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의 끝은 있다
여기 불행한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5살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14살에는 큰 누나를 잃었고
이어 여동생까지 정신병을 앓기 시작합니다.
가족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종교에 미쳐
자식들을 괴롭히기 시작했지요.
남자는 가혹한 인생에서 허우적대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은 하나같이 음울했습니다.
불안과 강박장애가 그대로 드러나는 그림들이었지요.
그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첫 사랑을 6년간 쫓아다녔지만 실연당합니다.
두 번째 연인은 친구에게 빼앗깁니다.
세 번째 연인은 남자를 스토킹하다가 총을 쏘고 달아납니다.
총을 맞고 피를 철철 흘리던 남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대체 내 인생에 사랑이란게 있긴 한가'라고 생각했을까요.
이 남자의 이름은 뭉크
불행의 연속이던 어느 날
그는 세상이 자신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규(The Scream)>이라는 작품을 그렸습니다.
불행과 불행이 손잡고 그를 옥죄어오는 느낌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림입니다.
그는 이내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우울의 늪에 빠진 그는 정신병원이 자신을 구원해주길 빌었습니다.
그가 사는 노르웨이에서는
겨울 동안 몇날 며칠이고 해가 뜨지 않는 '극야'가 있습니다.
길고 어두운 겨울 속을 뭉크는 우울과 함께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뭉크는
긴 겨울 끝에 찬란하게 떠오르는 봄의 첫 태양을 보았습니다.
우울 그 자체의 삶에서
뭉크는 자신의 가장 밝음을 짜내어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찬란하고 절박하게
삶은 그래도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을만큼
처절한 밝음을 그렸습니다.
그는 이후 그림과 사랑에 빠져
80세까지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며 살았습니다.
잔잔하고 행복하게 삶을 살아냈습니다.
한강 작가님이 소설을 쓰며 고민하셨다던 질문들입니다.
뭉크 역시 아마 그림을 그리며
이런 질문들을 고민했을 겁니다.
사랑 때문에 힘든 당신께 이 글을 부칩니다.
당신과 내가 할 일은
묵묵히 이 고통스런 삶을 살아내는 것뿐.
긴 터널 끝에
환한 태양이 그리고 작은 사랑이
우리를 마중나올 것이라 믿으면서,
희망을 기대하는 삶이 좋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