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여신의 모유라 불리는 은하수가 유려하게 흐른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니 어디를 보나 옛날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오른다. 궁상맞게 이러고 싶지 않으면서도, 평소라면 하지 않을 회상들이 내가 진정으로 죽음을 선택하고 결정했다는 확고한 마음가짐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듯하다. 나의 기나긴 임무와 인내의 끝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스스로 택한 죽음.
나는 마지막 탐사 행성에서 지구로 귀환하지 않고 스스로 죽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모두 죽으니까 아무렴 상관없다. 이미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나는 아주 사라질 계획이다. 10번째 행성의 탐사 보고 후에 홀로 조용히 목숨을 끊기로 작정했다. 왜 10번째인지 묻는다면, 그다지 할 말은 없다. 이번 임무의 마지막 행성이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유가 중요한 건 아니다. 진정 중요한 건 내가 결정했다는 것이다. 지구의 사람들이 매일 확인하고 있을 사망자 수든, 실종자 수든 하나를 보탤 예정이다.
점박이들은 죽은 나를 향해 교신을 시도하겠지. 그들은 아무 답도 받지 못할 것이다. 정말이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편안히 죽고 싶다. 내가 지구에서 죽으나 우주에서 죽으나 사실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은 똑같지만, 우주에서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우주비행사에게만 허락된 특권처럼 생각되는 것도 한 몫을 했다. 지구로부터 멀리 벗어나 죽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사실 이런 말들은 조금 구차하다. 가장 맨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세상을 떠난 김태진 선생의 말처럼 지구를 벗어나 첫 번째 탐사 행성에 도착하자마자 예감으로만 존재했던 나의 두 가지 인식을 정확하게 마주했다. 내가 지금까지 탐사를 지속한 이유이기도 하다.
첫째, 내가 있을 곳이 없다는 것. 그 전에는 어쩌면 일말의 기대 따위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실제로 우주로 나옴과 동시에 소름 끼칠 정도로 단번에 깨달았다. 지구든, 우주든, 이 세상 어디에도 내가 있을 곳은 없었다. 이제 죽으러가는 마당에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는 부단히도 내가 있을 곳을 찾고 싶었던가 보다. 그런 마음으로 우주로 나왔을 수도 있으리라 이제는 우습게 생각한다. 하지만 첫 번째 행성에 도착하여 그 무엇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목도했을 때, 그때 뒤통수를 아주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나온 줄 알았지만 나는 여전히 찾는 중이었고,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보나마나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고, 내가 머물 곳도 없다는 사실을 의사가 준 알약을 의심 없이 꿀꺽 삼키듯 단번에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 아주 쓰기는 했다. 한동안은 속에서 쓴물이 올라 헛구역질이 났다. 지금껏 겪은 수난과 상처들이 하등 의미 없는 것으로 전락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버텼고, 무엇을 그토록 찾았던 걸까.
우주와 지구.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구에서도 탐색을 그친 적이 없던 것이다. 내가 마땅히 살아갈 곳, 마음 붙이고 지낼 곳, 탐색의 종단은 없었다. 우주로 나오기 전에는 나는 이미 그 무의미한 방황에 종지부를 찍은 줄로만 알았다. 혼자만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나는 쉼 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진입과 탐색, 조사와 불합격. 다시 진입과 탐색.
지구에서나 우주에서나 내가 하는 일은 같았다. 사람들에게로, 행성에게로 부단히도 다가갔던 것이다. 때로는 친절하게, 때로는 저항하며, 때로는 무기력하게, 때로는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몰고 갔다. 하지만 우주로 나오자마자 몸을 돌려 지구의 모양을 눈에 담은 것처럼 그동안 나에게 자행했던 끝없는 굴레를 드디어 멀리서 보게 된 것이었다.
우주로 나아갈수록 점으로 소멸하는 지구의 모습같이 과거에 대한 미련과 어리석음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지구로부터 먼 곳으로 나와 탐사를 진행할수록 마음이 몹시 편안해졌다. 나의 인식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누군가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나의 삶을 살아보지 않아서 그런 말을 쉽게 해대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그 따위 말을 한다는 상상만으로 짜증이 치민다.
