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환 Apr 11. 2024

2024년 4월 1일 [일기 - 소식]




봄의 따뜻함이 찾아올 무렵 겨울의 찬바람이 아직 가시지 않던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엄마와의 전화 통화 중 별안간 들은 소식. "실은 너희 아빠가 병원에 입원했다."


아빠는 전부터 몸 상태가 안 좋았었나 보다. 근데 그럴 때마다 자꾸 동네 시골 병원만 찾는 아빠의 모습이 못마땅한 어머니의 재촉에 못 이겨 결국 아빠는 순천 시내의 큰 병원을 갔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아빠는 임파까지 전이가 된 꽤나 심각한 간암 판정을 받으셨다.


이 소식을 일본에서 들은 나로서는 날벼락을 한방 맞은 기분이었고 그렇게 악몽 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차라리 꿈이라면 어서 빨리 깨어나다오.


하루가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내 멋대로 생각했다. 

"글쎄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으니 실은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어."라는 거짓말이라도 위안 삼아서 듣고 싶었나 보다.


활발했던 가족 단체 카톡 방은 어느 시점에서 조용해졌고, 그저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는 막막한 미래와 걱정만이 감돌았다.


그 와중에 누나의 발 빠른 대처로 "일산 국립 암 센터"에 4월 1일 새로운 상담을 예약했고, 그나마 다행이라는 마음과 암 전문 센터에 찾아가면 어떻게든 반가운 소식이 들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빠른 거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로 다짐했다.


전화로만 소식을 듣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고 판단을 내린 나는, 결국 아빠의 4월 1일 일산의 병원 상담일에 맞춰 2박 3일 일정의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암으로 인한 부종으로 온몸이 부었고 살은 짧은 기간에 10kg 이상이 빠져버린 목소리에도 힘이 없는 아빠의 모습을 실제로 마주친다면 어떤 말부터 건네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지만 이럴수록 장남인 내가 더 용기를 내야 한다. 


지금 가장 힘든 건 아마도 아빠 일 테니까.


워낙 3월에 크고 작은 안 좋은 일들만 가득했기 때문인지 4월부터는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4월의 시작이 아빠의 국립 암 센터 상담일인 4월 1일인데 공교롭게도 작년 4월 1일은 나의 결혼식이 열린 날이었다. 


정확히 1주년이다. 작년 오늘의 나는 정확히 1년 뒤 일산 국립 암 센터에 찾아오리라고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 복잡한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건지 날씨는 마치 작년처럼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봄의 하루였다.


새벽 비행기로 오전 4시쯤 인천공항에 도착한 나는 약간의 대기시간 뒤 공항버스 첫 차로 동탄에 사는 누나네 집을 향했다.  4월의 시작을 알리며 공항 한쪽 벽면을 비추는 햇빛과 여느 때보다 상쾌한 아침 공기가 기분 좋은 시작을 알렸고 그렇게 1시간 30여 분 가량을 달려 동탄역에 도착해 내리니 나를 마중 나온 누나의 차가 보인다. 그리고 가벼운 인사와 함께 반가움은 잠시 뒤로 한 채 누나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엄마, 아빠를 향해 다시 달렸다.


이윽고 드디어 도착.


도어록 문이 열리고 먼저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한다. 그 뒤 쪽으로는 소파에 몸을 기대어 있는 아빠를 발견했다. 부종으로 배가 많이 나온 상태였다. 발과 다리는 퉁퉁 부어있었다. 


"뭐덜라고 안 와도 되는디 힘들게 일본서 여까지 오냐.  너무 걱정하지 마~"

건강했을 때 절반 크기 밖에 안되는 목소리로 애써 힘을 내어 나를 반겨주는 특유의 우리 아빠 말투이다.


"오매 완전 노인이 다 되부렀고만~"

나는 애써 태연한 척 가벼운 농담으로 가져온 짐을 내리며 답변을 던진다.


"긍께 느그 아빠 완전 노인이 다 되부렀제~"

이런 모습과 상황에 익숙해진 어머니가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어 한마디를 거든다.


아빠는 이뇨제 약을 복용하느라 화장실을 하루에만 자다가도 일어나 30번 정도 왔다 갔다 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지금 그게 제일 힘든 모양이다. 한쪽 바닥에는 혹시 외출 시 소변 실수라도 할까 봐 그걸 방지하기 위한 기저귀가 놓여있었다. 그걸 보니 뭔가 마음이 아팠다. 


