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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 Feb 26. 2023

따뜻한 나라의 우울에 대하여

태국여행 ⑤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


“아~ 날씨 너무 좋다! 딱 이거지~ 여기는 맨날 따뜻하니까 사람들이 우울증도 잘 안 걸리겠다야”


뜨거운 해를 가득히도 받아들인 건물과 나무들이 다시금 노란빛을 내뿜고 있는 따뜻한 치앙마이. 그리고 그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고층의 숙소로 옮긴 직후, 행복한 친구는 말한다.


추운 겨울이 싫어 일 년 내내 여름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는 진정으로 친구보다 이 뜨거움과 가벼운 옷차림이 더 행복하다고, 아니 세상에서 내가 제일 여름을 원한다고 장담할 수 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이 다가오며 스산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교실, 창밖으로 잎사귀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그 겨울은 나를 잠시 어딘가 데려가는 듯했다. 무언가 붕- 뜬 느낌, 더운 여름의 기억은 생생한데 겨울의 기억은 왠지 모르게 뿌옇고 그득한 감수성 안으로 곱게 포개어진 것들처럼 다가오는 것 같았다. 지금도 왠지 다시 추억할 때에 여름은 현실 같고 겨울은 꿈같다. 그렇다고 여름을 더 현실적으로 살아간 것은 아닌데 말이다. 다만 길을 걷다 만난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조차 기온이 문제 되지 않는 모든 것이 쉽고 자유로운 여름의 바깥 기억들, 그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일들이 내게 더 뜨겁게 닿아 그런 것일 수도. 확연히 이 뜨거움이 좋다. 걱정과 불안 떨치고 이 순간을, 현재를 살겠다는 나의 오랜 다짐이 한몫한다.


그런데 겨울의 매서운 추위보다도 더 나를 자주 희끄무레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여름이더라도 화창하지 않은 ‘날씨’ 때문일 것이다. 해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랑한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나는 무수히 많은 날, 오늘도 나와주어 고맙다고 해를 똑바로 쳐다보며 외친 결과 눈 밑의 주근깨와 기미를 많이도 얻었다. 그도 나의 메시지를 들었는지 내가 밖으로 나갈 때면 쨍하고 웃어주며 화답한다. 모두가 내가 햇빛요정이라는 말에 코웃음 친다 해도 태양, 그러니까 해와 나 사이에는 남들이 모르는 의리와 사랑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도 해는 나만 편애할 수 없기에, 또 이 땅의 많은 작물들도 많은 사람들도 돌보아야 하기에 몇 번씩은 비와 먹구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또 그 덕분에 나는 날씨로 인한 우울함도 가끔 느껴본다.


종종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해가 나는 추운 겨울과 비 오는 여름날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 한다면? 여름이 전부라지만 창 밖 깨끗하고도 높은 파란 하늘이 답을 주저하게 한다. 기온과 햇빛, ‘날씨가 좋다’의 기준은 이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추운 겨울, 햇빛이 나니 날씨가 좋다고 말했는데 돌아오는 반응은 “뭐가 좋아 춥잖아! ”라는 친구들이 준 핀잔이 생각난다. 기온과 일조량은 대화뿐 아니라 나의 기분과 감정을 요란법석하게 한다.


태국은 세 개의 계절로 나뉜 열대기후 나라이다. 3월부터 5월까지는 덥고 건조한 날씨로 평균 기온은 34도 정도까지 올라가는 매우 더운 계절이다. 6월에서 10월까지는 평균 29도 정도의 날씨로 우기에 해당한다. 하루에 한 두 차례 소나기가 내리며 비가 오지 않을 때는 화창하게 해가 비치는 날씨이다. 그들에겐 겨울인 세 계절 중 가장 시원한 11월에서 2월은 낮에는 32도까지 올라가지만 아침과 저녁에는 20도 정도까지 내려가 선선한 날씨를 즐길 수 있다. 이곳 치앙마이를 비롯한 북부지방은 다른 곳보다 더 선선하며 11월부터 5월까지 가장 건조하다. 반면 태국의 남부지방은 북부와 중부지방의 강우량 1,400mm보다 훨씬 많은 연평균 2,400mm의 강우량을 보여 우기와 건기 두 시즌으로 나누기도 한다.


