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 해도 됩니다.
시니어TV에 강연자로 출연을 할 기회가 생겼다. 그것도 행복실천강사로. 강의를 준비하며 제일 생각이 많이 난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시니어TV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텔레비전에 아들이 나오는 모습을 부모님께서 보실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았고 아들의 강의를 보시는 두 분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준비했다.
조류 이상의 동물의 대부분은 출산과 양육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출산과 양육이 가능한 시간은 마지막 출산한 자손이 성체가 되는 시간과 얼추 비슷하다. 조류의 경우 성체가 된 후 생존 기간 내내 출산이 가능하며 임신과 양육기간이 짧은 소형 포유류도 그렇다. 대형 포유류는 물론 인간도 가임기와 생존기간의 갭이 마지막 자손의 양육기간과 얼추 비슷했다. 하지만 인간의 지능은 위생의 개념을 통해 수명을 늘렸고 그 결과 인간은 최근 100년 사이 2배 가까운 수명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 특이한 사항은 수명이 늘었음에도 가임기에는 큰 변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나는 여기에서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생존의 목적이 유전자 전달이라면 끝없는 출산과 양육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고 아이들을 키우는 수고를 행복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상을 주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출산과 양육은 부모에게 오랜 기간 희생을 요구하니 유전자 전달이 충분히 진행되면 더 이상 자기 자신을 괴롭히지 않으려는 것은 아닐까?’
결국 수명을 연장시킨 인간은 ‘사랑이 있는 고생’으로서의 행복을 더 이상 느끼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라는 것이 내 결론이었다.
1940년대 후반에 태어나신 부모님은 6 〮25 시대를 거쳐 가장 가난한 나라의 사람으로 지내셨다. 그리고 평생을 나라와 자식을 위해 헌신하며 사셨다. 그렇기에 지금도 본인의 안위나 행복보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걱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쓰신다. 나는 이런 부모님 덕에 감사히 자라 성인이 되었고 다시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아빠로 살고 있다. 그런데 부모님을 보면서 한 가지 확실하게 깨달은 점은 더 이상 양육의 의무가 없는 시간에 스스로를 잘 살게 하는 것은 ‘나를 위한 행복’인 것이다. 오롯이 나의 즐거움과 의미가 합쳐진 시간을 살 때 가장 건강한 삶을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을 위해 건강하고자 시작한 수영은 35년간 엄마의 몸을 지켜주는 일등공신이었다. 시간이 남아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실 때 권해드린 영어공부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즐거움을 만드는 기쁨이다. 가족을 위해 밭을 다듬고 각종 채소를 키우는 아빠는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신 덕에 건강을 잘 지키고 계신다. 좋아하는 야구팀을 응원하고 기분이 좋은 날 막걸리 한잔과 음악을 즐기시는 모습을 보면 인간의 수명연장의 목적이 가장 잘 달성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얼마 전 강의를 하러 간 대구에서 아주 귀한 경험을 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기사님과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기사님, 역시 연륜이 있으신 베테랑 드라이버 셔서 부드럽고 편안하게 운전을 해주시네요. 감사합니다.”
“아 그래요? 사실 내가 이 일을 평생 한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나이가 좀 많습니다. 내 나이가 여든다섯이에요.”
“우와!!! 정말요? 대단하십니다.” 자극적인 뉴스 기사에서 나오는 고령운전자에 대한 불편한 기사는 접근도 할 수 없는 멋진 기사님의 멋진 모습에 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더 멋진 일은 그다음 이뤄졌다.
“사실, 내가 교직에서 교장으로 퇴임을 했어요. 그리고 11년 동안 아무 일도 안 하고 연금 받으면서 놀려고 하니까 죽을 것 같았어요. 돈을 더 벌 필요도 없고 놀기만 하면 되는데 죽을 날 받아놓은 것처럼 마음이 영 안 좋은 거예요. 그런데 하루는 목욕탕을 갔다가 옆에 있는 사람이 택시를 한다기에 자기도 할 수 있나 물어봤는데 운전만 잘하면 얼마 든 가능하다 하더라고요. 내가 운전은 정말 자신 있으니 시작을 했는데 그게 벌써 10년이 지났어요. 이 앞에 이 마크 보이죠? 이게 대구 택시는 단 한 명 밖에 받지 못한 교통문화대상이에요.”
말씀을 들을수록 내가 열심히 강의하는 인생성공점수 측정법에 완벽한 85점 삶을 지내시며 70대 중반으로도 안 보이는 건강하신 모습은 100점을 충분히 받고도 남을 것이라는 기대에 오히려 내 모습을 반성하고 집에 계신 부모님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을 하더라도 내가 즐겁고 행복한 일을 해야 해요. 그래야 내가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죠. 내가 이렇게 운전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즐겁게 대화를 하며 가치가 있는 삶을 사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어요. 교장으로 퇴임했다니까 왜 그런 일을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이 일이 좋아요. 나를 행복하게 하니까요.”
인생을 알기 위해서는 평생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죽음을 알기 위해서도 평생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 가지 더 있다. 인생을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것도 행복이고 잘 죽기 위해 필요한 것도 행복이다. 노년기의 행복은 생존의 목적이며 삶의 끝을 향해 의연히 걸어갈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내일이 궁금해 행복으로 인해 더욱 굳건해진 마음의 다리로 더 먼 시간을 걸어 70을 지나 80을 채우고 90까지 향할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아름답고 넉넉하며 빼어난 시간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충분히 행복했으니 죽어도 좋은 삶’을 위해서 인간의 노년은 행복에 집중해야 한다.
80을 앞두신 아버지께서 “나는 이제 힘도 없고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 끝났어.”라고 말씀하실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마음이 아픈 만큼 걱정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이라도 더 행복하실 수 있도록 내 역할을 다 할 뿐이다. “아빠, 엄마, 아들이 최선을 다해 부모님의 건강을 챙기지만 그보다 더 챙겨야 할 것은 행복이에요.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을 모두 다 써야 우리가 잘 사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잘 살아야 잘 죽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 지금 당장 행복을 씁시다.”
열심히 살아온 이유가 무엇이며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50년 가까이 살아도 알 수 없지만 80년 가까이 살아도 알기 힘든 것이 인생이다. 동시에 죽음을 직면하면 그 어느 순간보다 선명해지는 것이 삶의 이유와 목표다. 애초에 삶은 죽음의 시작이고 우리는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행복이라는 에너지로 마음껏 다 쓰는 소풍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니 부디 우리 부모님을 포함한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의 노인들이 행복만 해도 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