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관찰한다_J
임팩트, 그리고 팔로우 스루~! 헤드업 하지 않아도 볼이 떨어지는 레드카펫이 시야로 들어온다. 강렬하게 번지는 붉은색. 이 레드카펫은 필시 페어웨이 한가운데다. 앗싸, 스트레이트 구질이다. “엑설런트”와 함께 짝짝짝 박수소리… 축하로 붉게 물든 내 세상은 찬란하다. 고개를 든다. 우와, 볼이 90미터나 날아갔다! 고수들은 웃지 마세요, 저로선 연습 두 달 만에 최고 기록이랍니다. 허리 펴고 올려다본 파란 하늘, 흰 구름을 만끽한다. 넓디넓게 펼쳐진 초록 잔디 위에서 깊고도 상쾌한 숨, 후~! 분명 실내인데 어디선가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골프연습시스템 ‘GDR’이 떡하니 찍혀 있는 스크린 속 잔디가 마치 실제 같다. 실존하는 나는 언젠가는 분명히, 푸릇푸릇 진짜 잔디 위에 서 있으리. ‘페어웨이 플래퍼’ 이디스 커밍이라도 될 것만 같은 새로운 기분이다. ‘에스프레소 더블샷’은 연습 시작 전 루틴이다. 덕분에 뛰는 심장이 한층 박력 넘친다. 가만 서서 치는 볼인데 이렇게 땀날 일인지 모르겠다. 패딩에 머플러로 싸매고 다니는 겨울 날씨가 진정 무색하다. 아, 나 지금 진짜 기분 좋은 거 느껴져요?
오늘 좀 잘 쳤다. 7번 아이언으로 연습한 지 20분 지나 62미터 곧게 보내고 “엑설런트” 받았다. 벗어난 거리 1.6미터. 햇병아리 골린이라서 눈이 인식하는 기록은 비거리와 벗어난 거리 정도다. 볼스피드와 헤드스피드, 백스핀 같은 건 아직 신경도 못 쓴다. 2주 전 드라이버 레슨을 처음 받은 뒤로 아이언 연습과 드라이버 연습을 차례로 반반씩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드라이버로 치면 아이언으로 칠 때보다 멀리 나가야 마땅한 거 아닌가? 하지만 더 긴 채가 여전히 더 어색하다. 그래선지 아이언이나 드라이버나 비거리에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오, 이번엔 드라이버로 81미터를 보냈다! 엑설런트~! 살짝 부드럽게 쳤더니 더 멀리 나갔다. 역시 힘을 빼야 잘 되는 게 있다니깐. 신나게 계속 친다. 90미터 나이스샷…88미터 엑설런트…오, 프로의 조언대로 허리를 더 꺾으니 볼이 더 잘 나가!...... 그렇게 다시 한번, 휙! 또 90미터 나이스샷이다! 와, 오늘 운이 좋은 걸.
레슨 해주는 프로가 말하길, 하프 스윙 단계라 아직은 비거리 같은 기록을 볼 때가 아니랬다. 그래도 나를 찍고 있는 기계가 “나이스샷”이나 “엑설런트”를 외치면 데이터가 표시되는 화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나의 정면과 측면 모습을 어루 관찰하는 카메라와 초짜의 스윙까지도 차별 않고 정성스레 분석해 주는 인공지능(AI)은 성취와 좌절을 표방한 골프의 세계에서 묵묵한 동반자다. 막 골프 연습을 시작하면서 느낀 건데, 이건 자기 폼을 바라보는 맛이 있다. 그저 걷고 앉고 눕는 게 보통인 일상에선 절대 만들어질 수 없는 포즈를 애써 구현하면서 살짝 감탄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뭐, 그건 앞서 해봤던 필라테스나 요가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러고 보면 나는 거울을 보며 하는 운동을 좋아한다. 내가 나를 한눈에 바라보는 일은 거울이 없으면 불가능하니까. 공주병 같은 건 아니다. 나는 그저 나를 관찰하고 싶다. 솔직히 스스로를 가장 제대로 알고 싶다. 거울에 비친 나로부터 거리를 두고 내 밖에 서고 싶은 것이다. 골프연습장엔 거울은 없지만 카메라가 있다. 녹화된 나를 본다. 기계가 “엑설런트”와 “나이스샷” 평가를 줬다는 사실에 이미 기분이 좋아서인지 이만하면 괜찮은 것 같은데 싶다. 대충 감이 좋은 것 같으니 자신감을 갖자고.
