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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조 Nov 29. 2024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순간들

당신의 사랑은 정상일까



#1.

목과 허리가 아팠던 사람.


젊은 나이에 수술을 했지만

해결되지 않는 불편함 때문에

하루종일 얼굴을 구기고 앉아있던 그.


나를 보며 환히 웃다가

'너는 참 행복한 일이 많아서 좋겠다'라고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나에게

'넌 몸 건강해서 참 좋겠다'라고 하고


종일 연락이 닿지 않아 내가 화를 내자

'아픈 사람은 그럴 수 있다'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던 사람.


"너의 가스라이팅에 지쳤다"는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가 언제 너를 아프게 했냐고 되묻던 사람.





#2.

아파서 종일 답장을 잘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던 밤.


아직 서먹한 사이에

갑자기 집밖으로 불러내고

죽을 건네며 먹으라고 말하던 사람.


2시간을 운전해서 왔으니

반갑게 웃을 줄 알았는데

내가 웃지 않아서 당황스럽다던 사람.


있는 힘을 짜내어

웃어 보였지만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던,

그 사람.


왜 아픈지,

고통스러웠던 신입 사원의 하루는 어땠는지 묻기보다

자신의 깜짝 선물에 기뻐하지 않음에 대해

계속 섭섭함을 토로하던 그날 밤.


하지만 자신은 사랑에 최선을 다했다던

사람.



#3.


오랜만에 연락한 지인들과

밥약속이 있다고 말한 날.

주말이면 당연히 자신과 있어야 하지 않는다고 되묻고.


미안한 마음에

지인들과 찍은 사진, 음식 사진을 보내며

다음에 같이 오자고 말하니

'혼자서 맛있는 거 먹으면 좋냐'라고 틱틱거리던.


중요한 회의를 앞둔 순간에

전화를 안 받는다고 화를 내고

연락이 끊어지면 사랑의 무게를 마음대로 가늠하던.


주말에 계속 약속을 잡을 거면

위치 추적이 가능한 앱을 깔아서

자신을 안심시키라던.


그런 사람.





이 셋은

각각 다른 나이대에 했던

내 연애의 단편들이다.







곱씹어보니

많은 연애의 순간 속에서

가장 슬펐던 시간은

어린 아이 달래듯 사랑을 해야 할 때였다.


나는 '사랑'을 하고 싶었던 건데

유치원생의 어른놀이를 하는 것마냥

어느 드라마에 나오는 도파민 돋는 커플마냥

오르내리는 관계 위에서 흔들거렸다.


상대의 가장 예쁜 모습을 찾으며 버티다가

그래도 다시 한번 노력해 보려고 참아내다가

상대의 철없는 서걱거림에

상처받고 물러나기 일쑤였다.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을 참 좋아한다.

그 소설에선 한 어린 아이와 가까워진 여자 주인공이 이런 말을 한다.


"노마가 있으면 묘한 안정감이 더했다. 긴장은 잦아들고 이상하게도, 보호받는 기분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는 기분. 어두운 밤이 그런 우리를 감싸안는 느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착해지는 것 같았다. 함께 걸며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고 겨울에는 붕어빵을 사먹었다. 봄과 가을에는 꽃과 단풍과 밤바람에 들떠서 무엇을 사 먹을 생각도 못했다. 노마가 집에 들어가 문을 잠그는 소리까지 듣고, 담을 들여보내며 내일 보자 인사하고, 집에 돌아와 대충 씻고 누우면 일어나야 할 시간까지 네다섯 시간쯤 남아 있곤 했다. 몸은 고되고 앞날은 곤죽 같아도, 마음 한구석에 영영 변질되지 않을 따뜻한 밥 한덩이를 품은 느낌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이 구절이 사랑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서 더욱 더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또 많은 날 나는 사랑하면서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하고, 분명 살아 있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버린다. 그러니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지만, 사랑하고 쓴다는 것은 지금 내게 ‘가장 좋은 것’이다. 살다보면 그보다 좋은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더 좋은 것 따위, 되도록 오랫동안 모른 채 살고 싶다."





사실 애초에 아주 날카로운 마음을 가지고

이 연재를 시작하였는데


요즘은 그것이 무뎌지고

최진영 작가의 글마냥

마음 한구석 따뜻한 밥 한 덩이 품으면 그만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곤한다.


이혼과 불륜과 거들먹이 난무하는 브런치에서

내가 따뜻한 글을 보태면

조금은 나은 곳이 되긴하는걸까.



자꾸만 골방에서 소설 쓰고 싶은 마음이 샘솟아서

고민이 느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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