬성 박아 놓은 둥글고 큰 돌기둥에 퍽 하고 걸터앉았다. 오른손으로는 심장 쪽 가슴을 부여잡고 고개를 숙인다. 이 망할 놈의 증상이 또 온 것이다. 보행자 신호로 바뀌는 소리가 몇 번이나 들리지만 그대로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지만 그나마 사람들이 많은 장소이니 최소한 의식을 잃고 쓰러져도 119를 불러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대로 길바닥에 눕고 싶다. 하지만 앉아 있을 수는 있다. 창피하다는 생각보다는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또 얼마나 지속될지 두렵다.
오늘까지 합치면 약 10일 동안 크고 작은 약 5번의 그 망할 놈의 증상이 왔다. 별것 아니라고 스스로를 자위하고 넘어가려는 순간 별안간 찾아오는 이 증상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두렵다. 아까 병원에서 심장내과 교수에게 공황장애는 아니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나온 지 불과 몇 시간 뒤에 다시 이런 상황을 맞이했다.
‘공황장애.. 진짜 공황장애인가? 병명을 알면 고칠 수 있을까?’ 절대로 마주하지 않으려고 했던 공황장애. 피하려고 했지만 이대로는 도저히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엄마 모시고 미국 여행도 가야 하고, 좋아하는 사람도 만나 결혼도 하고 싶고, 회사원도 할 만큼 했으니 내 사업도 해보고 싶고... 안 되겠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 정확하게 진단을 받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