지금의 점박이와 과거의 사람들처럼 부재 안에 갖가지 것을 쑤셔 넣고 쫓았던 것이다. 텅 빈 곳을 향해 쉼 없이 헤엄쳤던 것이다. 이제야 솔직하게 시인하기를, 나는 힘을 빼고 세상에 나의 몸을 맡긴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방법을 익힐 수가 없는 인간이어서, 평생을 긴장한 상태로 몸을 혹사시키며 여기저기를 표류하던 것이다.
행성 탐사 이후, 점차 시야가 명료해졌다. 부재는 온전한 부재로 남았다. 부재가 선물한 휴식은 끝맛이 씁쓰름할 정도로 달콤했다. 나는 광막한 우주 한복판에서 드디어 멈출 수 있었다. 더 이상 찾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마음을 놓이게 했다. 나는 비로소 벗어난 것이었다.
그 순간, 이제는 미련 없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둘째, 그럼에도 탐사를 지속해야 한다는 것. 나는 죽기로 결심했고, 그러니 언제 죽어도 괜찮았다. 때만 결정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상상만으로도 자유로움을 맛보는 듯했다. 그런데 내게 자유가 깃들수록 사람들의 태도에 괘씸하다는 생각이 밀고 들어왔다. 나와는 다르게 그들에게는 안전한 삶의 터전, 마땅히 함께 할 사람, 충분히 머물 곳이 지구에서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들은 나와 다르게 가진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새롭게 살아갈 곳을 찾아 우주로 나아가려는 것이었다. 그들이 태어나면서 이미 가진 것에 만족과 감사 없이, 마치 그것들이 인간 모두에게 거저 주어진 것처럼 경솔한 마음으로, 원래는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부추기며 눈을 한곳으로 모았다. 아무것도 없는 이 우주로 말이다.
물론 소득 없이 반복되는 행성 탐사로 그들은 아주 빠르게 후회와 회환의 과정을 거쳐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당연한 일이었다.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애쓸수록 선명해지는 실패를 버틸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 있을 리가 없지. 그들은 그 지점이 얼마나 무서운지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때까지 제대로 경험해본 적도 없을 터였다. 나약하고 무지했다. 그들도 그제야 두려운 반복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평생이 그 반복의 과정이었으므로, 진입과 불합격의 연속이었으므로 그들의 태도가 참으로 가소로웠다. 그들의 안식처가 부러웠고, 언제나 머물 수 있는 그곳의 존재에 힘입어 그들은 강하고 견고한 줄로만 알았다. 아니었다. 다 착각이고 거짓이었다. 그들은 나보다 약골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그딴 식으로 대했다니. 모조리 다 속은 기분이었다.
약한 인간일수록 맹목적인 응시를 쉽게 거두고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서 인간이 살아갈 곳을 찾는 고집스런 사람들은 있다. 점박이를 비롯한 우주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그렇다고 그들이 강하다고 말하지는 말자.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그들도 결국 거듭된 패배 끝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 것이 뻔하다.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는 찬란한 행성 하나를 마음 속에서 영영 지우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절대로 나만큼 멀리 오지 못할 것이다.
그래, 우주에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확실한 복수가 있었다. 죽음을 예정한 나에게 남은 일은 그들에게 반복되는 패배를 선사하는 것이었다. 탐사를 계속하는 것은 나의 유희이자 앙갚음이다. 나의 죽음조차 일종의 확인이 될 것이다. 그들도 깨닫기 전의 나처럼 끝없는 굴레를, 양극단의 무한한 반복을, 호소할 곳 없는 거절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과연 그들이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아주 오래 걸릴 것이다. 암흑물질이라는 이름을 붙였듯이 그들의 갈망은 되풀이되고, 스스로를 옴짝달싹할 수 없이 옭매는 속박에서 벗어날 시도도 하지 못할 것이다. 부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가장 힘든 일이니까. 무지의 영역을 단지 노력의 부족으로만 생각할 테니까. 이토록 넓은 우주에 인류가 대거 이주할 수 있는 행성, 인간과 비슷한 생명체가 없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 우주의 크기를 가늠하면서 어딘가 존재하리라 생각하겠지.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해둘 법칙은 세상은 그렇게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 인간들이 모인 지구에서조차 이 법칙은 수도 없이 발견된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돌아볼 줄 모르고, 자신이 거저 가진 것에 감사할 줄도 모른다. 닿지도 못할 머나먼 곳을 바라만 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