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제일 무섭다

나는 엄마다!

by 버들s

나는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아이들의 눈과 말이 제일 무섭다.

어릴 때는 아이들의 눈이 제일 무서웠다.

지금은 아이들의 말이 더 무섭다.



36개월 된 아이 손을 잡고, 6개월 둘째를 업고 경제적으로 도움도 되고 싶고 아이를 잘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에 일을 시작한 지 30년 지났다.

30년 동안 내 직업은 2개였다. 그래서 직업이 없던 날은 첫 직업을 그만둔 후 두 번째 일을 시작하기 전 딱 4개월뿐이다. 중간에 회사를 옮기기는 했지만 난 미리 출근할 곳을 정하고 퇴사했기 때문이다.


사실 쉬었다는 4개월도 전직할 직업을 위해 자격증을 준비하느라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독학하는 시기였기에 계속 무언가 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삶의 좌우명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두 개의 문장을 늘 떠올렸다.

하나는 ' 엄마의 얼굴이 가정의 얼굴이다'와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이다.



결혼 전 나의 원가족 분위기는 어두웠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 늘 '돈 없다', '너 때문에 내가 이러고 산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나는 '애어른' 소리를 듣는 맏이로 컸다.


국민학교 저학년 때 꿈을 말하라는 선생님 말씀에 '현모양처'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듣고 선생님과 아이들이 웃었다.

그래서 고학년이 되어 꿈을 말하라고 했을 때는 '평범한 사람이요!'라고 대답했다. 대답을 들으신 선생님은 '평범한 게 제일 어려워' 하셨다.


'평범한 게 제일 어렵다'는 말씀에 담긴 뜻이 지금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때는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들이 웃었던 '현모양처',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는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아요. 현모양처가 되어 남들처럼 행복하게 사는 가정을 만들고 싶어요'라는 내 마음이 표현이었던 것이다.


집에서 도망치듯 빠른 결혼을 한 나는 밝은 가정을 가지고 싶었다.

'돈', 경제적인 여유는 내 마음대로 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밝은 가정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자라면서 제일 듣기 힘들었던 '너네 아빠 때문에~, 너네 아빠는~' 소리와 '돈 없어'라는 말만 아이들한테 하지 않으면 밝은 가정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녀교육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엄마의 얼굴이 가정의 얼굴이다'는 글귀가 내 눈과 가슴에 박혔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고 얼굴, 아이들의 엄마인 내 얼굴 표정이 중요한 것이다.

내 얼굴, 내 표정이 가정의 얼굴과 표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웃으며 살려고 노력했다.

밝은 가정을 만들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고 살았던 그 마음을 아이들이 느끼고 살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마주하게 될 때 되도록 미소를 띠었다.

회사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집 현관 밖의 일이다.

난 현관 앞에서 변신을 했다.

'직장인'에서 '엄마' 의 옷으로 갈아 입은 것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렸을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담아, 내가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을 때 나의 첫 표정이 그날 저녁 우리 집안의 분위기가 되기에 나는 굳어 있는 표정을 풀어야 했다.


마치 면접을 앞둔 사람처럼 '아에이오우, 푸르르!, 아에이오우, 푸르르! 하며 입을 풀었다.

굳어있던 입을 풀어 방긋 미소를 장착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엄마 왔다~!"


그러면 두 아이들이 밝게 웃으면서 뛰어나온다.

안아주거나 그런 건 없다.

엄마도 웃고, 아이들도 웃으며 마주 볼뿐이다.

엄마는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은 옆에서 하루 종일 있었던 얘기를 늘어놓는 시간의 시작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늘 미소를 장착하려 애쓰고 노력했다.


지금, 우리 가족은 밝게 잘 웃는다. 말이 없는 남편과 아들도 크게 웃는 건 잘한다.

그리고 말없는 우리 사위도 잘 웃는다. 웃음소리가 시끄러운 가족이 참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 말이 무서웠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아이들이 보고 배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힘들어도 출근하고 아파도 출근했다가 조퇴했다.

엄마 오늘 회사 안 가?, 오늘 엄마 회사 안 갔어?라는 소리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때만 쉬었다.


남들에게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는데 가족은 나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

나를 보며 세상을 사는 방식을 익히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실시간, 나와 있는 모든 시간에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내 행동을,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눈과 귀'가 무서웠다.


'열심히 공부해'라는 말대신 나는 책을 읽었고, 공부를 했다.

아이들 눈에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려워 보이는 일도, 힘들것 같은 일도 도전했다. 도전하고 노력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걸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렇게 살면서 고되고 힘들어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독립하기를 엄청 기다렸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게되면 나는 자유롭게, 나태하게, 게으름 피우며 살아갈 수 있을줄 알았다.



그런데 어른이 된 아이들, 경제적으로 독립한 아이들, 가정을 꾸렸고 곧 꾸릴 아이들, 어른이 된 아이들이 자꾸 나에게 묻는다

엄마 어떻게 해야 해?, 엄마 같으면 이럴 때 어떻게 할 것 같아?, 나는 엄마처럼 살 수는 일을 것 같아!