나의 4번의 태국 여행이 모두 건기에 이루어진 것이 신기했다. 우기를 피해 3번의 태국여행을 주도했던 아빠께 감사할 따름이다. 요약하면 태국은 3개의 계절을 가지고 있고 강수량을 기준으로 하면 건기와 우기 두 시기로 나뉠 수 있는데 일 년의 절반 가량이 비가 하루에 한 두 차례 온다. 그리고 우기가 오기 전이 가장 기온이 높다.(우기는 5-10월, 건기는 11-4월)


한국의 연평균 강수량은 1,300mm이다. 세계 평균인 880mm보다 많지만 태국 남부지방의 우기는 우리 강수량의 2배 수준이다. 태국을 비롯하여 우기를 가진 많은 국가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에는 ‘장마철’이 있다. 앞뒤로도 온다지만 7월과 8월이 그때이다. 우리가 태국의 우기를 피하여 여행 가는 것처럼 외국인들도 우리나라에 여행을 올 때 장마철을 피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쨌든 태국은 강수량도 두 배, 비가 오는 기간도 우리의 두 배, 근데 연속적으로 4-5달간이다. 그러나 비가 오는 모양새는 우리와 다르다. 베트남의 우기와 이탈리아의 우기가 기억난다. 그곳에서 잠깐씩 내리고 그치던 아주 착한 비를 맞다가 한국으로 왔을 때 하루 종일 지지리도 오는 비가 새삼 신기할 따름이었다. 태국도 잠깐씩 내리는 소나기라 할 수 있다. 스콜이니 지구과학에, 한국지리까지는 오늘은 무리인 듯하다.


다시 기온으로 돌아와, 여름만 가득한 이곳 사람들은 스산하고 차가운 겨울의 고독하거나 시린 어느 구석이 없을까. 살을 에리는 추위에 연인과 이별이라도 한다 치면 마음까지 아파 몸인지 마음인지 어디가 추운 건지 모르겠던 적은 없을까. 뜨거운 태양 아래 땡모반을 단숨에 들이키며 대체로 평화롭고 활기차고 즐거울까.


기후와 우울증의 상관관계를 찾아보다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단계로 넘어가기가 힘든 나에게는 우울증이라는 개념부터 쉽지 않았다. 그냥 나로서는 매일 어느 부분에서는 우울한 것 같기 때문이다. 태국의 우울증을 뒤로하고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우울증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알고 싶었다.

우울증은, 우울감과 활동력 저하를 특징으로 하는 정신적 상태를 가리키는데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기능에 변화가 생겨 부정적인 감정이 나타나고 대인관계, 스트레스, 경제적 문제 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우울감은 인간 심리에 있어 자연스러운 일이나 그 정도나 기간 등이 비정상적인 경우 병리적인 상태로 볼 수 있다. 우울증의 원인은 하나의 원인이라기보다 다양한 원인에 의하여 발생되는 질환인데 유전적 소인, 내분비 이상, 생활 스트레스, 성격적 특성, 대인관계의 문제, 아동기의 갈등, 뇌신경전달물질 관리체계의 이상, 노화 등이 있다.


정의를 봤는데도 여전히 쉽지 않다. 모두 자신만이 아는 감정이라는 것에서 기준이 정확하지 않다는 부분이 조금은 모호하게 다가온다. ‘스트레스’만 놓고 보아도 스트레스의 어느 부분까지 ‘우울증’이라고 진단 내릴 수 있을까. 남들은 내가 되어보지 않는 이상, 듣기만 했을 땐 별 거 아닐 수 있을 스트레스도 정작 당사자는 그 고통에서 헤어 나오기 힘이 들어 어느 늪에 계속해 빠져 가며 걷잡을 수 없는 어떤 기분이라 나는 생각하는데, 의사 선생님들은 그 점을 무엇으로 어떻게, 어느 기준으로 심각성의 정도를 판단하는지 궁금해졌다.


