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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화 Sep 10. 2024

10. 우리가 살아가는 곳

진영 (2)





김태진 선생은 담담히 말을 붙였다.


“아내 때문이었어. 아내도 원래는 우주비행사였네. 한 행성의 심화 조사를 위해서 우리 부부가 파견됐고, 우리는 각자 조사를 시작했지. 조사를 마칠 쯤, 생명줄 해제 경고가 울렸네. 나는 놀라서 아내를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어. 조사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분명 옆에 있었는데 말이지. 나는 아내에게 교신을 시도했지만 답이 없었네. 우주선을 중심으로 생명줄이 닿을 수 있는 범위를 수색했지. 아내는 내가 있던 곳 반대편 멀리 서 있었네. 생명줄을 해제하고.”


“도대체 왜……”


“아내는 우두커니 서서 무언가에 홀린 듯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네. 나는 돌아오라고 계속 교신했지. 그러자 요지부동이었던 아내가 갑자기 응시하던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네. 점점 더 멀어졌지.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거야.”


선생은 잠시 말을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 자네라면 침착하게 규정대로 할 수 있겠어?”


나는 답할 수 없었다. 이십대 초반인 내게 아내가 있을 리가 없었고, 설령 있다 하여도 선생의 물음은 쉽게 답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그는 읊조리듯 말을 이었다.


“아내는 이 세상에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유일한 사람이야. 아내를 첫눈에 보자마자 알았어. 우리는 처음부터 만날 수밖에 없었던 사이라는 걸. 그런 아내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었네. 그 순간에 나는, 또 다시 나는, 혼자가 되고 있었어. 그때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네. 규정이고 뭐고, 내게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아내뿐이네. 망설임 없이, 정말 아무 고민 없이 생명줄을 끊고 아내에게로 미친 듯이 달려갔네.”


그의 마음을 감히 이해할 수 있었다. 눈앞에서 중요한 사람이 떠날 때에 그 혼란, 다시 혼자가 되고 있다는 불안, 그런 마음을 나도 역시 조금은 느끼고 있었다. 김태진 선생의 마지막 배웅길이 그랬다. 학교를 떠나는 그를 홀로 따르는 길, 그 밤길이 내게 그랬다. 그가 나를, 원래 혼자였던 나를 떠나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내가 그동안 김태진 선생에게 알게 모르게 어떤 부분을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와 같이 혼자였다는 그, 마땅히 혼자 살아가는 그, 사실은 모두가 혼자라고 말하는 그를 통해 거꾸로 나도 혼자가 아니라는 모순된 유대와 위안을 실감해왔던 것이다.


김태진 선생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었던 유일한 인연에 대한 고백은, 실망이 아니라 다시금 마음 한 편의 기대와 위로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우주와 아내는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이유였다. 선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이 모두 연루된 심화 탐사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몹시 염려스러웠다.


“아내는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지. 나는 겨우 붙잡아 몸을 흔들었는데도, 뿌리치고 무작정 걸어가려고 했네. 의식이 없는 것 같았어. 불행 중 다행으로 아내는 얼마 못 가 쓰러졌네. 나는 겨우 아내를 데리고 우주선으로 돌아왔어. 그런데 놀랍게도 아내가 일어난 후에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하더군. 지구로 돌아와 경위서를 쓰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네. 생명줄을 해제한 이유를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결국 불충분한 사유로 징계를 받아 이곳에 오게 된 것이네.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서 모두가 이곳을 거쳐 가면서, 우습게도 사관학교 선생 자리는 젊은 사람 중에는 원하는 사람도 없고 모두들 기피하는 곳 아닌가.” 


나는 김태진 선생을 따라 정문을 응시했다.



“그래도 내가 가고 나면 또 누군가 오겠지. 예전에 나한테 했던 것처럼 너무 심술궂게 굴진 말게.”


“이젠 안 그럽니다. 선생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나는 말을 뜸 들였다.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무슨. 다 끝나는 마당에 다시 생각해도 나는 선생 체질은 아냐. 이제 다시 우주로 나갈 일만 남았네.”


“그럼 이제 사모님도 다시 우주로 나가시는 겁니까?”


“아니, 아내는 가지 않아. 그 행성에서 돌아온 이후로 아내가 뭔가 바뀌었네. 말로 전하기는 힘들군. 그런데 분명 바뀌었어. 더 차분해지고, 예전보다 더 바르다고 해야 할까. 지구 위에서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네. 물론 그게 싫지는 않아. 오히려 좋다고 말해야 하는 건데, 그 전과 후가 바뀌었다는 건 확실하네. 가장 큰 차이점은 이 년 동안 우주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는 거야.”


김 선생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내는 우주로 나갈 생각이 전혀 없어. 얼마 전에, 우주비행사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더군. 이제 우주로 가지 않겠다고.”


“아직도 그때를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그래. 우주비행 후에 반드시 받아야하는 상담도 별 탈 없이 잘 받았고 무탈하게 회복한 것 같지만, 남편된 내가 보기에는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있어서 말이지.”


우리는 어느새 정문에 다다랐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내가 자네에게 별말을 다 하는구만. 이만하면 됐네.”


