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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화 Sep 21. 2024

17. 서로 다른 우주

진영(3)





오해를 남기고 싶지 않아 더하여 꼭 남기고 싶은 당부는, 얼마 남지도 않은 우주비행사들이 모두 나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과거의 맹목적인 우주로의 추구가 거품이 빠지듯 급속도로 일단락되면서 훈련학교의 자퇴생이 대거 증가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학교에 남은 소수의 훈련생이 있었다. 나는 그 혼란 속에서 남을 이유와 떠날 이유를 고민했다. 훈련학교를 떠난 후에 딱히 갈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다는 결론에 잠정적으로 이르렀다. 그 이후에는 천천히 학교 분위기를 살폈다.


많은 훈련생이 퇴학했고, 오히려 그 점이 내가 훈련학교에 남을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모두 떠나기 때문에 나는 마땅히 남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그 자리가 내게는 잘 들어맞았다. 하루가 다르게 훈련생이 줄어들면서 우리는 서로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기는 했다. 



남을 사람인가. 떠날 사람인가. 


그 질문을 대놓고 묻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동기들을 구분하기 바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석이 퇴학을 할 때는 선생들도 술렁였다. 훈련생들의 혼돈을 다독이던 선생들도 포기한 듯 우리를 방치하기 시작했다. 강의가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었다. 좋으나 싫으나 선생은 선생이었다.


우리를 하나로 묶던 울타리가 사라지자 동기들 사이에서 여기저기를 오가며 꼴사납게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동기도 있었고, 이전과 다름없이 하루하루의 일과를 해나가는 동기도 있었다. 그렇다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자퇴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는 없었다. 어떤 훈련생이나 느닷없이 학교에서 사라졌고 의외의 인물이 남기도 했다.


점차 훈련생 수도 서서히 안정을 되찾으면서 끝까지 남은 동기들이 드러났다. 분반으로 수업을 진행할 정도로 많았던 훈련생은 사라졌고, 반 하나로도 충분히 강의가 진행됐기 때문에 원래도 인기 없던 사관학교 교사 자리도 한꺼번에 정리됐다. 강의실의 빈자리는 드러났고, 원래도 컸던 대강당은 소수의 훈련생이 들어가기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우주비행사를 양성하기 위해 마련된 학교의 모든 장소는 과거의 명예와 영광에 힘입어 비대하게 만들어진 탓에, 남은 훈련생들은 공간감에 압도되지 않으려 애쓸 수밖에 없었다.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동기들은 한데 모이는 듯했지만, 이렇다 할 큰 변화는 없었다. 


학교의 가장 큰 변화는 학생보다 교사 집단에서 일어났다. 마지막까지 남은 선생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사람들뿐이었다. 선생체질이 아니라던 김태진 선생이 정말이지 그리웠다.


동기 중에 그 친구 이름이, 아마 최광수로 기억한다. 이 친구는 김태진 선생의 고된 훈련에 나처럼 거의 빠지지 않는 동기 중에 한 명이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한번은 광수와 내가 운동장을 뛰고 있었을 때였다. 아마 그때도 강의 중에 서로 시비가 붙어 싸우는 바람에 강의 후에 남았을 때였다.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뛰었고, 김태진 선생은 우리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그 고된 체력단련만으로도 서로 싸웠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것처럼 우리는 굉장히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그 순간의 마음이 그랬다는 것이지 그와 가깝게 지내고 싶다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나는 광수와 좀 떨어져서 뛰었는데, 힘들어 죽겠는데도 광수는 내게 바짝 붙어 물었다.


“너는 왜 우주비행사가 되려고 하냐?”


제대로 말을 섞은 적도 없는데 처음부터 반말인 게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는 그냥 포기하고 편하게 대충 답했다.


“그냥.”


“그냥?”


“뛰기도 힘드니까 말 걸지 마.”


“그냥 우주로 가고 싶다니…….”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말을 붙였다. “나는 궁금해. 저 위에 뭐가 있을지.”


“그게 다야?”


“왜 그런 식으로 말해? 아직 이유가 부족하다는 거야?”


광수는 헥헥대면서도 하늘을 지그시 올려다보았다. 찰나였지만, 그 눈빛은 하늘보다도 깊었다.


