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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조 Nov 15. 2024

사랑에 대한 단상들

당신이 일상에서 찾은 사랑은 어땠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ccti-6ijn1c




[단상 하나]

이번 가을에

종로를 가로지르는 파란 버스 안에 앉아 밖을 바라보았다.


은행잎 떨어지는 길가에서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 뒤에는

하얀 머리에 분홍 꽃무늬 옷을 차려입은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피며 한숨 돌리다가

손에 든 하얀 비닐봉지를 고쳐 잡고

몇 발자국 떼었다.


체크무늬 정장을 차려입은 할아버지는

재촉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아내의 발걸음이 그에게로 다달아

수평을 이루자

할아버지는 주름진 손으로 할머니의 등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할머니가 비닐봉지 안에는 약이 것 같다.

할머니에게 지병이 있을까.


가을날

종로의 길을 걷는 노부부는

천천히, 천천히 길을 찾아 걸어갔다.


그 끝이 죽음으로 맺어지더라도

걷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듯이.





[단상 둘]



회사 동료와 점심 산책을 나섰다.

그날은 서늘한 가을 날씨에 온몸의 세포가 동글동글 뒤틀리며

상쾌하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가을을 누리며

동료와 산책을 하던 중

작은 골목길에서

주인과 산책 중인 갈색 강아지를 만났다.


왜인지 절뚝이는 모습에 시선이 가던 찰나에 동료가 말했다.

"저 강아지, 다리 하나가 없어요..."


동료가 말한 대로 그 강아지에게는 앞다리 하나가 없었다.

이리 절뚝, 저리 절뚝.

콩콩 뛰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 작은 생명체는

자기 나름의 몸짓과 움직임으로

세상 냄새를 맡고

귀를 펄럭이며 가을을 느끼고 있었을 뿐이니까.


옆을 지나갈 때

나는 괜스레 더 환하게 웃으며

"와, 안녕! 너 너무 귀엽다!"라고 외쳐주었다.


장애가 있든 말든

너 자체로도 너무 귀엽고 아름답다고 외쳐주고 싶었다.


그러자 강아지는 나를 올려다보며

헤헤거리며 혀를 내밀고 웃었다.

표정에서 진심으로 '행복하다'라고 외치며 웃었다.


순하고 순수하고 즐거움 그 자체로의,

존재는 얼마나 예쁜지.







[단상 셋]

수능 필적확인 문구에 등장한 시가 너무 예뻤다.



나는 너의 이름조차 아끼는 아빠

너의 이름 아래엔

행운의 날개가 펄럭인다


웃어서 저절로 얻어진

공주 천사라는 별명처럼

암 너는 천사로 세상에 온 내 딸


빗물 촉촉이 내려

토사 속에서

연둣빛 싹이 트는 봄처럼 너는 곱다


예쁜 나이, 예쁜 딸아

늘 그렇게 곱게 한 송이 꽃으로

시간을 꽁꽁 묶어 매고 살아라


너는 나에게 지상 최고의 기쁨

저 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펼쳐라

함박꽃 같은 내 딸아.



- 곽의영 시인의 시 '하나뿐인 예쁜 딸아'




사랑의 모습은 형형색색.

오늘도 사랑은 세상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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