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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서 Aug 05. 2019

1. 타고난 건 딱하나 - 운동신경

<1장> 다들 이렇게 살 걸요

이 글은 청소년, 청년, 혹은 아직 진로를 고민하는 직장인을 위한 글입니다. 무슨 전공을 선택해야 하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든 친구들을 위해 글을 써 봅니다. 제가 방황하던 시절 누군가가 옆에서 말해 주었으면 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연서야, 너는 운동을 잘해서 여자 중에 짱이다!'      



응? 나 불렀어?



초등학교 졸업식 날 졸업장과 함께 친구들이 쓴 롤링페이퍼를 받았다. A4용지를 가득 메운 친구들의 편지 속에 분홍색 펜으로 쓰인 문장이었다. 삐뚤빼뚤하게 적혀있던 그 글씨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 뽑아줘~ 너랑 같은 편 하고 싶어."     



이 장면이 기억 난다면 당신은 80~90년대생 

        


체육 시간에 가장 많이 듣던 말이다. 구기 종목으로 피구를 할 때면 반에서 공을 제일 잘 던지는 아이 두 명이 가위바위보를 했다. 이기는 사람이 먼저 한 명씩 팀원을 고르는 방식이었다. 


처음부터 피구를 잘한 것은 아니었다. 공을 좋아하다 보니 잘하고 싶었고 선생님의 자세를 보고 연습했다. 시선의 방향, 공을 움켜쥐는 손, 가슴은 내밀고 최대한 손을 뒤로 뻗은 후 두 다리로 단단하게 땅을 딛고 공을 던지는 것, 던지고 나서도 끝까지 공을 보내는 방향에 손을 뻗고 있는 것. 보이는 대로 선생님의 자세를 외워 그대로 따라 하려고 했다. 운동이라면 어떤 것이든 빨리 원리가 이해됐다.      



이거시 진정한 피구왕, 이런 자세가 나와야 한다





배구공을 샀다. 체육 시간이 끝나면 공을 빌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연습은 하고 싶으니까 친구와 함께 용돈을 모았다. 배구공을 산 날부터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놀이터로 갔다. 던지고 받는 것만 몇 시간을 연습했는지 모른다. 최대한 세게도 던져보고, 회전도 넣어 보고, 달려오면서 던져도 봤다. 


언제부턴가 아무리 빨리 공이 날아와도 피하지 않게 됐다. 공의 움직임이 보였고 공을 받아내는 두 손의 근육도 단단해졌다. 더는 구기 종목에서는 경쟁자가 생기지 않았다.     


기본적인 운동신경만큼은 타고난 것 같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빨리 배우고 응용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구기 종목의 주장을 맡았다. 태권도를 하면 사범님이 앞에 나와서 시범을 보이라고 하셨고 농구 실기 시험을 준비할 때는 친구들을 코칭해서 만점을 받도록 도와주곤 했다.          



“엄마 나 체대에 갈까?”     



체대 입시 준비하려면 이런 걸 해야한다는데...



나의 행보를 보면 이상한 질문이 아니었다. 체대에 가고 싶었다. 운동이 눈에 띄는 장점이었으니까. 부모님도 소질이 있다는 것은 알고 계셨지만 단칼에 안된다고 하셨다. 체대를 나와서 먹고살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운동으로 진로를 정하면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 어느 정도의 수입을 벌 수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끝에서 끝 맞추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진로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와 그 이유는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하지 않고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런 고민 없이 그저 부모님이 반대하니까 다른 것을 해야겠다고만 생각했다.      


운동을 포기하고 책을 잡았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교과서를 읽는 것도 어려웠다. 중학교 때는 수학을 좋아했다. 이과를 선택했지만 수학을 못 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이 때 처음 알게 됐다. 물리는 손도 못 댔다. 결국 이과에 가서 이과 다운 과목은 손도 못대보고, 우연히 영어라는 과목에 관심을 갖게됐다.     


친구가 다니는 동네의 작은 영어학원에 다녔다. 젊은 영어 선생님이 계셨고 선생님의 영어 발음은 중저음 톤에 미국식 발음이었다. 선생님이 영어 단어나 문장을 읽을 때마다 발음이 좋아서 자꾸 듣고 싶었다. 그런 선생님이 고등학교 2학년 기말고사에 공약을 거셨다.      




“이번 시험에 100점 맞으면 치킨 파티한다!”

“우와 정말요~?!! 대박~”     



잘생긴 선생님과 치킨을!?




선생님과 같이 치킨을 먹을 수 있다니! 마음속으로 선생님께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부터 종일 영어만 팠다. 시험 범위에 있는 대화문을 통째로 외우고 잠들 때까지 듣기 파일을 들었다.     


“1번에 3, 2번에 5, 3번에 1…40번에 5.”

“40번에 뭐라고?”

“40번에 5번이야~!”

“헐. 나 백 점이야, 백 점 맞았어! 영어!”

“진짜? 진짜야?? 대박인데?”




정말이다, 생애 첫 영어 100점!!



정말 100점이었다.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영어시험에서 50점을 넘겨본 적이 없었다. 엄마한테 먼저 소식을 알려야 하나 학원선생님께 먼저 문자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담임선생님이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담임선생님은 고등학교 2학년 영어를 담당하고 있었다.     


“연서가 100점이니?”

“네 선생님! 저 다 맞았어요!”

“그래?, 문제가 쉽긴 했나 보네.”     





네? 지금 칭찬이 아니었던 거죠?




무슨 말인가 싶어서,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생님은 더이상 말을 하지 않으시고 교실 앞문을 열고 나가셨다. 기분이 이상했다.   


열등생이었던 거다. 공부를 못하는 애인데, 그런 애가 만점을 받았다고 하니 문제가 쉬웠다고 하신 거다. 한순간에 의욕이 사라졌다. 내가 있을 자리는 열등생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했던 학원 선생님과의 치킨을 먹는 자리에서도 맘껏 웃지 못했다.     





아무것도 소용 없다구!...




의욕이 떨어지니 성적은 바닥을 쳤다. 공부를 잘하는 애들이 종종 얘기하는 의사나 변호사도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지하 10층이었다. 지하 10층에서 위로 올라가야겠다는 어떤 희망도 발견하지 못했다. 되는대로 살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할 수 있는지, 해야 하는지를 고민한 적이 없었다. 나 자신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운동도 부모님의 한마디에 포기해버렸고, 영어도 다른 사람의 말에 휩쓸려 공부를 했고, 또 누군가에 의해 포기했다. 답은 어디도 아닌 내 마음속에 있었다. 조금만 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내 길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수능평균 6등급, 내 고등학교 생활은 6등급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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