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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화 Sep 12. 2024

11. 0안을 1로 가득 채우기

진영 (3)





미리 답을 내리지 못한다면 누구나 머뭇대기 마련이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급변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탐사 행성 수의 추이는 더 이상 인간의 가슴을 뛰게 만들지 못했다. 죽은 사람의 수는 늘어났지만 언제나 제로를 지키는 행성 수. 우리가 바라는 그 행성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지점에서 인간들은 값 자체를 보지 않고 비율을 계산했다.



우리 모두가 진작 알고 있던 사실을 직면했다. 이 우주의 별은 무한히 많다는 것. 인간이 탐험한 행성 수를 아무리 늘려도 우주에 대한 인간의 영역의 비는 결국 제로에 수렴한다는 사실을 어려운 계산을 해보지 않아도 직감하게 된 것이다.


한바탕 광란의 축제가 끝난 그 다음 날 아침처럼, 사람들은 속이 텅 빈 기분이 들었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지금껏 제한 없이 쌓아오고, 서로를 무섭도록 부추겼던 기대는 의미를 찾지 못한 죽음과 허무에 잠식되고 말았다. 그제야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소수의 과학자들이 하나씩 나타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종교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앞에 나타나 믿음의 말씀으로 한마디씩 거들었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도대체가, 그걸 지금 알다니. 저 바깥에는 우리가 바라는 그 무엇도 없다는 걸 이제야 말하는 거야. 우리가 살아갈 곳은 당연히 없잖아. 그건 우주로 가보지 않아도 보나마나 당연한 일인데. 그럼 지금까지 저 바깥에 우리에게 딱 맞는 행성이 있을 거라고 기대한 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왜 우리는 그토록 밖으로 나아가려 했나. 그 시기에는 말 그대로 모두가 잠시 취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뒤늦게 잠에서 깨어 숙취를 앓았다. 지난 날의 파편화된 기억 사이로 이따금씩 떠오른 부끄러운 모습을 잊으려는 듯, 우주로 나아가려는 열정의 시절에 대해서는 서로 모른 체하며 함구했다. 공부깨나 했다는 사람들이 뒤늦게 매체에 나와 외계 탐사 사업은 이제야 나름의 균형을 찾기 시작했다고 나름 근사하게 평하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만이었다.


인간은 다다를 수 있는 영역을 끊임없이 넓혔다. 저 멀리, 저 멀리 빛나는 별 하나 하나를 직접 탐험했고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우리가 살 수 없는 곳과 우리가 모르는 곳을 하나씩 알아갔다. 우주에 비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정도로 작은 우주의 일부에 대해서, 별과 새로운 공간에 대해서 알아갈수록 인간은 예전부터 의심하고 있던 가능성을 차근차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저 끝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기대했던 그 무엇도 없다. 


저 바깥에 아무것도 없다는 지우고 싶은 예감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기 시작했고, 자기 자신과 주위의 것들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쓸데없다고 치부 받던 철학의 시대가 다시금 도래했고, 누구나 조금씩은 관심을 가졌다. 광적으로 종교의 심취하는 이가 증가하여 길거리에서 노숙자처럼 생활하며 아무나 붙잡고 호통을 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가족들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조용히 산으로 숨어 들어가는 이도 생겼다.



우주 진출의 시기에 단단히 뭉쳤던 인류의 공감대는 폭발하듯 사방으로 찢어져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까지 미쳤다. 서로 공감하지 못할지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그 어떤 의미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그게 회피라고 불러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도망치듯 자기 자신과 좁은 범위로 시선을 돌렸다. 이전에는 보지 않았던 더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우리가 밖으로 향할 곳은 없었고, 향할 이유와 동기도 잃고 말았다.


사람의 목숨 앞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가치가 얼마나 있을까.


오직 우리만이 이 세상에 남아 살아간다는 종착지에 허무주의 그리고 터무니없는 산술과 비약으로 많은 사람들이 도착했을지라도, 소수의 과학자들은 제자리를 꿋꿋하게 지켰다. 그들에게 과연 양심이랄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 그들도 피차 그들의 일을 하는 것이겠지만 정도라는 게 있지 않나. 그래서 내가 그들을 점박이라고 부르는 거다. 여태껏 자리에 앉아 연구하고, 예측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여전히 제로를 변화시킬 행성을 찾는 것이다.