우울증이 처음 등장한 것은 무려 2000년 전으로, 치료의 대상으로 인정되고 약물이 개발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당시 병의 실체를 몰랐던 고대인들은 우울을 악마의 저주로 여겼다. 이것이 치료 가능한 신경정신질환으로 이해되기까지는 현대의학의 발전이라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The Madhouse>, William Hogarth  출처 구글



'18세기 영국 풍자화가인 윌리엄 호가스의 작품으로 당시 악명 높았던 런던의 정신병원 ‘베들렘’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 남자가 머릿니 예방을 위해 삭발당하고 거의 알몸으로 왼팔과 오른발이 쇠사슬에 묶인 채 기대어 앉아있다. 뒤에는 멋지게 차려입은 두 명의 여성 관광객이 재미있다는 듯 수감자들을 구경한다. 말이 병원이지 실은 정신질환자를 감금한 수용소였다. 당시 색다른 재미를 찾는 방문객들이 베들렘을 관광했고 부자들은 돈을 지불하기도 했다. ‘매드하우스’는 한 젊은이가 삶의 쾌락을 좇아 유흥과 도박에 전 재산을 탕진한 끝에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 과정을 그린 ‘방탕아의 편력’ 8부작 중 마지막 그림이다. 호가스는 산업혁명 이후 부상한 신흥자산계급 출신의 난봉꾼 톰 레이크웰의 인생 역정을 통해 당대 만연한 배금주의와 속물성, 질병과 범죄, 빈곤, 매춘 등 대도시 런던의 어두운 면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오랫동안 정신질환자는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중세는 물론 20세기 초까지도 선천적 기형과 정신질환을 천형으로 여겼고 가혹하게 대했다. 17세기 중반, 절대군주 루이 14세는 파리에 구빈원을 세워 광인들을 수용했다. 정신질환자를 극빈자, 장애인, 매독 환자, 범죄좌와 같은 부류로 뭉뚱그려 강제로 가두었던 것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광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사람들로부터 격리하는 게 목적이었을 뿐 치료는 전혀 하지 않았다. 수용소의 참혹한 장면을 묘사한 위 그림에서처럼 구빈원에서는 고문과 구타, 학대가 자행되었고 심지어 오락거리를 찾아 이곳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동물원의 동물 구경하듯이 창문 쇠창살 사이로 들여다보고 환자를 놀리거나 작은 창을 던져 묶여 있는 환자를 맞히기도 했다.'

-김선지(한국일보, 뜻밖의 미술사)


1808년 독일인 의사 요한 크리스찬 라일이 “정신과(정신의학)”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라일은 정신과 육체는 연속선 상에 있으며 의학과 정신과는 분리될 수 없다는 두 가지 원칙에서 “정신과”라는 새로운 진료과목을 확립한다. 철학자와 신학의 영역에서 의학의 주 분야로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라일은 정신질환자들의 인권을 강조하였으며 반 낙인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렇다. 우울과 함께한 인류의 긴 역사에 비해 비교적 최근인 근대에 이르러서야 생물정신의학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근대정신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에밀 크레펠린은 정신질환을 증상에 따라 계통적으로 분류하는 기술정신의학을 시도하였으며 정신질환의 개념과 진단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일률적으로 정신병이라고 불리던 정신 증상을 조울증(현대의 주요 우울장애와 양극성 장애)과 현대에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불리는 조발성 치매로 분류하였다. 정신질환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정신질환은 생물학과 유전적인 이상에 의하여 발생한다고도 생각하였다.


정신과에 과학적인 지식과 원칙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신경과 의사들의 공헌에 의하여 19세기말에 들어서다. 20세기에 들어서 기초과학의 발달을 토대로 생물정신의학, 정신약물학, 심리치료가 발달하게 된다. (신경전달물질과 수용체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리튬, 삼환계 및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계열의 항우울제 등을 사용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신의학의 발전선상에서 현재는 치료 가능한 신경정신질환으로 인식되고 있는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 불릴 정도로 흔한 질병이기도 하지만 적절한 시기에 치료받지 못하면 자살에 이를 수 있어서 매우 위험하다.  전 세계 우울증 환자는 3억 명에 달한다. 그러나 현재 사용되는 우울증 치료제에는 부작용, 치료효과 지연 등 많은 한계가 있다. 우울증 환자의 약 30%는 어떤 치료제로도 호전되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연구자들이 새로운 치료제 개발을 모색하고 있다.


우울증은 어떻게 진단할까. 찾으며 놀란 사실은 우울증을 진단하는 그 도구들이 무척이나 다양하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인간을 어떤 기준으로 진단할까라는 궁금증에 대한 역시나의 결과인 것이라 생각한다. 각 국가별 세세한 요소들과 사회가 변화되어 가며 고려해야 할 요인들이 끊임없이 솟아날 것처럼 보인다.


