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해져 간다.
'정신이 단단해졌다'는 느낌이 이런 건가?
"엄마, 오늘 나랑 점심 먹을 수 있어요?"
오랜만에 청한 둘만의 데이트다. 예전엔 둘만의 데이트를 요청하면 '무슨 걱정거리가 생겼나? 조언이 필요한 상황인 건가?' 등 많은 생각에 걱정되었는데 이번엔 딸과의 대화가 기다려졌다.
딸은 만나자마자 시세가 10억 인 선배 집들이에 다녀온 얘기를 꺼냈다. 능력 있는 남편의 정보력과 양가 부모님이 지원으로 2배 이상의 이익을 챙긴 자랑과 자녀들을 나중에 국제 학교에 보낼 계획, 힘든 회사를 퇴사할 것이라는 선배의 비전을 듣고 부러움과 혼란으로 나를 찾은 것이다.
부모들 지원 없이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미래를 계획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즐겁게 사는 딸부부. 선배집 얘기를 전해 들은 사위가 자신이 능력 없음을 미안해하면서, 딸도 말을 꺼낸 게 미안해져 분위기가 좀 침울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도 엄마처럼 내 정신이 단단해질 때까지 배려 없이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은 좀 멀리하려고요."
딸이 내 신혼 때 얘기를 기억하고 꺼내는 것이다.
20대 초반에 작은 빌라에서 시작한 내 신혼생활. 우리에게는 행복하고 따뜻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대학 동기들이 집에 놀러 와 "이런 집에서도 사람이 사는구나"라고 집안을 둘러보면서 하는 말을 듣고 나는 무척 당황했다. 이 집이 그렇게 보이는구나..
우리 집이 부끄러워지고, 내 삶이 창피해지면서 내가 불쌍하게 생각되어 슬퍼졌다가 결국 나를 이렇게 살게 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남편은 아무 죄가 없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는 것뿐이다. 남편은 변한 게 없는데 동기들의 말 한마디에 내 마음과 감정이 요동쳐 갑자기 불행한 결혼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 동창모임에 잘 나가지 않았다.
무심코 하는 말, 내게 의미가 크게 없는 사람들의 말에 사랑하는 남편이 미워지고, 소중한 내 가정이 부끄럽게 느껴진 것이 싫었고, 다친 내 감정을 추스르는 시간이 아까웠던 것이다.
"지금은 내 중심이 단단해져 어떤 부러운 말을 들어도 그 얘기로 내 감정이 동요되어 다른 사람, 특히 내 가족에까지 전이되지 않아"라고 했던 말을 딸이 기억해 낸 것이다.
" 엄마, 정신이 단단해진다는 게 뭐예요?, 나도 엄마처럼 될 때까지 자기 자랑만 하는 사람들은 멀리하려고요."
엄마도 잘 모르는데 자신이 느끼는 감정, 그 감정의 원인이 뭔지 알고 행동하는 것!. 순간의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의지에 의해서 말하고 행동하는 게 아닐까? 엄마도 계속 책 읽고 글 쓰며 정신을 단단히 하는 연습을 하고 있어.
"잘된 사람은 축하해 주고, 우린 우리의 삶에 집중해서 살자" 라는 말로 데이트를 마쳤다. 사위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고르는 딸의 모습이 환하다.
딸과의 대화가 의미 있었다. 예전 같으면 딸의 감정에 공감하며 "부러웠겠다. 엄마가 능력이 없어 미안하네" 라고 말하며 나도 미안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글을 쓰면서 단단해진 정신으로 '자신들만의 모습으로 지금처럼 살아가면 된다, 잘 살고 있다'라고 응원해 주는 어른이 된 것이다.
이건 바로 독서와 글쓰기의 힘이다.
자족하는 삶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살아간다. 이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것을 가지고 있고,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해야한다. 최고의 행복은 스스로 신(神)처럼 자족하며 살아갈 때 얻을 수 있다.(주 1)
주1) 사람을 얻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타커스.2025
사진. ko_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