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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화 Sep 07. 2024

09. 떠난 사람들

진영 (1)





중학교 1학년 여름.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교실 안으로 낭랑하게 울렸다. 다음 시간은 체육시간이어서 학생들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바삐 움직였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앉아 있었다. 내 자리는 왼쪽 맨 앞 창가 자리였는데, 쉬는 시간이든 아니든 자주 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으로 학교의 전경을 내려다보는 일은 적당히 지루하면서도, 또 적당히 시간 때우기에 적합한 일이었다.


매일같이 보아도 중학교의 구조는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학교 건물은 몸집이 작은 아이들 입장에서는 꽤나 가파른 돌계단 위에 있었는데, 운동장은 그 계단 아래 있었다. 어렸을 적에는 그 계단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오르고 내리기 전부터 그 앞에 서면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그 돌계단 위에서 내려다보는 여름의 운동장은 아주 위험해 보였다. 텁텁한 흙먼지가 운동장 전체를 자주 휘감았고, 다각형의 햇볕이 내리쬐어 따갑기만 했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처럼.


내가 고아라는 사실을 학교 모든 사람이 알았다. 반 친구들은, 아니 친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같은 반 학생들은 나를 매일같이 놀려댔다. 대놓고 흉을 보는 아이부터 은근하고 비열하게 놀리는 아이까지 다양했다. 그 중에서도 아주 악질인 학생이 있었다. 주변의 학생들이 내게 부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한 장본인이었다. 그는 나에게도 많은 것을 알려줬다. 


상처받았을 때도 상처받지 않은 척 연기해야만 더 큰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것, 놀림으로 가슴이 아파도 참고 참아야만 비로소 상처주기를 멈춘다는 것. 그가 나를 왜 그토록 싫어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고아이기 때문인 것 같았는데, 그 이유가 놀림감 취급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나는 학생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렴 이유야 만들어 갖다붙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냥 내가 싫었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다른 사람이라면 질색하듯이.



나는 체육시간에 맞춰 운동장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어김 없이 가파른 돌계단 앞에 서서, 타는 듯한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반 학생들은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돌계단을 재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벌써 몇 명은 운동장에 도착해, 뿌옇게 이는 흙먼지 속으로 속속들이 들어갔다. 운동장이 아이들을 통째로 삼키는 듯했다. 뒤에서 아이들이 와와 소리치며 달려왔지만 내 곁으로는 아무도 다가오지도 않았다. 나를 지나쳐 하나둘씩 내려가는 반 학생들을 바라보며 체육 수업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오늘 체육 활동에서 나의 역할이 벌써부터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았다. 교사도 나를 보호해주지 못했고, 때로는 내가 고아인 점을 은근슬쩍 들먹이며 따돌렸다. 체육 선생은 그런 선생님 중에서도 가장 티를 많이 내는 부류였다. 


오늘은 그냥 아프다고 할까. 빠지면 싫은 소리를 들을 텐데. 


마지못해 운동장으로 내려가기 위해 돌계단으로 발을 떼려는 찰나,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밀었다. 얼굴을 못 봤지만 아마 악질인 그 친구였을 것이다. 순간 등허리에 소름이 쫙 뻗었고, 신체의 말단은 지독하게 경악했다. 중력도 완력과 한 패였다. 나는 모든 힘의 총합에 저항하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져 돌계단으로 굴러 떨어졌다. 멈출 수가 없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회전했고, 나는 매순간 아팠다. 주변의 온갖 것이 한꺼번에 섞여 흘렀다. 


상처와 하늘과 땅, 상처와 돌과 나무, 상처와 학생들 그리고 나의 이름. 



학생들이 나의 이름을 한 목소리로 불렀던 것 같다. 목소리만으로 나의 상처뿐인 가속운동을 그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내게 어떤 힘도 행사하지 못했다. 나는 온몸에 상처를 입으며 굴러 떨어지다가 계단 중간의 평평한 부분에 이르러서야 나무에 등을 부딪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일어설 수는 없었다. 계단 위에서 학생들이 부리나케 내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가까워오는 그 모습을 보다가 온몸의 끝마디에서부터 오르는 통증을 한꺼번에 느꼈다. 정말 아팠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온몸이 찢어질 듯 너무 아파서 눈물이 절로 났다.


“엄마-”


왜 인간은 위험에 처하면 엄마를 부르는가. 아니, 왜 엄마라는 단어를 쓰는가. 나는 아직도 그 지점이 몹시 속상하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 본성을 피할 수 없었다. 무조건반사처럼 크나큰 고통 후에 나를 보호해줄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것이었다. 고통과 함께 울고 불며 엄마를 불렀다. 하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쯤은 어린 나도 잘 알았다. 엄마는 내게 오지 못하니까.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까.


“엄마-”


학생들이 계단에서 내려와 내 주변을 둘러쌌다. 나는 여전히 아프기는 했지만, 더 이상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계속 엄마를 불렀다. 아무리 불러도 오지 못할 그 사람을 불렀다. 낯설고 어줍었다. 그랬다. 나는 그때까지 엄마라는 단어를 제대로 입에 담은 적이 없었다. 억울했다. 여태껏 내가 엄마를 부를 수 있는 순간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후에서야 내게도 마음껏 엄마를 부를 수 있는 순간이 온 것이었다.


“엄마!”


학생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생경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에게는 익숙하겠지만 내게는 낯설기만 한 단어. 결국에는 단어로만 남을 그 단어. 닿지 못할 그 단어. 나는 지금까지 익히지 못한 단어를 연습하듯 힘껏 발성했다.