우울장애의 증상을 자기보고를 통하여 측정하는 도구가 다수 개발되어 있지만 국내외 일차의료영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Beck 우울척도, 해밀톤 우울척도 등 대부분의 척도는 항목수가 많아 실시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현대적 우울증상과는 다른 측면이 많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좀 더 실시가 간편하고 DSM-IV 진단기준에 부합하는 측정도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글판 우울증 선별도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서울아산병원 정신과학교실, 2010


그동안 우울증을 측정하고 우울장애를 진단하는 평가도구에 대한 연구들이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너무 많은 평가도구가 존재하여 오히려 임상가나 연구자가 평가 목적에 맞는 가장 적절한 도구를 선택하는 것이 어려운 경향이 있다.

- '우울증 관련 평가도구의 개관',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 우울증 임상연구센터, 2007



가장 대표적인 평가척도인 Hamilton이 개발한 HDRS, 전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벡 우울척도(BDI), 널리 알려진 역학연구 우울척도 CES-D, 9가지 문항으로 이루어진 PHQ-9(한글판 우울증 선별도구) 등등 각기 다른 문항 수와 조금씩 다른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평가도구들은 계속해서 타당도와 신뢰도를 검증하고 우울증 선별을 위한 최적의 결과를 내기 위해 기존의 내용이 개정되고 국내 상황에 맞게 번역되어 재개발된다. 또한 노인우울척도, 출산 후 우울증 척도와 같은 다른 요인으로부터 오는 우울에 맞게 개발된 척도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인간이기에, 그리고 정확히 타인이 되어 느껴보지 못하기에 완전하지 않은 감정을 그래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평가도구를 다시 보고 고쳐보고 만들어보고 조사해 보고 적용해 보았는지 여러 개발자와 평가기준과 문항과 배점들에, 새삼 또 다른 광범위한 세상의 실타래에 그저 혀를 내두르게 된다. 20개가 넘어가는 문항과 10개도 안 되는 문항을 비교하면서, 적은 문항의 도구에서는 이렇게 간단한 항목만으로 나의 우울증이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 문항이 많은 게 더 세밀해져 구체적으로 뽑아낼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단지 잠깐 내가 한 고민을 평생을 걸쳐 하며 연구하신 많은 의사 선생님들을 떠올리며 생각을 다시 접어둔다.


난 다시 기온으로 인한 우울을 찾아본다. 그러던 중, ‘계절성우울’, ‘계절성 정동장애’, ‘비정형 우울’ 같은 것들을 발견했다. ‘계절우울증’을 살펴보다 이런 식으로 비슷한 의미의 단어나 종류가 있어 정리해 보았다.


계절성우울증(계절성 정동장애)은 우울감이 생겼다가 좋아지는 양상이 특정 계절과 관련되는 경우를 말한다. 주로 햇빛이 적어지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증상이 나타났다가 봄이 되면 좋아지는 것을 반복하는데, 드물게 봄부터 여름까지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햇빛의 양이 줄어들고 평소 햇빛에 맞춰 움직이던 우리 몸의 생체시계의 균형이 깨지면서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햇빛이 적어지면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드는데 세로토닌 농도가 떨어지면 우울감을 느낄 수 있다. 수면과 관련이 있는 멜라토닌 분비는 늘어나면서 잠이 많아지고 무기력해지기도 하는 것이 그것이다.


계절성 우울증은 통상적인 우울증과는 다른 양상이 있어 ‘비정형 우울증’이라고도 한다. 계절성 우울증에서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보다는 잠을 너무 자는 과다수면이 나타나고 식욕저하보다는 식욕이 증가하는 경우가 많으며 몸이 축 처지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런 증상은 조울증에서 우울상태일 때 나타나는 증상과 유사하므로 계절성 우울증인지 조울증인지 또 이런 증상을 유발하는 다른 신체적 질병은 없는지 감별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한다.


우울증을 파헤치고 있자니 곧장 ‘자살률’로 연결되는 기사와 자료가 거의 대부분이다. 우울증 평가도구와 여러 우울증 종류들을 보며 눈이 뱅글뱅글 돌아 정신이 혼미해질 때 즈음, 바로 기온과 자살률을 연결시켜 보기로 했다.


