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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서 Aug 07. 2019

3. 공부로 세상의 빛을 보다

<1장> 다들 이렇게 살 걸요

이 글은 청소년, 청년, 혹은 아직 진로를 고민하는 직장인을 위한 글입니다. 무슨 전공을 선택해야 하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든 친구들을 위해 글을 써 봅니다. 제가 방황하던 시절 누군가가 옆에서 말해 주었으면 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역설적이지만 그런 나를 지탱해준 건 공부였다. ‘경제학과는 무엇을 배울까?, 고등학교를 이과로 졸업했기 때문에 경제의 '경' 자도 모르는 상태였다. 전공필수과목인 경제학원론을 듣기 위해 맨큐의 경제학책을 들고 강의실로 갔다. 그리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교수님의 키가 엄청 작으셨기 때문이다. 전공과목을 담당하는 교수님, 교수님은 선천적으로 키가 크지 않는 연골무형성증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카리스마와 매력만큼은 폭발적이셨다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 시간이 빨리 갔다. 강의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쉽게 전달하는게 교수님의 트레이드마크였기 때문이다. 교수님이 강조하는 부분은 '왜' 였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지, ‘왜’ 이 이론이 탄생했는지 배경지식을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덕분에 경제학 초보인 나에게도 교수님의 강의는 이해가 빨리 됐다. 맨 앞자리에 앉아 오늘은 어떤 얘기를 해주실지 기대하며 교수님의 눈을 바라봤다. 그러다 심심찮게 넘어가는 농담까지 모두 필기하기 시작했다.      




제발 다음 얘기를 알려주세요..현기증 난단 마리에여.. 





<고등학생 시절...>



"혜진아 네 공책 좀 봐도 돼?"

"응~ 봐, 이따가 줘~"     


혜진이는 우리 반 1등이었다. 물리 시간에 또 졸았기 때문에 공책이 깨끗했다. 그럴 때마다 혜진이의 공책을 빌렸다. 글씨들이 장평과 자간을 맞춘 듯 반듯하게 정렬되어 있었고 중요내용과 참고내용은 색이 다른 펜으로 적혀있었다. 한눈에 봐도 정리가 잘 되어있는 노트였다. 다만 혜진이의 노트는 베껴쓰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선생님의 잔소리까지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뭐가 중요한지 모르니까 일단 다 베껴썼다.    



  


혜진아, 베껴쓸게 너무 많은데...??




혜진이는 수업에 완전히 몰입했던 거다.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모두 적으면서 혼자 공부할 때 다시 그 수업시간으로 돌아가서 공부했을 거다. 나도 교수님 수업 내용을 모두 적었다. 지나가는 농담까지 말이다. 그렇게 적어 두니 복습이 쉬웠다. 교수님의 목소리까지 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공부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얘들아 내가 컨닝페이퍼 만드는 법 알려줄까?"

"선배~ 어떻게 하는 건데요~? 알려주세요!"     


어느날 동아리 선배가 컨닝페이퍼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 3년 동안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는 방법이라고 했다. 종이를 접어서 볼펜과 함께 쥐고 있다가 조금씩 돌려 접으며 내용을 보는 방법이었다. 마침 골치 아픈 과목이 있었다. '성과윤리'라는 교양수업이었다. 개념을 이해하면서 문제를 푸는 과목이 아닌 완벽한 암기과목이었다. 무작정 외워야 하는 것밖에 없으니까 손이 가지 않았다. 그 때 선배가 알려준 방법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한번 해볼까? 애들이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손해 아닐까?' 



그날 밤, 10명이 도서관에 모여 컨닝페이퍼를 만들었다.     

 




이럴 시간에 그냥 공부를 할 껄......





컨닝페이퍼는 유용한 공부방법이다. 굳이 시험장에서 몰래 보지 않아도 만들면서 공부를 다 하게 된다. 먼저 작은 종이 한 장에 시험 범위의 요점이 전부 들어가도록 정리해야 한다.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하기 때문에 머리를 써야 한다. 앞글자만 따 보기도 하고, 그림도 그려가며 새벽 3시까지 정리를 했다. 그대로 시험을 쳐도 무리가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시험장에 페이퍼를 들고 갔다. 선배가 가르쳐 준 대로 펜을 쥔 오른손에 잘 숨겨서 말이다. 강의장에 들어가면서부터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거기, 나와."

"네? 저요?"     


