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 (2)
침대 위에서 눈을 뜹니다. 방은 어둡고 방문으로 거실의 빛이 엷게 새어 들어옵니다. 눈꺼풀이 천천히 감겼다가 떠집니다. 정신이 아득합니다.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간 듯 기운이 없습니다. 정신을 좀 차려보겠다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댑니다. 거친 호흡이 느껴집니다.
아주 깊이 잠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집으로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비몽사몽하며 겨우 집으로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침대에 몸을 던졌던 기억은 납니다. 잠이 쏟아져서 그대로 곯아떨어졌어요.
저는 누운 채로 고개만 돌려서 시간을 확인합니다. 아직 이른 밤입니다. 저녁에 이렇게나 자고 말았으니 밤에 잠들기는 벌써부터 틀린 것 같습니다. 축 늘어진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웁니다. 야단났습니다. 몸 여기저기가 쑤십니다. 옷이라도 갈아입고 편하게 자는 건데, 후회스럽습니다.
방문이 천천히 열리고 거실의 빛이 방으로 가득 들이칩니다. 남편이 들어옵니다.
“좀 잤어?”
텁텁한 입을 다시고 답합니다. “나도 깜빡 잠들었네. 언제 왔어?”
“방금. 들어와서 저녁 먹었어. 깨울까 하다가 오랜만에 곤히 자는 것 같아서…….”
저는 침대 한 편에 걸터앉아 뜻 없이 바닥을 바라봅니다. 제가 말이 없자 남편이 묻습니다.
“당신, 괜찮아?”
“오늘, 갔다 왔어.”
“어디를?”
“명상.”
“아, 그랬구나. 괜찮았어?”
“왜 그런 곳이라고 말 안했어?”
“그게.” 남편은 난처한 눈치입니다. “가기 전부터 당신이 싫어할까봐.”
“내가 왜 싫어해. 요즘 많이 하잖아.”
“내가 괜히 걱정했나봐.” 남편은 곁에 앉습니다. “박연호 교수님은?”
환한 대머리가 떠오릅니다. “만났어.”
“좋은 분이지?”
“음, 정확히 뭐하시는 분이야?”
“명함 안 받았어? 뇌과학자이면서 명상 지도자. 잘은 몰라도, 명상과 뇌의 관계를 연구하신대. 크게 각광받지 못하던 예전부터 연구를 시작하셨는데, 어떻게 이게 시대가 딱 맞아떨어져서. 당신 말처럼 요즘은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잖아. 종교나 철학 같은 거.”
저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남편은 제 상태를 살핍니다.
“다시 가볼 생각이야?”
대답을 망설이다가 묻습니다.
“정말 당신한테 도움이 됐어?”
“아마도.”
“어느 부분이? 그냥 앉아서 숨 쉬는 거 말고는 별거 없어서. 아, 혈액 순환에 좋다는 차 마시고.”
남편은 가볍게 웃습니다. 남편의 보조개를 오랜만에 보는 듯하여, 입가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남편은 골똘히 생각하는지 말을 뜸들이다가 금세 붙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잘 모르겠어. 정말로 명상이 내게 도움이 된 건지. 그냥 이만큼 시간이 흘러서 조금씩 괜찮아졌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명상 중에 느껴지는 편안함 있잖아. 그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그 순간에 정말 편안하거든. 성은이 생각도 안 나고.”
남편의 마지막 말에 마음이 미어집니다.
“당신은 말을 어떻게 그렇게 해? 무슨 성은이를 잊으려는 듯이 말하고 있잖아. 우리가 성은이 생각을 안 하면 누가 해? 우리는 성은이 엄마 아빠잖아.”
“성은이를 완전히 잊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성은이를 기억해야 할 때 마음껏 기억하겠다는 뜻이지. 우리는 지금 시도 때도 없이 딸애를 기억하느라 힘든 거잖아. 원하지 않을 때도 계속 떠오르잖아. 그건 성은이를 제대로 기억하는 방법이 아닌 것 같아.”
“그럼 당신은, 그게 당신 마음대로 돼?”
“아니, 아직. 그래도 확실히 예전보다는 나아.”
