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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단상들

당신이 일상에서 찾은 사랑은 어땠나요

by 유조

https://www.youtube.com/watch?v=ccti-6ijn1c




[단상 하나]

이번 가을에

종로를 가로지르는 파란 버스 안에 앉아 밖을 바라보았다.


은행잎 떨어지는 길가에서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 뒤에는

하얀 머리에 분홍 꽃무늬 옷을 차려입은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피며 한숨 돌리다가

손에 든 하얀 비닐봉지를 고쳐 잡고

몇 발자국 떼었다.


체크무늬 정장을 차려입은 할아버지는

재촉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아내의 발걸음이 그에게로 다달아

수평을 이루자

할아버지는 주름진 손으로 할머니의 등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할머니가 든 비닐봉지 안에는 약이 든 것 같다.

할머니에게 지병이 있을까.


가을날

종로의 길을 걷는 노부부는

천천히, 천천히 길을 찾아 걸어갔다.


그 끝이 죽음으로 맺어지더라도

걷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듯이.





[단상 둘]



회사 동료와 점심 산책을 나섰다.

그날은 서늘한 가을 날씨에 온몸의 세포가 동글동글 뒤틀리며

상쾌하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가을을 누리며

동료와 산책을 하던 중

작은 골목길에서

주인과 산책 중인 갈색 강아지를 만났다.


왜인지 절뚝이는 모습에 시선이 가던 찰나에 동료가 말했다.

"저 강아지, 다리 하나가 없어요..."


동료가 말한 대로 그 강아지에게는 앞다리 하나가 없었다.

이리 절뚝, 저리 절뚝.

콩콩 뛰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 작은 생명체는

자기 나름의 몸짓과 움직임으로

세상 냄새를 맡고

귀를 펄럭이며 가을을 느끼고 있었을 뿐이니까.


옆을 지나갈 때

나는 괜스레 더 환하게 웃으며

"와, 안녕! 너 너무 귀엽다!"라고 외쳐주었다.


장애가 있든 말든

너 자체로도 너무 귀엽고 아름답다고 외쳐주고 싶었다.


그러자 강아지는 나를 올려다보며

헤헤거리며 혀를 내밀고 웃었다.

표정에서 진심으로 '행복하다'라고 외치며 웃었다.


순하고 순수하고 즐거움 그 자체로의,

존재는 얼마나 예쁜지.







[단상 셋]

수능 필적확인 문구에 등장한 시가 너무 예뻤다.



나는 너의 이름조차 아끼는 아빠

너의 이름 아래엔

행운의 날개가 펄럭인다


웃어서 저절로 얻어진

공주 천사라는 별명처럼

암 너는 천사로 세상에 온 내 딸


빗물 촉촉이 내려

토사 속에서

연둣빛 싹이 트는 봄처럼 너는 곱다


예쁜 나이, 예쁜 딸아

늘 그렇게 곱게 한 송이 꽃으로

시간을 꽁꽁 묶어 매고 살아라


너는 나에게 지상 최고의 기쁨

저 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펼쳐라

함박꽃 같은 내 딸아.



- 곽의영 시인의 시 '하나뿐인 예쁜 딸아'




사랑의 모습은 형형색색.

오늘도 사랑은 세상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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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