우리는 짧은 대화를 수시로 나눴다. 물론 체력단련을 위해 운동장을 뛸 때뿐이기는 했다. 그 이후로 나눈 대화를 모두 종합해보면, 그가 우주비행사가 되려는 이유는 단순하고 명료했다. 인간이 살아갈 행성을 찾는다거나, 새로운 생명체를 찾겠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오직 내적인 동기, 모험심이자 호기심이었다. 단지 저 바깥은 어디일지. 어떻게 생겼을지. 무엇이 있을지.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픈 갈증이 그에게 가득했다. 처음에는 광수가 이해도 되지 않았고 우주로 나아가려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고 여긴 것도 사실이지만, 뜀박질 중에 불쑥 나오는 광수의 이야기에서 진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광수는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몸을 움직여 나아가는 인간이었다. 당연히 내가 보았던 인간 중에서도 특이한 축에 속했는데, 그도 나를 비슷하게 여기는 듯했다. 우리는 뜀박질 없이는 대화를 나눈다거나 같이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 그야말로 아주 건강한 관계였다.


그 특이한 인간을 이렇게까지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뜀박질 동기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동기 누구든 광수를 기억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있었다.



퇴학의 바람이 지난 후, 소수의 동기만이 학교에 남은 때였다. 사관학교 수료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광수는 이론 강의 중 선생과 정면으로 맞부딪혔다. 그 선생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강의에는 안중에도 없고 모기 소리 같은 목소리로 이상한 말만 늘어놓기 시작했다. 다시 생각해도 그 목소리는 참아주기 힘들다. 고요한 우주 가운데에서도 어디선가 선득 들려오는 착각까지 들 정도다.


“너희들이 이 사관학교에서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 훈련을 받는 이유는, 단 하나, 국가와 세계의 미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일회용 부품이 되기 위함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너희는 죽어도 괜찮다. 아니, 오히려 죽음은 명예로운 일이다. 죽음을 불사하고 전쟁터로 뛰어드는 과거 장군의 몫과 같다. 나는 너희들을 그런 우주비행사로 만드는 엄중한 사명으로 학교라는 최전선에 남아 교육에 임하는 것이다. 예전에 있던 선생은 선생도 아니었다. 헛된 망상과 기대만을 불어넣는 인간쓰레기였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우리는 소수 정예 비행사로, 이 한 몸 다 바쳐 국익에 이바지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보이지 않는 우주 전쟁을 치르는 셈이다. 우주는 그야말로 전쟁터다. 아무리 군대가 현대화되었다 하더라도 실제적이든 상징적이든 땅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인간인 보병의 역할이 필수적인 것처럼, 우리는 우주 영토 전쟁의 보병인 셈이다. 우리가 가장 먼저 그 행성의 발자국을 찍어야 한다.”




교사와 학생이 많을 때부터 비정상적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소수의 인간이 학교에 남자 모기 선생은 강의 중에 서슴없이 그런 말을 내뱉었다. 가끔은 편향된 정치색, 왜곡된 역사관, 세계의 음모론 따위를 정설처럼 늘어놓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심각한 정신이상자였고, 목소리마저 참아주기 힘들어 귀를 막아버리고 싶을 때도 부지기수였다. 내가 김태진 선생을 만나지 않았다면 진작 참지 못하고 무슨 사단이 났을 것이라 장담한다. 아무튼 그 모기 선생의 강의에서 동기들의 일은 그 이야기를 묵묵히 감내하는 것이었다. 그는 조금만 몸가짐이 틀어지거나 소음을 내는 훈련생은 바로 처벌했다. 그런 선생이야 많기는 했지만, 모기 선생은 정말 우리를 아주 큰 기계의 작은 나사 정도로 여기는 듯해서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개인은 없고, 죽음을 불사하여 몸 바칠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에게 먼저 뺏어갈까 걱정되는 드넓은 우주만이 들어차 있어서 훈련생을 그 세상의 먼지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그 사실을 훈련생 모두 느꼈기 때문인지 그의 수업에서는 모두 정자세로 잠자코 있었다. 적당히 이상한 사람이어야 반항을 시도하지, 단단히 정신이 나간 인간 앞에서는 상대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모두가 본능적으로 아는 듯했다.



자리에 앉아 선생의 간드러진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의 열정적인 세뇌에 휩쓸릴 훈련생은 아마도 없을 것이었지만, 혹여나 그에게 뒤틀린 사상을 조금이라도 주입 받는 훈련생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가끔씩 동기들을 자세히 관찰하기도 했다. 나랑 비슷한 것 같았다.


나는 모기 선생이 말할 때는 주로 다른 생각에 몰두하기 위해 애썼다. 그럼에도 교단에 서 있는 선생을 보면 볼수록 학교에는 하나같이 이상한 놈들만 남은 듯하여 속으로 푸념을 늘어놓았는데, 결국에는 나도 학교에 남았다는 자각에 역시 그러면 그렇지 하고, 몰래 우습기도 했다.






18. 느닷없는 구조 요청 _ 진영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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