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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환 Apr 11. 2024

2024년 4월 2일 [일기 - 삼계탕]



피곤하고 많은 일이 있었던 어제를 뒤로 하고 새로운 날이 밝았다.


누나는 오늘 출근이기 때문에 조카 해인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선 모양이다.


그나저나 오늘 날씨를 보니 봄을 건너뛰고 갑자기 여름이라도 찾아온 걸까? 

따뜻함을 넘어 더움을 느낄 정도의 날씨에 긴팔 후드를 벗어버리고 반팔 차림으로 엄마랑 같이 동네 마트에 다녀왔다.


어제 술로 늦잠을 잔 나와 매형은 아침을 건너 뛰었고, 오전에 식욕이 없어 밥 대신 꿀로 식사를 대신한 아빠를 위해 맛있는 점심 재료 장을 보러 간 것이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무려 삼계탕.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동네 가까운 마트라서 인삼이랑 대추가 없어 아쉽다며 엄마가 불평하듯 말한다. 

"너도 온 김에 뭐라도 사 갈 거 있음 사는게 어떻겠냐?" 엄마의 의견에 끄덕이며 일본으로 가져갈 오미아게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양손 무겁게 쇼핑한 물건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엄마한테 누나의 카톡 메시지가 갑자기 한 통 날라왔다.


오늘은 병원에 병실이 나오지 않아 입원이 어렵고 내일 자리가 나면 최대한 빨리 입원할 수 있게 안내를 하겠다는 병원 메시지를 누나가 전달한 것이다.


"그래~ 하루 만에 그렇게 빨리 입원이 될 리가 있겠어? 내일은 아마 좋은 소식이 들릴 테지."

그래도 어떤 결과든 빠른 입원을 위해 연락을 주고 애써주는 병원 직원들의 모습이 내심 고마웠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잠시 뒤로하고 집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요리 실력을 발휘하는 엄마.

잠시 기다리자 뚝딱 하고 찹쌀까지 들어간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이는 삼계탕을 만들어낸다.


좋은 냄새가 솔솔 풍기자 아빠도 허기가 졌는지 자연스레 식탁으로 와 앉아있다. 매형은 아직도 잠을 잔다. 

숙취가 아직 안 풀린 모양이다. 결국 매형을 제외하고 나와 아빠는 같이 삼계탕 식사를 시작했다. 


푹 익어 부들부들한 고기와 약재의 향이 솔솔 나고 시골에서 가져온 김치와 나물을 곁들여 먹으니 정말 끝내주는 맛이었다. 원래 삼계탕을 좋아하시는 아빠도 삼계탕 한 그릇을 뚝딱 비워버렸다.  


다행히 오늘도 컨디션이 좋은 모양이다.


먹느라 지쳤는지 잠시 소파에 몸을 기댄 아빠는 "내 생각엔 아마 내일 입원이 가능할 거 같은 기분이 드네" 라며 한마디 하니 그 말에 동의하듯 내 생각도 그렇다며 엄마는 맞장구를 친다.


몸이 아파 약해지면 피곤해져 시도 때도 없이 졸린가 보다. 아빠는 잠시 눕는다며 이내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 


나는 내일이 되면 2박 3일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문득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빠의 병원 입원 소식은 듣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야 돌아가는 길 조금은 안심이 될 거 같았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냥 그런 기분이다.


오후 5시쯤 되자 누나와 조카 해인이가 들어왔다. 너무 귀엽고 이쁜 조카 해인이를 붙잡아 볼을 비볐다.

조카는 그런 내 손을 웃으며 뿌리치고 도망치듯 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 입는다. 해인아 손은 꼭 씻어야지! 

누나의 잔소리.


어느덧 해가 질 무렵. 저녁으로는 무얼 먹을까. 


갑작스러운 고민이 시작되었고 매형의 추천으로 튀기지 않은 기름을 쫙 뺀 전기구이 통닭을 몇 마리 시키기로 했다.


아빠는 계란찜에 낫또로 간단하게 허기를 채웠다. 그런데 밥 한 공기 절반도 마저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내린다. 아무래도 식욕이 없는 모양이다. 나는 아쉬운 맘에 고기라도 먹어야 조금이라도 체력이 보충된다며 억지로 통닭 살코기 부분 몇 개를 찢어 그릇에 올려주니 마지못해 먹는 아빠. 그러더니 배가 너무 부르다며 힘들게 일어나더니 방으로 가서 몸을 눕는다.


"이보소 효윤이 아빠, 저녁에는 병원 약 먹어야 하니까 약은 먹고 누우쇼잉" 

엄마의 잔소리.


통닭은 2마리 배달 시켰는데 특이하게 통닭 안에는 마치 삼계탕처럼 찹쌀이 들어가 있다. 냄새도 약간 한방 냄새가 나고 건강한 느낌의 통닭이었다. 근데 양이 많아 결국은 조금 남겼는데 남은 살코기 버리는 게 아까웠는지 엄마는 내일 아침밥으로 샌드위치를 만들 건데 거기에 넣으면 딱 좋겠다며 손으로 남은 고기를 잘게 잘게 찢는다.


그 와중에 나는 배가 터질 때까지 맛있게 다 먹고 나니 별안간 졸음이 쏟아졌다.


잠시 다른 방에서 누웠다가 다시 나와야지 하고 맘을 먹었는데 그대로 계속 잠들어 버렸다.

해인이의 삼촌 찾는 소리, 엄마와 누나의 대화 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듯 들리는 게 마치 자장가 같다.


딱히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이 날은 뭔가 좋은 꿈을 꾸었던 기억만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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