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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서 Aug 06. 2019

2. 추가 2차 모집에 합격한 열등생

<1장> 다들 이렇게 살 걸요

이 글은 청소년, 청년, 혹은 아직 진로를 고민하는 직장인을 위한 글입니다. 무슨 전공을 선택해야 하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든 친구들을 위해 글을 써 봅니다. 제가 방황하던 시절 누군가가 옆에서 말해 주었으면 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급훈이 아니라 내 얘기. 가, 나, 다군 전부 없었다 ㅜㅜ 



정신을 차려보니 대전이었다. 00대학교 경제학과, 생전 처음 듣는 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마지막까지 갈 수 있는 학교가 없었다. 재수를 해도 나아질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정시 추가모집에는 되는대로 모든 학교에 지원했다. 간신히 한 학교에서 2차 추가모집에 대기 3번으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입학식 일주일 전이였다. 대기자가 빠졌는지 2월 24일에 등록금을 냈고 바로 다음 날 자취방을 구하러 갔다. 시간이 촉박했다. 내 삶인데, 자꾸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날 자꾸 끌고다니는 당신 누구시죠?



학교 기숙사는 한참 전에 마감됐고 근처 원룸도 빈 집이 없는 상태였다. 부동산 수십 곳에 전화를 돌렸다. 엄마는 부동산 사장님에게 애걸복걸했다. 오늘 집을 못 구하면 다시 오기가 어렵다고, 서울에서 왔다고 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말이 자꾸 신경쓰였다. 열 군데 정도의 부동산을 방문하고 나서야 겨우 가정집의 단칸방에 세를 구할 수 있었다. 계약을 마치고 돌아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엄마는 계속 한숨을 쉬었다.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그런 엄마에게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창밖으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엄마는 왜 여기 있는 것일까? (feat. 자식 잘못만나서....)





나에게 집은 북적이는 곳이다. 시끄러운 곳이기도 하다. 다섯 식구가 소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언니와 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한 번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야, 우리 만화책 빌리러 갈래?”

“라면 먹을까?”

“게임해서 진 사람이 아이스크림 사 오기 할래?”     




동생아 같이 놀자 (feat. 언니랑 노는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었다)




방이 3개여도 결국 언니랑은 함께 방을 써야 했다. 태어난 이후로 내 방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항상 잠이 들 때 누군가가 옆에 있었다. 언니랑 노는 건 재밌었다. 한번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조용히 웃으라고 엄마가 핀잔을 줄 정도였고(아~쫌!), 만화책 쌓아두고 읽기, 야식으로 라면 끓여 먹기, 게임을 해서 진 사람이 간식을 사 오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방문을 닫으면 방은 우리의 아지트가 됐다.


대전에 온 지 1일, 1주일, 1달이 지나자 가장 무서운 것이 적막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가정집이었지만 집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집주인은 다른 집에서 살고 있었다.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딸이 휴학을 마치면 살게 하려고 세를 주었다고 했다. 티브이도 없고 오디오도 없는 집에서 생전 처음 독립을 하게 됐다.    

  



집에들어가면 정말 이런느낌이었다. 나말고 아무도 없어 ㅜㅜ



수업이 끝나면 대학가 술집이 즐비한 번화가로 간다. 뒤를 흘끔거리며 좁은 골목들을 지나가면 마트가 있는 건물이 나온다. 전등 하나 없는 계단을 올라간 후 비밀번호를 누른다. 현관문을 열면 불 꺼진 거실이 나를 반겨준다. 혼자 생활하는 게 처음이어서 샤워하는 것도 겁이 났다. 소리가 나는 것이라곤 내 목소리밖에 없었다. 내가 움직이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항상 음식과 간식들이 가득했던 냉장고는 텅텅 비어있었다. 엄마가 해준 밥이 먹고 싶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미역국과 같이 평범하게 느껴졌던 음식들이 제일 많이 생각났다. 요리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혼자 차려 먹는 일은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잘 끓여 먹던 라면도 혼자 먹으려니 입맛이 떨어졌다. 소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쉴 새 없이 혼잣말했고, 그러니 금새 배가 고팠다. 배고플 때를 대비해 초코파이를 사서 쟁여놨다. 초코파이를 꾸역꾸역 먹으며 사람이 그리워서 울며 잠들던 그 날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세상 어디에 있어도 엄마밥이 진리♬




집으로 가고 싶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외로움과 고독함이 가장 힘들었다. 혼자 있을 때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들이 떠올랐고, 고등학교 때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나를 상처 주는 생각들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난 거야....



다행인지 술자리가 많았다. 아니, 취하지 않으면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기에 모임이란 모임은 다 참석했다. 선배들 모임, 동기 모임, 동아리 모임, 친구들 모임 등, 매일 술자리가 있었다. 집에서 밥도 먹지 않으니 학교에서 점심을 먹으며 해장하고 저녁에 다시 술을 마셨다. 오전에 수업이라도 있으면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스쿨버스를 타고 가다가 급하게 내려서 오바이트를 했던 적도 많았다. 그때의 나는 삶을 부정하고 있었다.    

 

“00대로 가주세요.”

“학생 집이 어디야? 대전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왔어요?”

“서울이요.”

“어이구, 우리 아들은 작년에 서울로 갔어~ 걔가 공부를 잘해서~ 애 엄마가 전셋집도 구해주고, 노트북도 사주고…. 어쩌고저쩌고~”

“아~네…….”

“근데 학생은 서울에서 여기로 대학을 온겨?”

“...”     




비수가 팍팍 꽂혔다...




그날도 그랬다. 스쿨버스에서 내려서 전봇대를 부여잡고 오바이트를 했고, 택시를 탔다. 도저히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힘들어서 쉬고 있는데 기사 아저씨가 자꾸 말을 시키는 게 아닌가. 게다가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를 자꾸 캐물으셨다. "공부를 못했으니까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얼굴이 붉어졌다. 술 때문이 아니었다. 정신은 말짱했으니까.     




학종은 아니지만 일단 반란 할게요




다이어리에 ’반드시 서울로 간다‘고 적었다.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을지 아직은 몰랐다. 일단 적었다. 반수를 하든, 재수를 하든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처음으로 나와 대화를 시도했다. 지금 느껴지는 감정은 무엇인지, 후회되는 일들과 앞을 하고 싶은 일들은 무엇인지 무작정 써 내려갔다.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으니 솔직하게 쓸 수 있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글자로 토해놓는 기분이었다.     


 



어디에 적는다곤 하지 않았다 ㅎㅎㅎ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기분들부터 적어봤다. 친구들이 어느 대학에 갔냐고 물어볼 때 느껴지는 감정, 부모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대학을 어디로 갔는지 설명하는 것을 들을 때 느껴지는 감정, 택시기사 아저씨가 어디서 왔냐고 물어볼 때 드는 기분, 사람이 없는 남의 집에서 하루하루를 사는 것... 먼저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리고 나니 다음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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