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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마주할 용기

사회공포증 있던 내가 수어 교원이 되기까지

by 귀로미

나에 대한 의심이 걷힌 자리에

새살처럼 차오르는 용기

그 용기로 무거운 한 걸음을 내디딘다

이미 겪어 익숙한 그 두려움 속으로

그 싸움 끝에 어떤 미래가 우릴 기다릴지라도

– 드라마 《미지의 서울》 중


언제부터였을까.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두려웠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목소리가 떨리고, 가슴은 마구 뛰었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기만 해도 온몸에 긴장이 퍼졌다. 대학교 전공 수업에서 ‘사회공포증’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마치 내 얘기인 줄 알았다.


사회적 공포증(Sociophobia), 특정한 사회적 상황에서 타인에게 평가받거나 창피를 당할까 두려워하고, 그 상황을 피하거나 극심한 불안을 보이는 증상.


그 시작은 초등학교 1학년, 받아쓰기 시험 날부터였다. 그날이 여전히 생생하다. 시험이 끝나고 선생님은 짝과 바꿔서 채점을 하라고 하셨고, 짝꿍은 “0점이야!” 하며 나를 놀려댔다.


"0점 맞은 사람 일어나."


선생님은 0점 맞은 아이들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셨다. 나는 몸이 굳었다. 0점 맞은 사실도 창피했지만, 부끄러움을 넘어 아이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내가 일어나지 않자 짝꿍은 "너 0점 맞았잖아." 하며 소리친다. 얼굴이 벌게진 나는 "아니거든! 10점이거든."하고 받아친다. 하지만 곧 “10점 맞은 사람 일어나.”라는 말이 돌아왔다. 나 자신에게 거짓말한 것도 부끄러운데 아이들에게 창피하게 주목받았던 날, 나는 그 이후로 누군가에게 주목받을 때마다 그날의 감정이 올라왔다.


그런 내가, 나를 들여다보면서 두려움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자발적으로 사람들 앞에 설 기회를 만들었다. 여전히 두렵지만,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아주 작게, 그러나 확실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그렇게 '작가와의 만남'을 하게 되었다. 왜 일력을 만들었는지, 어떻게 수어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며, 직접 수어를 알려주는 시간을 가졌다. 놀라웠다. 나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웃고 우는 사람들, 수어를 궁금해하고 배우려는 사람들 통해 '두려움'이 아닌 '치유'를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할 때 두려움에 맞설 수 있구나 하고 말이다.

그날 이후, 나는 아주 작게, 나의 두려움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선택한 한국수어교원양성과정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가르치는 건 13년이나 했으니 괜찮겠지’라는 안일함은 곧 무너졌다. 수어를 잘하는 사람들과 함께 수업을 듣다 보니, 부족함이 명확하게 드러났고 지적받는 일이 잦아졌다. 지적을 많이 받다 보니 스스로가 작아졌고, 그런 채로 수강생들 앞에서 발표를 하니 깊은 좌절감이 느껴졌다.


6월 4일, 멀게만 느껴지던 강의 실습 날이 한달음에 다가왔다. 첫 실습은 기초반 수업이었다. 10명 남짓한 분들이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모든 눈이 나를 향하니 긴장이 몰려왔다. 수업, 제법 열심히 준비했지만 피드백은 냉정했다. ‘수어 정확성이 부족하다.’, ‘액션이 작다.’ 아쉬운 피드백만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 길을 가고 싶은 걸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반복됐다. 피드백의 원인을 분석하기보다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예전처럼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어떤 강의를 하고 싶지?”


그때부터 방향을 바꿨다. 남은 실습 두 번은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녹여 강의를 준비했다. 어휘를 알려주되, 내가 경험한 삶의 이야기들을 넣었고, 수강생들은 어떤 이야기를 가졌는지 물어보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서서히 긴장이 누그러졌고, 수어도 더 자연스러워졌다.


5개월, 총 20회. 한국수어교원 양성과정, 그 긴 여정을 이제 단 두 번만 남겨두고 있다. 실습을 하면서 좌절하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몇 번의 작은 시도들 덕분에 나는 분명히 나아지고 있었다. 그 시간은 나에게 단순히 수어 실력이 늘어난 것 이상의 의미였다.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이제는 그 두려움에서 도망치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됐다. 그 용기로,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배웠다.


여전히 수어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고,
내 안의 두려움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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