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수어 에세이를 마치며
"어떤 일을 끝까지 해내는 건
결국 그 일을 오래 사랑하는 자의 몫이다."
– 한강, 『채식주의자』
늘 곁에 있다는 이유로 소중함을 자주 잊곤 한다. 수어도 그랬다. 수어를 배운 지 딱 1년 7개월째 되는 날, 수어를 못 배운 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수어와 함께였다. 늘 가까이에 있었기에 수어를 얼마나 애정하는지 알지 못했다. 누군가 수어 하는 모습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깨달았다.
'아, 나 수어를 참 많이 애정하고 있었구나.'
어떤 사랑은 참 못난 모습이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런 못난 사랑을 하고 싶진 않았다. 누군가 수어 하는 모습을 보며 느꼈던 감정은 '뺏겼다'였다. '분명 내가 수어와 함께한 시간이 더 긴데...' 하면서 말이다. 이건 일종의 집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수어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동시에 나만 알고 싶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뒤섞인, 모순적인 감정이 들었다.
며칠 전, 장애이해교육을 위해 수어 교구를 만든 분을 봤다. 수어를 잘 알지 못한 채로 교구를 만든 것을 보고 순간 놀랐다. 그러나 이내 그런 시도가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깨닫게 됐고 수어를 세상에 알리려는 그의 노력이 감사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이 조금 불편했다. 누군가 수어를 다룰 때마다 기쁘면서 동시에 이상한 심통이 났다. 수어가 세상에 알려지는 건 분명 좋은 일인데, 왜 나는 괜히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사랑이었다. 조금 비뚤어진 사랑일지라도 수어를 향한 마음은 분명 사랑이었다. 물론 나도 안다. 어떤 언어도 누구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비뚤어진 사랑 속에 이성적인 생각이 들어올 틈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스스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수어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언어다. 오랜 시간 곁에 두었고 깊이 애정해 왔기에 문득문득 ‘내 언어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이 언어가 누군가에게 단순히 흥미나 콘텐츠 소비의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랐다. 실력이 부족했던 시절, 수어 영상을 찍어 올리고 싶었다. 그러나 자꾸만 지적을 받다 보니 위축됐고 결국 표현을 멈추게 됐다. 단지 ‘하고 싶은 말을 수어로 하고 싶었을 뿐’인데, 점점 눈치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러다 문득, 지금의 내가 누군가를 향해 똑같이 눈치를 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아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간섭하게 되듯, 수어를 향한 나의 마음도 비뚤어진 애정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수어가 바르게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 오해 없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분명 소중하지만 그 마음이 누군가에게 장벽처럼 느껴지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어는 자유롭게 표현하고 서로 배우며, 실수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언어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 길에 애정을 보내는 사람이고 싶다.
처음 수어를 배우던 날이 생각난다. 2시간 내내 강사님만 보고 있던 내가 낯설었고 그 경험이 너무 생경해서 수어에 빠지게 된 날, 그렇게 나를 홀려버린 수어가 참 좋았다. 첫날과 지금을 비교하면 엄청나게 성장했다. 수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1시간가량 수어 수업도 직접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늘 제자리인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든다.
5월 중순, '수어 스토리텔링 수업' 공고를 보자마자 바로 신청해 버렸다. 이게 바로 수어 중독인 걸까.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수어스토리작품 제작!" 이 얼마나 치명적인 유혹인가, 이 문구에 홀랑 넘어가 버렸다. 며칠 전엔 스토리텔링 수업에서 그림책을 수어로 읽어주는 활동을 했다. 나만의 해석을 담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 재미있었고, 이 언어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수어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온전히 표현하고 싶다. 이번 스토리텔링 작품은 가장 하고 싶은 말로 구성하려고 한다. 에세이는 여기서 마무리되지만,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토리텔링 작품이 완성되면 꼭 함께 나누고 싶다.
누군가는 '끝점을 그리고 그 방향대로 살아야 한다'라고 하지만, 수어만큼은 끝점을 찍어두고 싶지 않다. 수어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 채로, 그저 그 길을 오래도록 즐기며 함께 걷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무엇을 꼭 해내지 않더라도 수어를 오래 사랑하는 사람이고 싶다.
에세이를 쓰는 내내 바랐다.
이 글을 통해 누군가가 수어의 세계를 알게 되기를,
그리고 수어가 있는 어딘가에서 우리가 서로 만나게 되기를.
나는 여전히, 이 아름다운 언어가 당신의 손끝에서 피어나길 바란다.
언제, 어디선가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
2025. 6. 30. 수어를 애정하는 귀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