“여보,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눈이 뻐근하게 당겨옵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뜹니다. “당신 말이 맞아. 성은이가 기억날 때마다 너무 힘들어. 그래서 잠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싶을 때도 많아. 그런데 있잖아. 그런 마음이 들면 내가 나쁜 엄마가 된 기분이야.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감정을 가누지 못해도, 그래도 나라도 기억해야지. 우리가 아니면 딸애를 누가 기억하겠어, 이 세상에 성은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조차도 지금 이러고 있는데.”
“우리가 기억해.”
“당신은 아닌 것 같아.”
잠잠했던 남편의 호흡이 갑자기 거칠어집니다.
“어떻게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어? 나도 살려고 이러는 거야, 살려고. 당신은 나를 무슨, 죽은 딸애는 안중에도 없는 쓰레기처럼 생각하는 거야?”
남편은 언성을 높이다가 침대에서 일어납니다.
“그만 얘기하자. 이제.”
그대로 방문을 닫고 나갑니다.
저는 홀로 앉아 있습니다. 방안을 비추던 빛이 줄어들어 얇은 선을 만듭니다. 방은 다시 어둡습니다. 충분하지 않습니다. 눈을 질끈 감아봅니다. 관자놀이가 얼얼하고, 뒷목이 결립니다. 어지럽기까지 합니다. 다시 침대로 올라 몸을 눕힙니다. 숨을 쉬어 봅니다.
억지스러운 들숨과 날숨. 흔들리는 호흡 소리. 숨이 벅차오르듯 뚝뚝 끊기며 쉬어집니다. 뭐가 이렇게 서러운 걸까요. 제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없습니다. 그래요. 저도 제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얽히고설켜 종잡을 수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잘못한 걸까요. 남편이 잘못한 걸까요. 왜 우리는 아직도 이 모양일까요.
살면서 이만큼 어려운 문제를 만난 적은 없습니다. 수학의 명제는 꾸준하게 증명을 시도하면 실마리가 잡히기도 합니다. 증명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르면 멀리 두는 것도 그나마 쉽습니다. 그런데 성은이는 그럴 수가 없어요. 성은이가 저를 직접 찾아오는 것만 같습니다.
제가 과제를 하는 학생들에게 항상 하는 조언이 있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명제를 대하라고 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제가 칠판 앞에서 강의하는 모습이나 어디서 이상한 영화를 보고 와서는 크게 오해를 합니다. 번득이는 영감을 받아 명제의 증명을 미친 듯이 순식간에 써내려간다는 식으로요. 그건 천재의 영역입니다.
물론 저도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런데, 실은 하루아침에 영감이 생겨서라기보다는 매일 같이 그 명제를 밝히기 위해 시도한 결과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명제에게 조금씩 다가간 걸음에 대한 보답입니다. 그 길은 정말 힘이 듭니다. 가끔은 거꾸로 돌아가고 싶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앉아서 농땡이나 피우고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적든 많든 명제에게 걸어가다 보면 어느 날, 뜻밖의 길을 만나게 됩니다. 그 길이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가는 길일지라도 그 길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낯선 길에서 눈여겨보았던 것들이 나중에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아무리 어려운 문제 같아도 여유 있게 대하라는 겁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이런 태도를 학생들에게는 근사하리만치 장황하게 말하면서 정작 저는 지금 여유도 없고, 감정에 급급하게 행동하고 있는 꼴입니다. 남편이 많이 실망했을 겁니다. 이런 문제에서는 제가 왜 이렇게 나약한지 모르겠어요. 맞습니다. 제 약점인 것이죠. 혼자서는 머릿속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려는 시도라도 하겠지만 남편 앞에서는 그게 안 됩니다. 참 속상한 일입니다.
수학 생각을 하니까 조금 기분이 나아집니다. 조금 더 하는 게 좋겠습니다.
