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 대한 최대의 모욕은 “무시당한다”는 것이다(김용운, 1986). 무시를 당한다는 것은 단순한 인격모독만이 아닌 자신의 체면이 손상당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은 대인관계나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의 자존감을 방어하기 위해 체면에 대한 욕구를 가지게 된다. 허세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자아방어기제(defense mechanism)이다(박영숙, 1993). 소득이 높고 학력 수준이 낮은 사람의 경우, 자신이 남들로부터 존중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우에 과시적 소비정도가 높게 나타난다. 이는 과시적 소비행동이 성공여부를 물질로 과시하여 자기 존재를 타인에게 인정받고 향상하려 하기 때문이다(박은아,1994). 결국 자기 방어는 자신의 모자란 면을 인정하지 않고 허세와 과시를 통해 이를 만회해 보려는 체면의 구성요소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기 방어의 성향은 명품구매를 통해서도 나타날 수 있다. 즉, 한국인은 자기 방어 성향에 의해 명품을 구매하게 됨으로써 소유자가 구매이전 느낀 열등감이나 의기소침함을 극복할 수도 있으며(Grossom and Shapiro, 1988), 나아가서는 신분 상승감을 느낄 수 있다. <논문 중에서>
결국,
한국인은 명품을 무시당하기 싫어서 산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리는 연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한국인은 사실 연애를 재미로 하는 게 아니라
준거집단에 무시당하기 싫어서 하는 것 아닐까?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한국의 데이팅 프로그램이다.
데이팅 프로그램에서 출연자의 직업은 신분제도와 같은 힘을 발휘한다.
더불어 상대방에게 자신이 중산층 이상의 경제 상황이라는 점을 어필하고
자신이 모자람 없는 인물임을 어필하는, 궁극의 필살기다.
하지만 의사, 대기업 직원 등
워낙에 고스펙 출연자가 넘쳐나다 보니
직업으로 체면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외모, 성격 등 아주 근본적인 요소들로 상대방에게 호감을 사야하는데
이는 한국인의 쓰잘 데 없는 겉치레를 강타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내가 가진 경제적 자산과 사회적 신분 정도면
남들 다하는 연애 그까짓 거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바나 정글 같은 곳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니 무시당하는 것 같고
그래서 화를 내는 출연자도 속출한다.
급발진하면 뭐가 달라지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러 왔다면서
무시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쇼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재산이나 성적 매력을 어필하면서
단타 연애의 진수만 보여주는 쇼
요즘 한국의 데이팅 프로그램은 딱 그 수준이다.
그리고 요즘 한국의 연애 시장 역시 딱 그 정도다.
자신이 속해있는 준거집단의 의사결정이나 행동에 반한 처신을 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준거집단 내의 사람들과의 이질성을 경계하는 성향을 보였는데 이것은 소비에 있어서 더욱 민감하게 나타난다. 상품을 구매할 때 자신과 동일한 준거집단에 있는 사람들 및 동료 등의 수준을 의식하게 된다. 나의 준거집단 사람들이나 동료가 구입한 명품브랜드 정도의 수준 정도는 나도 구매하거나 그에 대한 취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집단 속에 속한 개인으로서 체면이 서고 적절한 소비생활 을 하는 것이라 여기게 된다. 동조행동 성향은 한국인이 남을 의식하는 가장 전형적인 특성이며 다른 사람의 소비 수준에 맞춰 소비를 함으로써 구매 후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고 체면치레를 했다는 만족감이 드는 것이다.... 한국인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뿐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에 대한 질타를 하기도 한다. <논문 중에서>
더불어 대학 가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는 Flow를 따르지 않으면
질타하고 비난하는 한국에서
적당하고 재밌는 연애는 사라지고
타인의 시선에 맞춰, 준거집단에 맞춰 결혼으로 내달려야 하는 연애만 팔리니
결국 모두가 지쳐버린 게 아닐까.
그냥 빨리빨리 남들 눈에 맞춰서
적당한 사람 구해서 결혼에 골인하고
가족과 나의 체면을 지키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 젊은이들이
그냥 연애를 포기한것은 아닐까.
미국의 대표적인 데이팅 프로그램인 <투핫(Too hot to handle)>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외적 매력이 넘치는 이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사랑에 빠지게 하고
스킨십을 하는 순간 상금을 빼앗는,
악랄한 구성의 프로그램이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굉장히 많은 나라 버전으로 제작되었고
그때마다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인기 있었던 것은 사실
노출이 심해서도, 자극적이어서도 아니라
서양권에서 추구하는 가족주의에 부합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들은 성별로 구별된 침실에서 생활하지만 썸을 탈 경우에는 남녀 구분 없이 같은 침대에서 취침하기도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선정적인 기획은 표면적으로 보면 미국의 섹슈얼리티로 보이나 사실 프로그램의 포맷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볼 경우 이는 오히려 미국의 개신교적 섹슈얼리티에 가깝다.
투핫 포맷에서 상금을 제외한 보상은 다름 아닌 커플을 위한 스위트룸이다 이들이 스위트룸에 들어갈 수 있는 커플을 인정하는 자격은 진정한 사랑인데 이 기준은 프로그램 내부에서 만들어진다. 출연자들이 성적인 접촉을 하지 않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할 경우 인공지능 스피커에 불이 켜지면서 스위트룸의 보상을 축하하고 기념한다. 이 지점이 흥미로운 이유는 사실상 그 진정성 있는 대화라는 것이 가족이나 인생에 대한 가치관 등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나누는 것에 방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진정한 사랑은 출연진들이 섹스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힌 동물적 일상이 아닌 가족주의적이고 관계지향적인 인간적 순간에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스위트룸에서 삽입섹스를 하지 않은 커플은 다음날 다른 출연진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진정한 사랑을 확인받는다.
- 논문 <'국가적 섹슈얼리티(national sexuality)' 상상: 국내와 해외 '리얼리티 데이팅 쇼'의 트랜스내셔널 포맷 분석을 통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