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을 사랑할 수 없다.
손해 볼수록 행복해지는 마법이 ‘결혼과 출산, 그리고 양육’이라 이야기했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란 자식이었고, 사랑하는 짝을 만나 서로를 그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기 위해 결혼을 했고 사랑의 결실인 자식들에게 행복한 삶의 가치관을 물려주며 헌신하는 남편과 아빠로 살게 되었다. 그것은 본능이고 의무이며 당사자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행복이다. 이 삶을 통해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완전한 행복이 주어지는 것일까?
20대의 방황도 30대의 열정도 이해가 됐다. 내 착오를 통해 반성을 했으며 30대의 열정으로 탄탄한 앞날을 만들어가고 있다 자신했다. 하지만 40을 맞이하면서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내 인생이 80이라면 절반을 올라왔는데 앞으로 절반을 더 올라가야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뛰고 구르고 넘어지며 달려오는 시간 동안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앞으로 40년을 더 달려갈 자신이 없었다. 나는 한 집안의 가장이고 3대의 기둥이었으며 내 삶의 중심에 있었지만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불안감을 넘어 불행의 감정으로 채워지던 시간이었다. 바쁘게 일하는 것은 미덕이라는 착각으로 내 시간을 더 많은 돈과 환산하기 위해 365일 약국을 열고 내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더 많은 돈을 버는데 목숨을 걸고 있었다. 행복한 사람은 경험을 사고 불행한 사람은 물건을 산다 했다. 그게 내 모습이었다. 나는 내 불행을 쓸모없는 물건을 사는데 쓰고 있었고 그 물건이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 착각하고 살았다. 무엇을 샀는지도 모르고 왜 샀는지도 기억 못 할 형편없는 흔적들은 지금도 나를 아프게 한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가족과의 행복한 사진, 그리고 그 추억이면 되었을 것을… 그렇게 나는 몇 발만 더 가면 날아오를 것이라 생각하며 낭떠러지까지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내 마음은 나를 멈춰 세웠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그리고 가족의 지지를 얻고 그렇게 40대의 첫 해에 ‘안식년’을 가지게 되었다.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졌고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원하는 삶을 멈춰 선 시간에서 바라볼 수 있었고 내가 더 이상 달려갈 필요도, 날아오를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길가에 핀 꽃, 눈 위에 펼쳐진 파란 하늘, 맛있는 음식을 만들 시간, 행복을 만끽할 여유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좋은 사람임을 깨달았다. 아 참,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으며 더 좋다. 나는 말하는 게 좋으니까.
안식년을 보내고 난 후 주변 사람들은 부럽다는 이야기를 하며 어떤 기분이었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대답 대신 꼭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십중팔구 불가능한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내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러면 살짝 말을 바꾼다. 안식월은? 안식일은? 그것도 안 된다면 하루 30분은? 대신 최소 매일 30분은 지켜야 한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어른이 된 후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을 사랑하는 시간을 통해 나를 지켜야 한다. 물론 오직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것은 매우 이기적이라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유전자의 지배에 순응하는 사람이기에 불가항력적인 비혼, 미출산이 아니라면 나를 헌신하는 삶에서 더 큰 행복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의무가 아니라 실제로 더 큰 행복이 헌신하는 삶에 들어 있으니까. 그렇게 인류가 번영하기를 바란다. 다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되는 헌신이 되어야 지속가능 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다른 사람의 모습도 사랑스럽다. 약국에서 자식을 챙기는 엄마나 남편을 챙기는 아내를 보면 꼭 하는 말이 있다. “지금 아이를 챙길 때가 아니에요. 제가 보기엔 엄마는 본인을 우선 챙겨야 해요. 엄마들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울 때가 언제냐면요. 자기 자신이 아플수록 가족을 생각해요. 가족이 더 아플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것은 잘못된 사랑이에요. 내가 아픈데 가족 챙겨두고 가족이 내가 아픈 것을 몰라줄 때 제일 서운해하거든요. 어린아이가 가장 많이 보는 얼굴이 누구의 얼굴일까요? 엄마의 얼굴이죠? 그런데 그 엄마의 얼굴이 항상 힘들어 보인다면 우리 아이는 힘든 우주를 보고 자라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 지치고 힘이 드는데 우리 아이의 우주가 밝을 수 있을까요? 저는 오히려 엄마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사랑을 줄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힘이 생깁니다. 저는 제가 제일 행복하고 제가 제일 즐거워요. 그래서 우리 가족도 내 주변도 모두 즐겁게 하려고 애쓰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매일 아침 나를 행복하게 한 뒤에 오르는 출근길에는 마음이 여유롭다. 어떤 차가 내 앞을 가로질러도, 신호가 막혀도, 가끔은 지각을 해도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때때로 내가 불행하다 느껴질 때는 나 역시 상황을 좋게 볼 여유가 없어진다. 나도 모르게 쌍시옷 소리가 나오기도 하고 신호를 무시하고 내 갈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이 치솟기도 한다. 의지력은 총량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행복은 의지력 충전인 반면 고통은 의지력을 방전시킨다.
행복을 실천하기 위한 좋은 2가지 기법이 있다. 하나는 심리주의자적 기법이요, 다른 하나는 환경주의자적 기법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대표적인 심리주의자적 기법이다.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좋은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 있는 내 환경이 불행하다면 ‘염불 하고 자빠진 상황’이 된다. 그러니 내 환경을 행복하게 바꾸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오직 나를 행복하게 할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행복해야 남의 행복이 반갑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을 사랑할 수 없다. 덧붙이자면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때 더 크게 행복을 느낀다. 내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