<폭염이 자살률을 높인다>

최근 Nature climate change라는 학술지에 폭염과 자살률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가 발표됐다. Marshall Burke 교수와 그 동료들은 북미와 멕시코에서 각각 80만, 60만 명의 자살 사망자들과 사망자들이 살던 주의 기온변화에 대해 그 관련성을 알아보려는 시도를 했는데 그 결과 놀랍게도 지역의 평균 기온이 섭씨 1도 오를수록 북미에선 자살률이 0.7%, 멕시코에선 2.1%, 두 나라 평균 1.4%의 증가를 보였다고 한다. 해당 지역의 부, 성별, 사회적 지위 등과 같은 여러 변수들을 감안하더라도 더운 기간에는 자살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Marshall Burke교수는 “기온이 완만하게 상승할 경우, 세계적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부담이 더욱 크게 증가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전 지구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가 기온 상승에 대한 제반 비용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건강에 대한 비용 또한 증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만약 2050년까지 평균 기온이 2.5도씨가량 상승한다고 했을 때 이에 따른 자살률 또한 1.85%가량 증가할 것이고 이는 북미와 멕시코에서 자살로 인한 20000여 명의 추가 사망자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구자들은 뇌의 온도조절과 같은 생물학적인 변화가 기온 상승으로 인한 정신건강의 영향과 관련이 있다고 추측한다. 무더위가 심해지면 체내에서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 혈류의 흐름과 신체 내 분포가 자동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뇌로 흘러가는 혈류의 변화 또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무더위와 우울감의 상관관계>

또 연구자들은 14개월 동안 트위터에 올라온 약 6만 개의 게시물을 조사했는데 ‘혼자, 차가운, 외로운, 갇힌’과 같은 단어를 사용한 게시물이 기온 상승과 함께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한다. 이는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 중 ‘우울감’을 드러내는 단어들이다. 자살 사고 및 자살 행동은 우울 삽화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이다. 또, 자살 사망자 중 대다수는 우울감, 충동성과 같은 치료받아야 할 정신병리를 가지고 있거나 실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무더위는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먼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덥고 습한 열대야는 우울증 환자들이 겨우 유지하고 있던 수면 패턴을 망가뜨린다. 또 더위로 인한 활동 감소 또한 활력을 줄이게 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무더위는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유발하는데, 스트레스의 잦은 발생에 취약한 우울증 환자들은 더욱 고통스럽다. 이 또한 기온 변화와 정신 건강의 관련성에 대해 기민하게 반응해야 할 이유가 될 것이다.

물론 여러 변수를 감안했다 할지라도 날씨와 자살률이 100%의 인과관계를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다. 여러 원인에 대한 가설들 또한 검증이 더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와 그로 인한 엄청난 무더위가 분명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기정사실에 가깝다. 통계적인 사실을 그저 흥미로만 치부하기보다 그 가능성에 착안하여 더위와 정신건강에 필요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정신의학신문, 2018 “최신연구-짜증 나는 폭염, 실제로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 모두의 평생 과제인 지구와 온도를 지키는 일은 결국 우리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쏜살같은 일상에 곧잘 잊을 법한 지구라는 환자를 떠올렸다면 이제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간다.



더운 나라인 태국에 사는 사람이 느끼는 계절 그리고 기온 그리고 우울감을 느낄지에 대한 내 궁금증의 해답은 아래 뉴스로 대신하고 싶다.


‘항상 더운 나라’로 인식돼 잇는 태국에서도 사람이 얼어 죽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태국의 일간 영자지 네이션은 10일 프래주에서 26살 먹은 축산농민이 9일 아침 일하러 들에 나갔다가 추위 때문에 숨졌다고 보도했다. 네이션은 의료진의 부검 보고서를 인용, 솜분 민톤이라는 이 농민이 속옷만 입은 채 의식을 잃은 모습으로 발견됐다고 전했다. 솜분의 몸이 견디기에는 날씨가 너무 추웠다고 현지 보건 담당 관리들은 말했다. 솜밧은 동생을 병원에 싣고 갔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태국 북부 기상대는 공식적으로 10월 중순께 겨울이 시작되며 다음주가 되면 깊숙한 북부 지역은 날씨가 더 추워진다고 밝혔다. ‘인타논’ 산 정상 기온은 현재 섭씨 10도까지 떨어졌고 태국 중부 지역의 경우에도 중국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 때문에 곧 기온이 섭씨 2~3도가량 내려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고 네이션은 전했다. 솜분-솜밧 형제가 소를 키우는 프래주는 치앙마이와 치앙라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태국은 열대성 기후로 전국의 연평균 기온이 섭씨 27~28도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은 한국과 중국처럼 사계절의 변동이 큰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 더 많이 생기며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생기는 것으로 관찰됐다.


