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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환 Apr 11. 2024

2024년 4월 3일 [일기 - 닮은꼴]



3일의 날이 밝았다.


어제 꽤나 빨랐던 취침으로 오래 누워있던 탓인지 등 근육의 통증이 아침부터 고맙다며 나에게 비명을 질러댄다. 대체 몇 시간을 잔 걸까?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일어나서는 곧장 샤워를 했다.


개운하게 샤워를 끝마치고 나와 창문 밖을 내다보니 구름이 끼고 우중충.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제까지는 여름같이 덥더니.. 변덕이 꽤나 심한 요즘 날씨다.


그 와중에 아침 일찍부터 유치원 대신 집에서 더 놀고픈 조카 해인이와 누나는 언제나처럼 한바탕 입씨름을 한다. 결국 누나에게 굴복해 체념한 조카 해인이가 삼촌과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배꼽 인사를 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출근하는 누나 손을 잡고 깔깔대며 휙 하고 나가버린다.


우리 조카는 한창 귀여울 나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크거라.


그러고 보니 4월 3일 오늘은 짧았던 삼 일간의 여정이 끝나는 날이구나.

오늘 일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탑승 시간은 오후 4시 언저리.


동탄 누나네 동네에서 출발할 공항버스를 어제 12시 반쯤으로 예매를 해두었기 때문에 12시쯤 집에서 나가면 딱 괜찮을 거 같다. 오늘까지 연차를 써서 휴무 중인 매형이 나를 공항버스가 마중오는 동탄 역까지 차로 데려다준단다. 언제나 그렇지만 참 고맙다.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으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와중에 식사 준비가 끝났으니 다들 모이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주방 테이블로 향한다.


오늘의 첫 끼는 통밀 식빵으로 만든 샌드위치다.


어제 엄마가 나랑 매형이 먹다 남은 통닭의 살코기를 정성껏 뜯어두었던 탓에 엉겁결 닭고기 재료까지 들어간 샌드위치가 되어있었다. 심지어 거기에 달걀 프라이, 각종 야채, 딸기잼이 가득 들어가 있으니 고급 호텔의 샌드위치가 부럽지 않다. 허겁지겁 한 개를 집어 우유와 함께 먹으니 금방 배가 불러 올랐다.


옆에 있던 아빠도 다행히 식욕이 돌았는지 친절히 한 입 크기로 잘라져있는 샌드위치를 집어 들어 입에 넣고는 맛있다며 엄마에게 칭찬을 한다. 그러나 역시 배가 찬다며 한 개를 다 먹지는 못하시고 샌드위치 절반에 우유 한 컵이 식사의 전부였다.


측은한 마음. 


억지로라도 많이 먹어야 조금은 힘이 날 텐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는 휴우~ 하는 한숨 소리와 함께 거실 소파로 향한다.

그래도 누나네 집 소파가 편하긴 한지 아빠는 잠시 기대어 눈을 감는다. 불행 중 다행이다.


가벼운 아침 식사가 끝난 뒤 다 같이 잠시 휴식을 가진다.


그 와중에 오늘 일본 가는 비행기가 몇 시였냐, 공항버스는 몇 시냐, 짐은 다 챙겼냐 등등. 

돌아가는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는 잔소리와 함께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아이고 오늘은 병원에서 연락이 와야 할 껀디.." 다시 걱정을 한다.


"아직 시간이 이르니까 조금 더 기다려봐야지. 어제도 11시쯤에나 연락이 왔으니까~"

애써 태연한 척 대답을 하고 지금 시간쯤 미리 옷 갈아입고 준비하는 게 좋겠다 싶어 방으로 들어가 빠트린 물건은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엄마에게 전화 한 통이 온다. 

아무래도 누나한테서 전화가 온 모양이다. "응~ 그래~응~알았다."여느 때처럼 상투적인 대화 속 비치는 엄마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안 좋은 이야기는 아닌듯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병원에서 연락이 왔었는데 오늘 오후 4시쯤부터 입원이 가능하니 시간 맞춰서 오란다.


휴. 참 다행이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빠의 입원 확정이 되는 소식을 듣고 돌아가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연락이 오니 안도감이 들었던 것이다.


"이보쇼~잠잔가? 오늘 병원에서 입원하라고 연락이 왔다네~ 그리 알고 이따가 병원 갈 준비하소잉" 

소파에서 이동해 잠시 방으로 들어가 누워있던 아빠에게 엄마가 가더니 소식을 전한다.


대답으로 제대로 표현은 안 했지만 아마 아빠도 병원 소식에 안도감이 들었을 터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누구보다 가장 힘든 건 바로 아빠 자신일 테니까.


희망의 지푸라기가 된 병원의 소식을 듣고 나니, 엄마가 공항에 가면 배고플 거라고 금방 밥 차려줄 테니까 조금이라도 먹고 가라고 하신다. 계란찜, 소 불고기, 바지락 국, 두릅, 콩나물무침 등등 식탁에 먹거리가 한가득 차려졌고 나는 아까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한 끼 식사를 개운하게 마친다.


어느덧 12시.


"슬슬 가봐야것네~ 혹시 모르니까 미리 나가는 게 좋을 거 같아"

동탄역에서 공항버스 타는 건 처음이기 때문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미리 가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물건을 주섬주섬 챙겼다.


"하, 글제 원래 어디 갈 때는 항상 미리 나가는 게 좋은거여~"

힘은 다소 없지만 언제나의 말투로 나의 외출을 재촉하시는 아빠의 대답.


생각해 보면 내가 어릴 적부터 아빠는 무슨 일이 생겨 외출할 일이 생기면 항상 미리미리 챙기고 길게는 몇 시간 전부터 외출 준비를 하셨다. 어릴 땐 뭘 그렇게까지 서두르냐며 재밌어서 아빠에게 농담처럼 이야기를 하곤 했었는데, 시간이 흘러 지나고 보니 나도 어느새 아빠와 닮아있었다.


그렇게 아빠와 엄마와 짧은 인사를 마치고 억지로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문을 나섰다.


뒤를 다시 돌아보면 내 마음이 더 약해질까 봐 두려워 억지로 당당한 척을 해야만 했다.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은 아니니까.


사실은 손을 한번 잡고 싶었다.


그리하지 못한 나는 이 순간을 언젠가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분명 건강해진 모습으로 아빠와 재회할 거라고 믿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굳이 약해질 필요가 없다.


"운다는 것은 네가 약하다는 뜻이 아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것은 항상 네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소설가 샬럿 브론테의 말처럼 눈물은 살아가는 강인함이라는 걸 나에게도 깊이 새기고 싶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항상 존재했으며 존재할, 

우리의 찬란했던 소중한 순간들.


그 모든걸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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