선생은 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고맙네, 배웅해줘서. 기회가 되면 또 보세나.”


“조심히 가십시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김태진 선생은 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문을 나갔다. 가로등 아래로 그의 그림자가 가만가만 흔들리며 서서히 멀어졌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기숙사로 돌아왔다.


얼마 후, 우주비행사 실종자 목록에 김태진 선생의 이름이 등록됐다. 






우주 탐사 기술과 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전 지구적인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도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다. 초기에는 인류의 능력을 스스로 시험하듯 미지의 공간으로 마땅히 나아갔고, 인간의 영역을 넓혀갔다. 날마다 새롭게 탐사한 행성 수가 착실히 보도되었고, 아주 빠르게 증가하는 그 숫자로 세계인은 인류의 발전과 불굴의 의지를 가슴 뜨겁게 가늠했다.


그 시절, 한 우주비행사가 강연을 위해 초등학교에 찾아간 뉴스 영상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들은 우주비행사가 정문에 등장하자마자 주변을 둘러싸고 졸졸 따라다녔다. 그 옆에서 기자가 한 아이를 붙잡고 물었다.


"꿈이 무엇인가요?"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높여 말했다.


"저는 우주비행사가 될 거예요! 제가 가장 먼저 외계인을 찾고 싶어요!"


그 학생의 주위에서 친구들이 너도나도 소리를 질렀다.


"내가 먼저 찾을 거야! 내가 먼저!"


화창한 하늘 아래 아이와 어른 모두 웃음꽃을 피웠다. 


그때는, 우주가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것만 같았다.


우주비행사는 원래 명예로운 직업이었다. 아이뿐만 아니라 성인도 우주비행사를 나라의 대표 정도가 아니라 인류의 대표, 지구라는 행성의 대표쯤으로 여기며 존경으로 대우했다. 그에 발맞춰 각 국가는 사관학교를 설립했으며, 대대적으로 우주비행사를 모집하고 양성했다. 날이 갈수록 우주비행사의 수는 빠르게 늘어갔고, 그에 따라 외계 탐사는 가속화됐다. 



저절로 인력과 자본이 우주로 몰렸다. 그 중심에는 제 2의 지구, 낯선 생명과의 조우, 우주의 새로운 개척지 따위가 굳건히 자리했고 사람들을 무섭도록 결집시켰다. 우주와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뿐만이 아니라 지구에 있는 누구든지 진심으로 가담했다. 정말이지 금방이라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곳, 이미 우주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그 무언가가 발견될 것만 같았다.


동시에 사람이 모이면 이유를 불문하고 갖가지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어느 날 탐사 행성 수 옆에, 우주비행사 사망자 수와 실종자 수가 새롭게 추가됐다. 첫 사망자의 사인은 자살로 밝혀졌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어찌됐든 그 사건을 계기로 우주비행사들의 복지에 관심이 쏠리면서 우주비행사의 귀환 후 심리 상담이 의무화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우주비행사의 명예는 드높기만 했다. 조금이라도 부족한 부분은 즉시 지원됐고, 우주비행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내어줄 기세였다. 우주비행사 사관학교는 사람들의 꿈과 현실이 모인 상징적인 곳이나 진배없었다.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에도 우주비행사 실종자와 사망자 수는 늘어만 갔다. 사람이 우주에서 죽어 나갔다. 급증한 우주비행자의 수의 비례하여 사망자 수가 의미 있는 통계치를 보여주는지 주목하지 않았다. 그 절댓값만이 사람들의 눈에 들었고, 그 값은 상당했다. 아무도 섣불리 말하지 않았지만 사람들 가슴 속에 의문이 싹트는 과도기로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그 시절 한 칼럼의 내용을 참고하자면, 한마디로 우리는 안전히 도취된 상태였다.


경찰관은 국가의 재산을 보호하다가 상해를 입기도 하며, 소방관은 인간을 위협하는 화재를 진압하다가 순직할 때도 있다. 군인에 대해서도 말을 하자면 입만 아플 뿐이다. 우리는 그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우주비행사의 죽음에는 무언가 맹랑한 부분이 있었다.


우리가 지구를 망쳐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때,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지구의 종말을 코앞에 두었을 때, 그때에는 우주비행사의 죽음을 마땅히 희생이라 여기며 진심으로 추모하였을지도 모른다. 인류가 살아갈 터전을 찾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 우주비행사들의 넋을 기리며 명예를 높이는 데에 일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종말의 시기는 왠지 아주 먼 세상의 이야기 같았고, 아직 지구에서 살 수 있는 날이 한참이나 남은 것이었다.



지구의 시간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찰나였다.


마음 한구석으로는 적어도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은 지구에 별일이 없으리라 직감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장 우리의 피부에 와닿을 만큼 커다란 문제도 없었고, 위험도 없었으며, 그다지 지킬 것도 없었다. 지구는 우리보다 오래 살 것이 분명했다. 그 무한에 가까운 기한에 비해서 그토록 많은 우주비행사가 진정 필요한지, 목숨을 걸 만큼 우주로 향해야만 하는 것인지, 그 일이 피치 못할 희생을 동반해야만 하는 것인지 명쾌하게 답하는 사람은 시간이 흘러도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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