물론 그 하나는 단순한 숫자 1이 아니다. 모든 비례를 뒤엎는 무한의 수에 필적하는 숫자 1인 것이고, 모두가 그렇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1인 것이다. 하지만 단번의 역전을 꾀할 만큼 하나의 마음으로 기대한 숫자이므로 배신감도 클 수밖에 없는 일이다. 거주 가능한 행성을 하나라도 찾겠다는 목표는 결국 점박이만의 사명으로 변모했다. 우주 진출의 관성에 힘입어 과열됐던 우주비행사의 명예는 차갑게 식고 말았다. 어쩌면 이 정도가 적당한 온도일 수도 있겠지만, 한난의 대비는 갑작스러웠고 방비하지 못한 인간이 수두룩했다.


이토록 광막한 우주에 대해 과거 사람들의 태도와 점박이들이 아직까지도 매달리는 모습을 되짚어보면 인간의 무지와 나약함, 무의미와 고집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낯이 뜨거울 지경이다. 동시에 우리가 지금까지 하던 일, 인간의 잔인한 습성 또한 직면하는 기분이다. 




우리는 공허 속에 손쉽게 기대와 갈망을 가득 채운다.


그건 인간의 공통된 본성 따위여서 보통 사람들은 비난할 수 없는 노릇이었고, 마땅히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자이니 비난하는 법이 없다. 그러니 지혜롭지도 못하면서 못돼 처먹은 나라도 소리 높여 말해야겠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우주를 탐사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시라. 


어차피 내가 아무리 말해봤자, 헛수고일게 뻔하다. 점박이들은 계속해서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나는 진작 체념 아닌 체념을 했다.


내가 사관학교를 다닐 때에도 매해 입학생은 줄었고 자퇴생은 매해 늘었다. 우주비행사 졸업생도 줄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놀랐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고작 그딴 이유로 우주비행사가 되려고 했었던 건가. 저 바깥 어딘가에 생명체가 있는 행성이, 우리가 살만한 행성이 있다고 믿었던 건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그들을 욕할수록 누군가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우주비행사가 된 이유를 묻겠지.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한번 내 이야기를 꺼내 보겠다.


첫째로, 가장 처음 우주로 나아간 이유를 나도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사관학교 시절 내내, 아니 그 전부터 자문했던 질문.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이 물음이 언제나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내게는 잠시라도 머물 곳이 없었다. 모두가 나를 멀리하기 바빴고, 나와 충분한 거리를 유지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 거리를 좁히고자 해도, 어느새 그 초기의 거리는 금세 회복됐다. 사람들은 나를 밀어내고 밀어냈다.


밑 빠진 독에 물 붇기.


딱 그 말이 정확하다. 물을 부을 필요가 애초에 없었다. 나는 망망대해 가운데 태어나 유영하며 살아갈 운명을 타고난 것이었다. 사람들에게는 감히 내 까짓게 침범하지 못할 머물 곳이 하나씩은 있었다. 어렸을 때는 그게 얼마나 든든해 보였는지, 솔직히 부럽기 그지없었다.


나도 처음에는 쉴 곳을 찾아 헤매기도 했고, 해류에 역행하여 악착같이 헤엄치기도 했다. 힘만 빠지는 일이었다.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었지만 머물 곳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헤엄을 멈출 수 없는 신세였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비슷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적어도 내가 모르는 곳으로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김태진 선생을 만나지 못했다면 힘을 빼야한다는 것 자체를 몰랐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하다. 뒤늦게 나는 마땅히 내가 모르는 곳,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향하기를 원했다. 떠돌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었다. 나는 뒤늦게 아무것도 붙잡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이 나를 내버렸다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차라리 내가 그들을 떠나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수많은 무지와 부재 속에서도 내가 이만큼 멀리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오히려 그들이 내게 없었기 때문임을, 내게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임을 이제는 고백할 수 있다. 내게 얽힌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미 강하게 속한 유대

포기를 고려해야 하는 관계

움직일 때마다 불편하게 만드는 연결

언제나 마음 한 편에 자리하는 공간

지구에 두고 온 것

지구로 반드시 돌아갈 이유


그 따위 것은 애초에 없었다. 결코 나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연이었든 필연이었든 내게는 정착할 곳이 없었고, 정착할 필요도 없었으며, 마지막에는 정착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전처럼 세상은 나를 밀어냈고, 나는 비로소 힘을 뺐다. 아니, 오히려 밀어내는 방향을 따라 헤엄쳐 나왔다. 아마도 그렇게 나는 우주로 흘러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지구로부터 아주 멀리.


둘째로, 우주비행사로서 천체 탐사를 계속하는 이유는, 음... 이건 조금 천천히. 다음 행성까지는 한참이나 남았고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





12. 청명한 싱잉볼 소리 _ 수현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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