상대적으로 동남아시아보다 사계절의 변동이 큰 우리나라와 같은 지역에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이 더 많이 생기니 계절과 온도의 영향으로 우울증이 덜 생길 수는 있겠다. 그러나 안 추우니 덜 우울하겠다라는 말은 애초에 맞지 않다.


치앙마이의 12월 아침은 꽤나 쌀쌀하다. 아침을 먹으러 갈 때면 오들오들 떨기도 했다. 물론 감사한 것은 긴팔 면 티 정도면 전혀 춥지 않으니 만족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는 태국인들을 보니 패딩점퍼를 입고 있다. 그러다 낮이 되면 내리쬐는 태양에 나와 친구는 나시탑만 입고 다닌다. 이곳 태국도 한국처럼 계절이 나뉘어져있기에 우리보다 겨울 기온이 높을 뿐, 이들도 추위를 느낀다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문득 내가 이제껏 경험한 온도만으로 여긴 항상 덥네 따뜻하네를 외치며 마치 내가 생각하는 '여름'처럼 일 년 내도록 신나고 활기찬 나라일 거라 쌓아나갔던 편견을 반성한다. 따뜻한 나라도 우울하다. 이웃나라 베트남의 젊은이들이 최근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기사가 떠오른다.



특정계절로 인한 우울도, 경쟁사회 속 번아웃으로 인한 우울감도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누구도 어느 부분에서 우울을 늘 가슴에 품고 끝까지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울에 관한 그 어떤 종류의 자료에서도 계속해서 등장하는 '자살공화국, 한국'은 어딘지 모르게 아프다.







친구와 늘, 모든 것을 이기는 것은 사랑이라 이야기한다. 오늘따라 이 사랑이 지구 더 많은 사람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로지 사랑뿐이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의 소설 및 동명의 영화 <컨택트>중에서






이곳에도, 또 어느 곳에나 사랑은 있다.



친구와 나 사이에 치앙마이의 따뜻한 해가 드리운다.

















참고, 인용


논문

1991, ‘한국에서의 CES-D (Center for Epidemiological Studies-Depression Scale)의 사용-표준화 및 요인구조에 대한 횡문화적 검토’, 신승철 외 8인

2010, ‘한글판 우울증 선별도구(PHQ-9: Patient Health Questionnaire-9)의 신뢰도와 타당도’, 박승진외 4인


기사

2006, 한국경제,  '더운 나라 태국서도 추위로 죽는다'

2009, 부산일보, '정신질환 편견을 깨자-정신과 치료의 역사'

2010, 경향신문, '내 안의 살인자...'우울증''

2013, 헬스미디어, '자살과 우울증의 상관관계 아시아 공동 연구'

2015, 대한민국정책브리핑, '계절성 우울증 극복하는 3가지 방법'

2016, 뉴스원, '날씨는 맑은데 기분은 우울?... 겨울보다 자살 많은 봄 '주의''

2019, 헬스조선, '바다 근처 사는 사람, 정신질환 위험 낮다'

2019, 인저리타임, '(기고)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2021, 한국경제, '기초과학 리포트-우울증 치료의 과거, 현재, 미래'

2021, 경남도민신문, '현장칼럼-우울증은 인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2021, 한국일보, '정신질환, 그 폭력의 역사-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

2022, 국민일보, '아직도 OECD 1위...'자살공화국' 불명예'

2022, 아세안데일리 뉴스, '베트남에도 덮친 번아웃... 베트남 인구 30%가 정신 질환 앓아'


사이트

태국정부관광청 http://www.visitthailand.or.kr

하버드신경과의원 블로그 ’<기획연재>10. 정신과(정신의학)의 역사’

https://m.blog.naver.com/harvardclinic/22077365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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