시험 종료 10분 전, 컨닝페이퍼를 돌려 접다가 누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양 옆에 조교님이 있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대강의실에 있는 200명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나만 한 거 아니라구요...........ㅜㅜㅜㅜ




조용히 일어나 시험지를 들고 교수님 앞으로 갔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교수님은 내가 제출한 컨닝페이퍼를 펼쳐보셨다. 평소에 조곤조곤한 어조로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이셨다. 아무 말은 하지 않으셨지만, 표정으로 들을 수 있었다. '믿을 수가 없다. 이런 걸 왜? 너는 지각도 안 하고 앞자리에서 열심히 듣지 않았었니?' 실망스럽다는 눈빛이 흘러나왔다. 교수님의 눈을 피하며 뒤도 안 보고 강의실을 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나만 걸렸다. 열 명 중에 나 혼자만 말이다. 너무 화가 났다. '왜 나만 걸렸을까? 재수가 없었나? 하필이면 왜 나였을까?' 선배는 3년 동안 한 번도 안 걸렸다고 했다. 분이 풀리지 않았다. '연서야...괜찮니..?' 라는 친구들의 위로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시는 절대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컨닝페이퍼가 없었어도 답은 쓸 수 있었다. 대충이라도 설명할 수 있었다. 페이퍼는 왜 만들어서 이런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지 속이 상하고 울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이 안 걸린 것도 화가 났지만 가장 크게 화가 난 건 나 자신에게였다. 애들이 한다고 나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시험 마지막 날이어서 다들 들떠있었다. 과목 한 개를 완전히 망치고 나니 의욕이 없어졌다. 집에 가려는데 친구가 붙잡았다. 놀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는 건 더 싫었다. 호프집에서 말없이 술만 마셨다. 다 잊고 싶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웃는게 웃는게 아니라긔 ㅠㅠ





"연서야, 성적 나왔다~!"

"벌써? 오늘이 성적 나오는 날이었구나…. 어때 잘 나왔어?"

"에이 난 망했지 뭐, 그냥 그래. 너도 확인해 봐.“     


1학기를 마치고 서울에서 먹고 쉬고를 반복하던 날이었다. 엄마가 해주는 밥은 맛있었고 침대는 편했다. 오랜만의 북적임에 안정감이 들었다. 달력은 최대한 멀리했다. 대전에 돌아가는 날이 가까워질 때마다 숨은 턱턱 막혔다.      


친구의 전화에 오랜만에 학교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처음으로 확인하는 대학교 점수였다. '그래도 전공은 잘 나왔겠지?' 하며 학번을 넣고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성적확인 버튼이 활성화되어있었다. '달칵' 하고 마우스를 클릭했다. 순간 살짝 눈을 감았다. 실눈을 뜨니 A가 주르륵 적혀있게 아닌가. 경제학원론 A+, 경영학원론 A+, 우리생활속의 말과글 A, 성과윤리 B... 성과윤리 B? B가 적혀있었다. 중간고사는 망쳤지만, 기말고사를 잘 봤나 싶었다. 다행히 C는 면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총점은 4.17. 나쁘지 않은 점수인 것 같다.      




실제 내 학점...




"4.17이네.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뭐? 네가 4.17이 나왔다고? 진짜??"

"응, 왜?"

"석차 봤어?"

"아니."

"너 2등이야. 1등이 별님인데, 걔가 4.18이래 성적이."

"뭐라고???"          


다시 홈페이지를 로그인했다. 등수를 보니, 60명 중 2등! 2등을 했다. '세상에, 내가 2등이라니?' 2등인 것도 놀라웠지만 1등과 0.01점 차이라는 건 더 놀라웠다. 만약 내가 컨닝만 하지 않고 평범하게 시험만 쳤다면 어떻게 됐을까? 1등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눈이 질끈 감겼다. 다시 한번 나에게 화가 났다. 컨닝페이퍼를 만들면서도 강의실에서 펼쳐서 볼 때도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멈췄어야 했다.      





고럼고럼




사람은 실수를 한다. 실수하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반성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마음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컨닝페이퍼를 만들 때, 강의실에 들어갈 때, 컨닝을 할 때, 3번이 넘게 안된다고 외치는 마음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후회했다. 자다가도 눈이 번쩍 떠질 정도로 말이다. 되돌아보니 잘못된 일을 할 때면 항상 마음속에서 ‘그만 둬.’라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때의 경험은 잘못된 선택을 하려고 할 때마다 멈춰서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은 하지 않게 됐다. 실수의 기억이 나를 성장시킨 것이다. 수치스러운 기억이지만 열 명 중에 불려간 사람이 내가 아니었다면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1학년 내내, 이후에도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미간이 찌푸려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 늘 내 자신에게 말했다.


'마음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즉시 그만두자.'라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 (feat. 오나미 언니는 사랑)




속상하긴 했지만 2등도 고등학교 때 나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든 점수였다. 25명 중에 23등은 해봤어도 2등은 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전 학년의 평균 학업 수준 자체가 낮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그룹이든 10% 안에 든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2등은 장학금도 50%나 나온다는 말을 듣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두 분 다 말을 잇지 못하셨다. 공부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린 건 처음이었다. 아빠의 잘했다는 말과 엄마의 환한 웃음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흔한 엄마의 반응.jpg





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시작했다. 학교에 가니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학과 사무실의 조교님은 "네가 연서니?" 하고 갑자기 이름을 물어봤고 강의실에서는 교수님의 시선이 더 자주 느껴졌다. 친구들은 내 노트를 빌려 가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수식어가 '공부 잘하는 애'로 바뀐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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