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는 사람은 원하지 않는 삶을 산다
원하는 사람은 원하는 삶을 살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원하지 않는 삶을 산다.
내 이야기다. 나는 행복실천가이자 행복실천법 강사로서 내가 원하는 삶을 잘 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원하지 않는 삶을 꽤 오랜 시간 살았다. 그리고 반복했다. 왜 나는 원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원하는 삶을 찾지 않았으니 실천할 수 없었고 삶을 통한 깨달음이 없으니 깊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는 게 내 결론이다. 원하는 삶이 없는 시간은 결국 원하지 않는 삶으로 채워지게 된다. 내가 경험한 원하지 않는 삶은 다음과 같다.
나는 마약을 제외한 모든 중독에 빠졌다. 술, 담배, 인터넷, 도박까지. 약사가 아니었다면 마약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행복한 약사로 살기를 원했기에 다행히 이 고비는 잘 넘겼다.
운영하던 사업체가 망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번아웃에 모든 것을 포기했다.
큰 투자에 실패했다.
무리한 투자로 10억의 빚이 있었다.
삶을 포기하려 했다.
이 정도면 왜 살까 궁금할 정도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가 소중하고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나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이는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았고 행하고 깨닫게 되었으며 깊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밑도 끝도 없는 주문이 아니다. 원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행하고 깨닫고 깊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문에서도 말했고 이 페이지에서만 세 번 더 말했다. 내가 원하기 때문에 살게 된 삶은 다음과 같다.
나는 삼대가 한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행복실천법 강사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내가 원하는 강의를 하고 있다.
본업인 약사로서 출근하면 하루가 즐겁다. 출근하지 않는 날도 즐겁다.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실천하느라 바쁘다.
이제는 번아웃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 즐겁다.
매일 아침에 오늘, 그리고 지금(present)이라는 선물(present)을 받는다.
책을 쓰면서 고민하는 이 시간이 선물을 가져오신 택배기사님을 만난 기분이다.
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 가능하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 그리고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이루는 근본은 ‘행복'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여 년 전, 평화롭고 행복한 시절을 보내던 고 1 때 이야기다. 어른들은 항상 말씀하셨다. “열심히 공부해라. 그래야 성공한다. 그리고 성공해야 행복할 수 있다.” 이 말을 듣고 아리송했다. 나는 이미 행복한 사람인데 성공이라는 비자발적 목표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 내 기준의 성공에 대한 고민을 했고 선명한 결론을 냈다.
‘직업은 이왕이면 남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고 엄청난 부자는 아니라도 돈은 부족하지 않으면 좋겠어.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가족이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겠지? 부모님과 함께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그리고 어여쁜 아이들과 함께 삼대가 함께하는 행복한 집에 살면 좋겠다. 특별한 일을 원하는 것이 아니니 이것 만큼은 내가 할 수 있겠어. 그래, 결심했어!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도 좋으니 누구나 할 수 있는 교과서에 나오는 평범한 삶이면 되는 거야!’ 지나 보니 교과서에 나오는 평범한 삶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 당차게 꿈꾸기를 잘했다 생각한다. 다행히도 복이 많아 그 꿈을 이뤘다. 하지만 그사이 내가 원하는 삶을 잊고 원치 않는 삶을 오랜 시간 살기를 반복했으며 여러 번 실패하기도 했다. 결국 삶의 중심이 되는 행복을 원하는 힘을 이용해서 벗어날 수 있었다. 원하는 것을 잊고 산 시간만큼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았고 원하는 삶을 다시 찾고 실천하고 깨닫고 깊이 생각하면서 이룰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은 시간을 절대적 양의 시간인 크로노스와 상대적 질의 시간인 카이로스로 나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크로노스를 살게 된다. 우리는 채워야 할 크로노스를 부여받은 것이다. 아무것도 안 채운다면? 무위조차 크로노스에게는 채움이다. 주관적 시간인 카이로스는 다시 두 가지로 채워진다. 내가 원하는 삶과 원하지 않는 삶이다. 내가 원하는 삶의 예를 들어보자. 원하는 일에 대한 몰입의 즐거움이다. 몰입에 빠지면 시간이 엄청나게 빠르게 흐르거나 반대로 멈춘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내 영혼은 순식간에 성장하고 내 사고는 초인처럼 빨라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고인이 된 토리야마 아키라의 만화 <드래곤 볼>을 본 사람이라면(특히 나처럼 시험기간에 봤다면) 시간과 공간의 방에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원하는 일로 카이로스를 채운 더욱 성장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반면 원하지 않는 삶으로 채워진 카이로스는 한 없이 느리다. 원하지 않는 삶으로 가득 채워져 불행에 찌든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지긋지긋하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빨리 늙어간다. 그들 역시 시간과 공간의 방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삶을 원망하느라 소진했기에 방에서 나왔을 때 나이 든 육신과 성장하지 못한 영혼과 멈춰버린 사고로 후회하는데 다시 시간을 낭비한다. 제우스의 아들인 카이로스를 묘사한 글을 소개하면 더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내가 발가벗은 것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함이고, 앞머리가 많은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 사람들이 금방 알지 못하게 하고, 내가 앞에 있을 때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뒤로 지나가버리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며, 저울을 들고 있는 이유는 기회가 왔을 때 저울을 꺼내 정확히 판단하라는 의미다.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는 이유는 칼날같이 결단하라는 의미다. 나의 이름은 '기회'다."
카이로스는 제우스의 막내아들이다. ‘기회의 신’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기회가 오더라도 잡을 수 없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원하는 삶과 원하지 않는 삶은 내 기분에 따라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이고 그 길의 방향과 결과는 모두 나의 책임이다. 당신은 어느 길을 가겠는가?
이 책은 후회와 반성을 통한 성장의 책이다. 그리고 이 반성을 통해 원하는 삶으로 되돌아간 사람으로서 후회와 반성의 반복 중인 사람들이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는 경험자의 이야기다. 물론 지금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원하지 않는 삶이 나를 찾을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