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다는 허세

감정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by 버들s

'감정으로 선택하지 않기!'

'감정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감정 때문에 기회를 잃지 말기!'



나는 노력했다.

감정으로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해,

감정 섞인 말과 행동으로 후회하는 일이 적도록

내 감정을 잘 억압하며 말하고 행동하면서 스스로에게 체면을 걸었다.


'나는 행복하다..... '

'내가 편하기 위해, 빨리 행복하기 위해 빨리 판단하고 빠른 결정을 내렸다.'

내 결정의 기준은 '내 행복'이었다.

그래서 나는 행복했다. 아니, 행복하다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내가 내린 결정들로 생활하고

내가 내린 결정의 결과물들로 행복하다고 자부했다.

긍정적인 부분만 보려고 노력했고, 부정적인 면은 무시했다.

그래서 행복했다.

그러면서 나는 감정적으로 살지 않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렇기에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자만했다.


최근 그 생각이 단단히 깨졌다.

'감정 때문에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를 새벽독서모임에서 듣게 된 날,

그동안에 듣고 읽었던 글과 비슷한데 그날 그 시간은 다르게 새롭게 들렸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계속 감정으로 판단하고 선택했다는 것을.....

내가 가지고 있던 감정은 '행복'이었다.


나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가슴에 끌어안고 살았던 것이다.

'행복'이 감정인줄도 모른 채.....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살았다.

그러면서 나는 감정에 삶을 맡기지 않고 산다고 생각한 것이다.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아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합리화하면서 잘살고 있다고 착각했다.


'오만'이고 '허세'였다.

'행복'이라는 감정, '행복해야 한다'는 감정에 완전히 빠져 그 테두리 안에서 선택하며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 행복하다 되뇌이며 행복한 척 노력했기 때문이다.


행복하려고 빨리 포기하고, 행복하려고 져주고, 행복하려고 모른 척했다.

그러면서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으며 하루하루를 보낸 것이다


이제 알았다

'행복하다'도 감정이었다는 것을,

'행복하다'는 감정이 선택의 기준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을,

'행복하다'도 감정이기에 그때그때 나의 기분에 따라 기준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두려운 감정으로 내렸던 선택에도 '행복하려고 내린 선택'이었다고 합리화했다.

또 어떤 때는 도전해보고 싶어서 내린 선택을 '행복을 위해 선택했다'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선택을 해도 어떤 때는 행복했다가 어떤 때는 행복하지 않다가 했던 것이다.

그날의 감정에 따라 행복의 기준이 바뀔 수 있기에 그날의 선택에 대한 기준이 변했고 거기에 따른 내 감정이 다른 것이다.


그리고는 스스로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게 살고 있다'며 허세를 부렸다.

행복을 위해 선택했기에, 나는 행복하게 산다는 허세!

나 스스로 합리화하며 허세를 부리고 산 것이다.


수없이 많은 날들을 감정으로 선택하고 그것을 모른 채 살아왔던 어리석은 나와 마주했다.

알았으니, 변해야 한다.

깨졌으니 다시 새로운 선택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선택은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고 내가 가진 삶에 의미, 삶에 가치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감정이 아닌 의미, 가치에 기준을 두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사는 의미, 내가 가진 삶의 가치,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어떤 모습으로 나이가 들고 싶은지?


삶의 가치와 의미를 '행복'이라고 잡는다면

내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을 정해야 한다.

그래야 비슷한 상황에 어떤 때는 도전을 어떤 때는 포기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설령 비슷한 상황에 다른 선택을 내리게 될 때라도 내가 내린 선택에 감정은 똑같이 행복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준에 따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의미에 따른 결정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 선택이 나를 힘들게 해도, 나는 행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준을 정해야 한다.

의미를 찾을 것이다.




많은 날들이 행복했는데,

많은 시간들을 행복하다 생각했었는데,

왜 이렇게 행복하냐고, 이렇게 행복해도 되냐고 생각했었는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아니, 엄마의 유산 공저를 시작하면서

나는 행복하지 않다.

아니, 매일매일이 힘들다.


매일 새벽에 깨야하고,

매일 책을 읽어야 하고,

매일 내 행동을 돌아봐야 하고,

매일 잠을 줄여야 하고,

매일 글을 써야 한다.


힘들고, 힘들어서

한 번씩 내게 묻는다.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인지?

'엄마의 유산' 공저를 결정하게 된 위대한 시간 2번째 시간에 참여를 할 것인지?

아니, 위대한 시간에 참여한 계기가 된 지담 작가님의 글(가나다라마바사...)에 덧글 달기를 시작할 것인지?


내 대답은 '그래도 한다'이다.

아니, '감사하며 한다'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지만 그래도 '한다'이다.


나는 지금 깨져서 아프다.

해야 할 일들로 바쁘고 복잡하다.

그래서 힘들다.


해야 할 독서로,

찾아봐야 할 내 정신으로,

정리해봐야 할 내 가치로,

생각해야 할 내 삶의 의미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없었던 내 꿈도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깨지게 된 것에 감사하다.

'허세'라는 것을 알았기에 감사하다.

새롭게 배우게 된 것에 감사하다.

깨닫게 된 것에 감사하다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에 감사하다.


깨어진 나를 다시 새롭게 조형할 것이다.

'엄마의 유산, 위대한 시간 3번째 편지극'에서 들었던 레마누 작가님의 음성을 다시 떠올린다.


"고통은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욕구와 함께 찾아와 너를 성장시키는 동반자다"


고통이 너를 고통스럽게 한다면,

너는 더 커질 기회라고 생각하고,

고통보다 너를 키우는 데 집중하렴.


고통은 고통의 할 일이 있고,

너는 네가 할 일이 있어.

욕구하는 그 길로

너는 네 일을 그냥 하면 돼. (...)


만약 고통이 너무 고통스러워 포기한다면

고통은 절대 혼자 가지 않아,

같이 왔던 네 욕구도 데리고 가버리지

꿈도 사라지는 거라고. (주 1)


나는 오늘의 고통을 받아들이련다

나는 오늘의 아픔을 받아들이련다

나는 오늘의 힘듦을 받아들이련다.

나는 오늘의 바쁨을 받아들이련다.


내가 원하는 '어른의 어른'이 되기 위해서

내가 바라는 '내 아이가 닮고 싶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내 아이가 '본받고 싶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그런 내일의 나를 위해 나는 오늘 조금 고통스러운 삶을 선택하련다.


지금 바로 느낄 수 있는 달콤한 행복을 잠시 멈추려 한다.

그래도 지금 불행하지 않다.


감사할 뿐이다.

지금이라도 깨닫게 되어서........



주 1) 엄마의 유산 [살아버리는 힘, 살아 벌이는 짓!]. '너의 다이몬을 위하여' 중에서. 문수진. 건율원


사진. ko_choi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