“엄마!”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았지만 엄마를 목 놓아 불렀다. 엄마를 부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듯이.


“엄마-!”







수신 신호가 울린다. 깜박 잠에 들었던 모양이다. 거친 모래바람으로 피곤하기는 했나 보다. 눈을 뜨자마자 목구멍이 막힌 듯 먹먹한 이유는 아마도 어릴 적 악에 받쳐 엄마를 외치는 꿈 때문이겠지. 이 기억은 꿈 때문이라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한 부분도 왜곡되지 않고 그대로 반복된다. 다른 꿈처럼 공허한 빈자리로 남지도 않고 머릿속에 가득 자리를 잡는다. 그 느낌이 참 묘하다. 우는 중이 아니라, 다 울고 난 다음에 느낌이랄까.


조금은 멍하고, 나를 둘러싼 주위의 것들이 오랜 시간 동안 낯설다. 손을 뻗어도 영영 닿지 못할 듯이 아주 멀다. 우주 한가운데에서는 어느 누구나 비슷한 처지일 텐데, 엄마를 부르는 꿈 때문에 유독 그 상태가 심하다는 뜻이다. 가끔씩 꿈속에서 엄마를 목이 쉬어라 부른 탓인지, 그때 이후로 엄마라는 단어를 입에 담아본 적이 없다. 이제 그 단어를 말할 필요도 없고, 우주로 나와서는 말을 할 기회 자체가 없으므로 아주 낯선 단어가 되었다. 아무렴 상관없다. 그 꿈도 이제 그만 꿀 때가 된 것 같은데, 우주까지 따라와 나를 괴롭히는 탓에 조금 억울하기는 하다.


수신함을 확인한다. 다음 행성의 좌표가 도착했다. 나는 잠시 넋을 잃고 앉아 숨을 고른다. 다시 잠잠하다. 사무치도록 고요한 공간에 앉아 있으면 진정 홀로 된 듯하다. 이 세상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착각이 든다. 그 착각이 거짓이라는 여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전혀 외롭지가 않다. 다른 누구를 찾을 필요도 없다.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는 감흥에 젖어 우주선의 내부를 둘러본다.



내 한 몸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 풍족하지는 않지만 성실하게 마련되어 있다. 나의 임무를 위한 것들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10번째 행성에 도착한 후에, 다시 지구로 귀환하는 것이 임무의 마지막이다. 우주에 이렇게 떠 있으면 가끔은 지구에는 이미 아무도 없고 나 혼자서 살아남은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점박이와, 보통 사람들, 우주와는 상관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제는 우주를 바라보지 않을 사람들, 나처럼 하루하루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 천천히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겠지.


행성의 좌표와 행로를 입력한다. 나는 여기 있고, 다음 행성은 저기. 막상 행성에서 다른 행성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 내가 아주 중요한 임무를 띤 인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존 가능한 행성을 찾는다는 터무니없는 임무의 수행자로서가 아니라, 행성과 행성을 잇는 행위자 자체로서 말이다.


원래는 아무런 관계가 없던 행성들이 단지 내가 오고 간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긴밀한 사이가 된 기분이다. 그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행성들의 이름은 탐사를 진행한 우주비행사의 이름을 따와 붙인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꽤나 마음에 드는 제도다. 마치 내가 별자리를 직접 만드는 사람처럼 생각될 때, 아무 의미 없던 점들이 선으로 연결될 때, 그럴 때 나는 아직도 씁쓸하게 상상해보는 것이다. 


내게는 부재한 인연과, 쉬이 허락되지 않은 만남과, 내가 만들지 않았지만 속해 있을지도 모르는 관계에 대해.







그날은 김태진 선생의 마지막 날이었다. 송별회도 없이 밤늦게 돌아가는 그를 따라 나는 헐레벌떡 쫓아 나왔다. 그는 놀라 물었지만, 목소리는 엄했다.


“아니, 어떻게 나왔어. 지금 기숙사에 있을 시간 아닌가.”


“몰래 나왔습니다. 안 걸릴 겁니다. 어차피 저한테는 아무도 신경 안 씁니다.”


“무슨 소리. 모두가 자네를 보고 있네. 어서 돌아가지 않고.”


“선생님 가시는데, 어떻게 아무도 안 나옵니까. 정문까지만 같이 가겠습니다.”


그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젓더니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우주로 가시는 겁니까?”


“그게 원래 내 일이야.”


“이제 못 본다니, 사실 조금 아쉽습니다.”


“자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저라고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하여간, 승질머리 하고는.”


우리는 눈을 마주치고 가볍게 웃었다.


“이 년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런 말은 말아. 나한테 감사할 게 뭐가 있어. 난 선생 체질이 아니야.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오게 된 거네.”


“이곳에 오신 거, 후회하십니까?”


“후회? 아니 꼭 그런 건 아니네. 그동안 나도 꽤 좋았어. 옛날 생각도 많이 하고.”


“선생님이 그런 말도 하실 줄 아십니까?” 우리는 방금보다는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아무래도 나도 많이 변한 것 같군.”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이 보였고, 운동장을 지나는 우리들의 발자국 소리가 자박자박 들렸다.


“자네가 아주 예전에 물었었지. 어째서 규정을 어기고 생명줄을 해제했는지.”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제가 철없이……”


“아내 때문이었네.”


“예?” 


나는 더 말을 잇지 않고 선생의 뒷말을 기다렸다.





10. 우리가 살아가는 곳 _ 진영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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