인간 참 간사한 게, 여느 평범한 날과 다를 바 없는데 고작 골프 연습 좀 잘된 것 같다고 밤까지 기분이 좋다. 퇴근하고 회식까지 하고 방전된 상태로 귀가한 듯한 K를 굳이 붙잡고 내 스윙 영상을 보여줬다. “오늘 90미터나 쳤거든? 괜찮아 보여?” 내심 칭찬을 기대했다. 그런데 K는, “오버스윙이야. 이렇게 친다고 볼이 멀리 나가는 게 아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는데 꼭 저렇게 밉살맞게 말해야 하나. 내내 고양됐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어졌다. 사실 오버스윙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몰랐기에 검색해 봤다. 대충 더 세게, 멀리 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백스윙을 과하게 한 탓. 그게 내 경우에 해당돼 보였다. 그래도 나름 멀리 보내긴 했는데……. 하긴 지금 내 수준은 비거리보다 자세를 잡아야 하는 왕초보 단계다. 처지도 모르고 경거망동했구나. GDR 앱에서 AI 코치에게 분석을 요청했다. 애걔, 스윙 점수가 고작 69점이다. 어드레스, 전환동작 등을 가장 우선적으로 교정하라는 주문에 사진 속 내 폼을 한참 들여다봤다. 초심자인 나는 아직 스스로 분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누가 알려주기 전에는 뭘 틀렸는지 잘 모른다. 맞고 틀린 자세를 계속 공부해야 한다.
관찰은 분석하기 위함이다. 분석은 교정하기 위함이다. 분석하려면 분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분석 능력이 없으면 관찰한다고 교정할 수가 없다. 내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알려면, 그렇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면 ‘바른 것’에 대한 이해가 먼저다. 적어도 나 자신에 대해선 개선 욕구가 강한 편이다. 뭐든 더 나아질 수 있다면 고치고 싶다. 물론 시도할 때마다 쉬운 일이 아님을 절감하고 좌절하지만. 그래도 발전을 꿈꾸며 공부하고 주의 깊게 살펴보는 과정에 나는 매력을 느낀다. ‘연습장 골퍼’의 주된 과업도 자기 관찰인 것 같다. 실전을 위한 자격을 얻기까지 관찰하고 분석하고 교정하는 수련의 여정이다. 그래선지 연습할 때마다 명상하는 느낌이다. 멀어 보이지만 가고 싶은 길이어서 투지도 생겨난다. 글쎄, 연습 단계에서 다소 과하게 매료된 것 같기도 하다. 골프가 이런 거였나. 참 묘하기도 하지.
*그림 : '나르키소스'(카라바조, 1599년)
문득 자기 관찰을 너무 열심히 하다가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 신화가 떠오른다. 강렬한 명암대비 기법에 탁월했던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는 물에 비친 제 모습에 심취해 세상을 등진 나르키소스의 속절없는 고뇌를 붓으로 그렸다. 자기애가 지나치면 파멸이라는 교훈은 떠올릴 때마다 섬뜩하다. 하지만 나르키소스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일을 주저할 순 없다. 자신을 교정할 수 있는 힘은 자기애에서 비롯된다. 교정하려고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일은 사랑 없이는 어렵다. 그 대상이 무엇이건 마찬가지다. 이해해서 사랑하기보다는 사랑하니까 이해하려는 것 아닌가. 나르키소스가 물에 빠져 죽은 까닭은 단지 자신을 개선하고자 하는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하염없이 쳐다보는 데 머물며 허우적대다 죽었다. 보는 데만 심취하는 건 때로 무용하다.
나는 교정을 열망한다. 관찰의 목적은 개선이다. 나를 보는 건 나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