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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이브리지 Jul 26. 2022

오늘 아이에게 잘못했다

[일상의 대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존중하기

맘이 상했다.

내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이 상하고 말았다. 즐겁게 점심을 함께 먹고 난 후, 아이는 집 근처로 가서 놀기를 원했다. 유난히 맑고 구름 없는 하늘을 쳐다보며 아이의 부모는 가까이에 있는 산에 오르면 멋진 경치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시원한 산바람을 기대하였다.


정상에서만 풍경과 시원한 바람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산 아래 도착하였을 때 이미 많은 젊은이와 가족 일행들이 높지 않은 산을 오르고 있었다. 올라가기를 주저하는 아이를 설득하여 산 정상이 아니라 중간 마루까지만 올라가기로 하고 발걸음을 띄었다.


반 정도 갔을 때 아이는 더 이상 못 간다고 한다. 날이 좋아서인지 사람들이 줄지어 경쾌하게 옆을 지나쳐 간다. 심지어 아이의 부모 대신에 머뭇거리는 아이에게 “산에 오르면 후회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을 건넨다.


그러나 아이는 정말 올라가기 싫다. 이 정도 높이에서도 저 멀리 풍경이 잘 보이고 시원한 바람을 즐길 수 있는 데, 왜 계속 올라가자고 하는지, 다리도 아프고 힘이 들기 시작한다. 저기 30m 앞에 서 있는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듯 20분째 서 있는다. 아이도 버틴다.


아이가 가위바위보에서 이기다.

아이의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되돌아 내려와 중간 마루까지 얼마 안 남았다고 다시 올라가자고 한다. 자꾸만 앞으로 나아가라고 한다. 여기 멈추어 있는 아이에게 긍정적인 의지가 필요하다며 가만히 멈춰 있는 것은 부정적인 거라며 다시 올라가자고 한다. 마침내 아이와의 기나긴 상의 끝에 가위바위보로 이긴 사람의 뜻대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아이가 이겼다. 아이는 신난다며 여기서 내려가자 한다. 이번에는 아이의 아버지가 버틴다. 다시금 중간 마루가 저기 보이니까 올라가자고 설득하여 억지로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다. 아이는 투덜거리며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며 투정을 하고 걸음이 늦다. 30분을 더 걸어서야 중간 마루에 도착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즐거운 마음이었다면 저 멀리 펼쳐 보이는 풍경의 광활함과 옛 궁궐과 현대식 높은 빌딩들이 조화롭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못해 여기까지 왔기에 아이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내려가는 것만 생각한다.


선도와 모범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보다 먼저 아이를 존중하는 것이다.

아이의 부모도 즐겁지 않다. 한 10년 후에 아이는 스스로 여기에 다시 올 지 모른다. 즐거운 추억으로 다가올지, 한없이 안 좋았던 기억이 될 수도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을 계획하는 것이 참 어렵다. 부모는 아이에게 “우리를 따라오면 좋은 일이 펼쳐질 거야!”라고 하며 아이를 설득하여도, 아이 스스로가 좋아하지 않는다면 보람도 깨달음도 아무 가치가 없다. 모범을 보이고 새로운 경험으로 이끄는 것이 답인 시대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부모가 존중하는 것에서 진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아이가 가위바위보에서 이겼을 때, 아이의 말을 따랐어야 했다. 오늘 저녁 아이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할까?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by 웨이브리지, 글모음 https://brunch.co.kr/@way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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