예전에 오래도록 붙잡고 있던 명제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문제를 얼마나 증명하고 싶었던지, 어디를 가나 그 문장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며칠, 몇 주, 그렇게 몇 달이 흘렀습니다. 야속하게도 갈피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답답하던 중에, 꿈속에서조차 저는 그 명제를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꿈속에서는 진전이 있었습니다. 소름이 바짝 돋았습니다. 꿈속에서 생각하기를, 이 방식 정말 멋있다. 다행이야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어서.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제가 꿈속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증명을 써내려간 종이가 흐려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저는 눈을 부비고 종이를 코앞에 가져다댔습니다. 꿈이 끝나기 전에 하나라도 더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잠에서 깨고 나면 바로 꿈속의 증명을 베낄 심산이었습니다. 자면서 푼 것도 제가 푼 거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잠에서 깨자마자 부리나케 책상에 앉아 연필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겁니다. 단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낙담한 채로 흰 종이만 내려다봤습니다. 머리가 지끈거려서 혼났습니다. 꿈이 현실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망상 속에서 한참이나 앉아 있었답니다. 체념하는데 꽤나 걸렸습니다. 너무나 아쉬웠지만 다시 처음부터 증명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몽중증명 이야기는 학생들도 꽤 좋아합니다. 꿈속의 증명이 생각나지 않아 억울하다며 볼멘소리를 하면 학생들이 드디어 저도 인간처럼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때면 저는 원래 인간이었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학생들은 아닌 줄 알았다며 모두가 크게 웃습니다. 이 이야기는 매년 강의에 들어가서 항상 던지는 농담 중 하나입니다.
아무튼 제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이야기 끝에 학생들이 가끔씩 묻습니다. 결국에는 증명을 해냈는지 궁금해 합니다. 당연히 증명했습니다. 꿈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다음날 증명이 술술 써졌습니다. 정말 단숨에 썼습니다. 그때는 제가 정말로 천재인줄 알았습니다. 사실 그건 제가 몇 달 동안 명제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이 무용담은 학생들이 별로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어서 묻지 않으면 일부러 말하지 않는답니다.
재작년인가, 한 학생이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몇 달 동안 한 명제를 붙잡고 있는지. 지겹거나 힘들지는 않은지.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은 처음이라 잠시 고민하고는 답했습니다. 나는 증명하는 기계라고요. 제 말에 학생들이 웃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나는 수학과 교수이고, 여태껏 그런 훈련을 해온 셈이라고요. 그때 그런 비유를 처음 했습니다.
증명하기를 원하는 수학의 명제는 옆구리 깊숙한 곳에 자리한 차가운 얼음 같습니다. 아주 차가워서 잘 녹지 않는 얼음.
저는 그 얼음을 따듯하게 만들기 위해 몸으로 품고 다니는 셈입니다. 그 탓에 일상 속에서도 몸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서늘한 기운이 문득 올라 놀랄 때가 많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얼음의 존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 얼음은 제 옆구리에 차갑게 닿아요. 그러면 저는 다시 품고, 얼음장 같아도 계속 시도하는 겁니다. 감각으로만 그 모양과 질감을 가늠하며 그 얼음을 알아갑니다.
영영 차가울 것만 같은 그 얼음도 결국엔 체온에 못 이겨 따뜻하게 변합니다. 고된 보온 끝에 얼음은 서서히 녹아 사라집니다, 그러면 또 다시 그 빈자리에 더 차가운 얼음 하나를 넣는 겁니다. 수학을 한다는 건, 그런 일이랑 비슷합니다. 제가 유별난 수학자는 아니니까 다들 비슷할 겁니다. 그 작고 차가운 얼음 하나 때문에 일과 일상을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쉬고 싶은데 얼음이 쿡쿡 찔리고 거슬리면 별수 없이 책상에 앉습니다. 앉을 수 없을 때는 머릿속으로 명제를 떠올립니다.
가끔은 저를 괴롭히는 그 얼음이 꼴 뵈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몸서리치며 멀리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얼음이 없으면, 그게 참 허전합니다. 제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고, 하루하루가 보람도 없습니다. 살아갈 이유를 모르겠다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니까 제가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얼음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수학을 시작한 이후로 저는 제 속의 추위를 남몰래 다루며 살아가는 기분이랍니다.
14. 보이지 않는 것 _ 수현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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