"내가 너희 아빠 간호하려고 지금까지 노인 요양 시설에서 일했는 갑서야"


옆에서 가장 지치고 힘들 어머니가 건강하니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계속 일하던 노인 요양 병원 측에서는 잠시 일을 중단한 어머니께 고맙게도 사직이 아닌 휴직으로 처리를 해 주었다. 정말 너무 고마운 분들이다.


그렇게 못다 한 이야기를 하는 사이 어느덧 일산 국립 암센터에 출발할 시간이 다가왔고 누나와 나 그리고 엄마 아빠 이렇게 4명 가족이 오랜만에 뭉쳐 마치 봄날 소풍이라도 하듯 외출을 했다. 정말로 따뜻한 봄날이었다.


그렇게 1시간 반가량을 달려 서울을 관통해 경기도 일산 병원에 도착했다. 막상 도착해서 보니 꽤나 큰 병원.


체력적 부담으로 계속 걷기 힘든 아버지를 위해 병원 휠체어를 빌렸고 뒤에서 내가 밀었다. 

밀며 앞을 내다보니 아빠의 등이 이렇게 작았었나? 체중이 줄어 생각보다 쉽게 밀리는 휠체어 손잡이를 쥔 나는 마음 한 켠이 아렸다.


그리고 담당 선생님과 예정된 상담을 했다. 대화 중 "여기 병원 하나 믿고 찾아왔다"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그 간절한 마음을 이해했는지 선생님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그럼 제가 입원서를 써줄 테니 입원하세요. 아마 2~3일 내로 입원이 가능할 겁니다." 하고 말을 던졌다.


최근 의사 파업으로 병원 입원도 못하고 다시 시골로 내려가야 하나 걱정이 많았던 어머니는 선생님의 그 한마디에 안도감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담당 선생님은 아빠의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색전술을 할지 항암 약물치료를 할지 치료 방향성에 대해 고민이 많다고 이야기를 했다. 일단 입원을 위해 다시 재검사를 하고 상태를 판단해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신다. 기대 이상의 답을 들은 것 같은 우리는 허기지다며 병원 식당에서 간단하게 요기라도 하고 집을 가기로 했다. 아빠도 조금은 힘을 얻었는지 많은 양은 아니지만 설렁탕과 김밥을 맛있게 드셨다.


"가족들이랑 있어서 그런가 오늘 뭔가 컨디션이 좋네"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아빠가 한마디 툭 던졌다. 


가족끼리 봄나들이 라도 나온 것 같은 기분에 앞좌석에 앉은 나는 오늘부터는 마냥 좋은 일만 일어날 거 같아라며 웃어젖히며 맞장구를 쳤다. 돌아가던 중간에 차에 기름도 별로 없기도 하고 아빠 화장실도 갈 겸 휴게소에 잠시 들리기로 한다. 


직장인들 퇴근 시간에 겹쳐 고속도로에 차가 꽤 막혔지만 휴게소의 커피 한 잔과 일본에서 챙겨온 필름 카메라로 짧은 휴식시간에 가족들 사진도 찍고 가벼운 마음이 들었다.


돌아가는 길 차에서 오늘은 집에 가면 파티를 하자는 아빠의 말. 

가족끼리 다 모이면 역시 파티를 해야지. 그게 우리 집 전통 스타일이다. 


저녁밥으로 내가 일본에서 직접 사 온 낫또에 밥을 드시는 모습을 보니 오늘 기분이 좋긴 좋나 보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훌륭한 음식 솜씨를 뽐내는 우리 엄마표 오이냉국에 내가 직접 공수한 간암에 좋다는 오키나와산 모즈쿠 미역을 넣었다. 

이로써 꽤나 건강한 식단이 완성된 셈이다.


오랜만에 만난 나와 매형은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거 같은 기분 때문인지 술을 달게 들이켰다.

그렇게 기분 좋은 가족 파티가 끝난 뒤 시간이 지나 다들 잠이 든 늦은 밤. 


...내일은 과연 병원에서 입원 연락이 올까? 


잠은 안 오고 어두운 식탁 테이블 위에서 혼자 수많은 생각하며 술을 마시다 결국 의자에 앉은 채로 곯아떨어졌다. 


무척이나 피곤한 하루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