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점은 알지만 종착점은 알 수 없다.
따뜻한 날 태어난 '비'처럼 빨리 가고 싶었다.
속도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빨리 내려와 금세 사라지는 비와 달리
늦게 온 만큼 오래 머무른다.
아래로 향하는 내내 바람에 흔들리고 흩날린다.
눈처럼 가볍다지만 내 한 몸 가누기 버겁다.
함께 쌓여야 오래 간다.
한 송이로 온전히 존재하는 법은 없다.
함꺼 모이면 눈꽃으로 피어나
세상을 밝히고 풍경을 바꾼다.
홀로 있으면 연약하고
멀리 보면 하찮은 눈알갱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피는 이에게는 속내를 보여준다.
면면이 숨겨진 결정체는 또 다르게 아름답다.
시간마저 멈춰버린 것 같은 겨울에
모처럼 생기와 풍요로움을 더한다.
얼어붙고 메마른 땅에 물기를 전한다.
깨어있건 잠들어있건 모든 생명이 반갑다.
따뜻해 보이지만 실상은 차갑다.
그래도 기꺼이 맞이하러 나온다.
만져보고 뭉쳐보고 사뿐사뿐 밟아본다.
그랬던 사람들.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때론 미끄럽다
때론 질척인다
때론 까매졌다... 말한다
'눈꽃' 이 지는 것도 서러운데
사람들의 외면이 야속하고 외로워
'눈물' 이 되어 흐른다.
결국 하늘에서 태어나 땅에서 사라지고
사람에게서 잊혀진다.
'무거운 눈의 몸을 벗고' 다시 하늘로 향한다.
우린 다시 만날 것이다.
그 때는 이름도 몸도 바뀌어 있을 것이다.
기억조차 못할 것이다.
그러니 부디.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을.
첫 눈으로 기억하던 그 마음을.
아끼지 않기를.
스쳐지나간 이 세상에 대한
억울함이 남지 않게.
눈 따위에 왜 이리 청승이냐고 묻는다면
'외면하기에는 우린 이토록 닮지 않았는가'
라고 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