나는 알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이들의 눈과 귀가 무서웠는데 이젠 아이들의 말이 무섭다는 것을.


자꾸 묻고 내 삶에 참견한다.

엄마는 요즘 뭐해요?, 왜 그렇게 했어요? 관심 있게 보고 궁금해한다.


어른대 어른으로

내 삶에 관심을 보이고 묻고 참견한다.

내 계획에 없던, 내 생각에 없던 '어른의 어른'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엄마의 유산' 공저를 결심했다.


아이들이 묻는 말에 잘 대답해 주려면 내 정신을 바로 세워야 히기에 잘 세워져야 내 입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엄마의 유산' 공저를 준비하고 있는 엄마를 지켜보고 있다.

글을 쓰지 않던 엄마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꽃다발과 카드로 축하를 해주었던 딸이기에 엄마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새벽 독서시간, 우리 집에서 제일 일찍 출근하는 아들이 깨어있는 엄마에게 관심을 가진다.

처음에는 '안 피곤 해요?, 주무세요" 했다가 지금은 그냥 지켜봐 준다.

엄마의 '똥고집'을 알기 때문이다.


두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기에 나는 '엄마의 유산'을 써내야 한다. 기간은 상관없다. 언제가 되든 써서 아이들 손에 쥐어주는 게 나의 목표이다.



"엄유' 작가님들이 대학로에서 편지극 공연을 하신대, 자신이 쓴 글을 직접 무대에서 낭독하시는 거야!,

엄마는 못할 것 같은데 다들 하신다고 하셔~ 대단하지?" 처음 편지극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공연 얘기를 꺼냈다.


"왜요, 엄마도 잘할 것 같은데..."라고 한다. 나는 아이들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못할 것 같다고, 어려울 것 같다고 얘기할 줄 알았는데 엄마도 잘할 것 같다고 하는 것이다. " 그래? 배우도 아닌데 쉽지 않지! "라고 그냥 말을 얼버무렸다.




어제 저녁을 딸부부와 함께 먹게 되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번 주 토요일에 있을 '편지극'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엄마는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라고 딸이 관심을 가지고 물어본다.

딸과 사위가 함께 공연을 보러 오기로 되어 있고, 나는 스텝으로 참여한다고 얘기를 해둔 터였다.


"내일 저녁 회의를 통해 결정될꺼야, 작가님들 지금 얼마나 떨리실까?

엄청 연습들 하셨어. 엄마는 절대 못할 것 같아!" 라고 나는 또 지나가는 듯한 말로 얘기를 했다.


딸이 진지하게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엄마도 할 수 있어요, 강의도 하는데 왜 못해요?, '세바시'처럼 하면 되지요! "


아이코!!!!, 큰일 났다!

'엄유' 글쓰기도 쉽지 않은데 나중에 공연 연습까지 해야 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다.

엄마를 믿는 딸, 그 소리를 들으며 빙긋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사위 앞에서 나는 더 이상 힘들것 같다는 소리도 못하고, 긍정도 부정도 못한채 말을 먹었다.


남편 왈, "글이나 쓰고 걱정해! 누가 책을 쓰게는 해준데?" 라고 웃는다. "맞지!, 책을 누가 쓰게 해주나~" 라고 크게 웃으며 그 상황을 잘 모면했다.


이제 아이들의 말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시고 계신 작가님들이 존경스럽다.

나는 내일 그 현장에서 감동을 직접 느껴볼 것이다.

작가님들의 연습 동영상만 봐도 눈물이 난다.


우리 딸과 사위는 엄마의 마음을 대신하는 편지극을 보고 들으며, 엄마의 미래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엄마가 들려주는 얘기로 들을것이다.


자신 안에 쌓여 있던 감정들을 풀 수 있는 자리,

자신들 속에 묵혀두었던 감정을 내어 놓고 바라볼 수 있는 시간,

새롭게 충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3rd. 위대한 시간' [아이야, 너는 너로 살아라]

우리의 자녀들은 자기의 꿈을 찾아 자기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함께 느끼고 전하는 의미를 찾는 작은 한걸음을 함께 합시다. (주 1)


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놓친 게 있었다.

내가 꿈이 없었기에 아이들에게 꿈을 묻지 않았다.


내가 정신없이 바삐 살았기에 나의 정신을 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정신을 나누어주지 못했고,

우리 아이들이 어떤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하지 못했다.

이제사 글로 말해주는 연습, 남기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내가 못하는 걸 해주고 계신 작가님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작가님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힘차게 응원합니다!




주 1) 앨런머스크의 충격예고, 그래서 필요한 정신의 소리. 지담. 브런치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3Z4R2VoCVZjnu1j7FOnxVFrJ1a5LaNKu4G7H4Q3GRHTvBsQ/view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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