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화 Sep 24. 2024

18. 느닷없는 구조 요청

진영(4)





모기 목소리는 계속됐다.


“우주로 나가 행성을 탐사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 미래의 인류가 살아갈 행성을 우리나라가 누구보다 빨리 찾아 먼저 취하는 것. 우리나라 출신의 우주비행사가 누구보다 먼저 닿는 것. 그 일을 위해서라면 희생은 불가피하다. 아니, 아주 필연적인 일이며, 그 희생은 너희에 몫이다. 바깥에 사람들은 사망자와 실종자 수에 지레 겁을 먹고 염려하면서 쉽게 포기했지만, 아직 한참이나 부족하다. 우리는 우주로 나아가 피를 뿌려야 한다. 우리가 갈 수 있는 저 끝까지 나아가야 한다. 우리 사관학교 우주비행사들의 희생을 발판삼아 한 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마침내 행성을 찾아 귀환할 우리나라 우주비행사를 위해 너희들은 한목숨 기꺼이 바쳐야한다. 알겠나?”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다시 모기 소리가 강의실에 왱왱 울렸다.


“알겠냐고!”


동기들은 마지못해 소리쳤다. “네!”



그때 중간 쯤 앉은 훈련생이 손을 번쩍 들었는데, 선생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또 제 말만 하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보다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한다는 둥, 우주로 나가서는 돌아올 생각 말고 인생을 걸라는 둥, 별 같잖은 말을 이었다. 손을 든 훈련생은 참지 못하고 팔을 좌우로 흔들더니 대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가 바로 최광수였다.


“진짜 다 개소리. 이제는 못 들어주겠습니다.”


선생을 포함해서 모두가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광수는 마치 일말의 의심마저 제하려는 듯 말을 덧붙였다.


“더 이상 못 들어주겠습니다. 듣자듣자 하니까, 만날 무슨 국익, 출신 학교, 희생, 전쟁과 선취. 도대체가 누가 그딴 이유로 여기 남아 훈련을 받고, 또 도대체 누가 그딴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에 우주비행사가 되려고 한답니까. 예? 진짜 정신 나간 소리 좀 그만 하십시오. 그게 그렇게 중요하면 선생님이나 직접 우주로 나가 죽으세요. 왜 우리한테 피를 뿌리라 마랍니까. 하, 얘기할수록 열 받네.”


말하다가 분노로 울컥했는지 소리치기 시작했다.


“당신 진짜 선생 맞아? 여기가 무슨 사이비 집단도 아니고, 또라이 교주처럼 앞에 서서 헛소리나 하면 다야? 우리가 암말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진짜 우리가 무슨 당신 신도라도 되는 줄 알아? 어? 진짜 미친놈 아니야, 이거.”


모기 선생은 무섭도록 차분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죠.”


우리는 얼떨떨한 채로 앉아 있었고, 광수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씩씩거렸다. 반면 선생은 방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강의실을 나갔다.



돌이켜보면 광수 또한 그 급변의 시기 가운데 마지막까지 학교에 남은 자신만의 이유를 고민했으며, 결국에는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진심에 닿았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광수였고 성질머리는 어디 가지 않으니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했을 것이다. 나는 광수가 받을 처벌에 걱정이 앞섰는데,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다행히도 선생이 조용히 나간 걸 보아서는 그냥 잘 넘어간 듯했다. 동기들 모두 의아했는지 하루 종일 광수의 일이 입에 오르고 내렸다. 그렇게 그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일과가 모두 끝나고 취침 전에 기숙사 안으로 안내방송이 나왔다.


"3학년 이광수 생도."



모기 선생의 얇은 목소리로 전하는 내용은 아주 간단하지만 충격적이었는데, 광수는 그날부로 정학 처리됐다. 다시는 학교에 입학할 수도 없었다. 광수가 잘못한 것은 맞다 해도, 확실히 과한 처사였다. 얼마 남지 않은 동기들이 하나둘 광수의 방을 찾아갔다. 오랫동안 방문이 닫혀 있었다. 몇몇은 문을 두드려 광수를 불렀지만 답이 없었다. 동기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광수의 방을 떠나지 못했다. 나도 참담하고 억울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렸고 광수는 한가득 짐을 싸서 나타났다. 그때, 그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던 그의 눈은 바닥만을 응시했다. 복도의 색처럼 생기 없는, 참담한 눈빛이었다. 내 안에 있는 것을 본 것처럼 나도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광수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어떤 누구도 광수에게 말을 붙이지 못했다. 단지 그가 걸어가는 방향대로 길을 터줄 뿐이었다. 아무도 그와 동행하지 못했고, 그는 홀로 사관학교를 떠났다. 그 이후의 행방은 나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모든 우주비행사가 모두 나처럼 불순한 의도로 행성을 탐사하는 것이 아니다. 광수가 우주로 나오지는 못했지만, 분명 광수처럼 어느 비행사들은 오직 자신만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동기만으로도 이 우주로 나아온 것이다. 점박이들과는 달리 그들은 어떤 목표를 가진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마주할 그 무엇이든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탐구하려는 모험가에 가깝다. 대항해시대에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아가는 선원 중에도 분명 광수 같은 사람이 있었으리라. 이런 부류의 우주비행사들은 점박이들에게 있어서는 정말이지 과분한 사람들이니, 내가 다 억울할 따름이다. 그래도 광수가 우주로 나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는 하다. 그가 우주로 나왔다면 나와는 전연 다른 뜻으로 이 우주를 바라볼 텐데……


이유야 어찌 됐든 마지막까지 학교에 남을 만큼 중요한 이유로 지금의 우주비행사들은 우주에 나온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내 이후로도 우주비행사의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오히려 그 점은 아주 잘된 일이다. 광수 정도의 이유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없는 이 드넓은 우주로 굳이 나올 필요는 없지 않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을 지라도, 설령 시신마저 수습하지 못할지라도 우주로 기꺼이 나오려는 진정한 우주비행사의 수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할 것이다.


내게 남은 일이 죽음뿐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볼 때마다 어김없이 우주의 광활함에 압도되어 그런지, 그 좁은 행성에 모여 사는 인간들의 삶이 애잔하기까지 하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 갈 곳을 잃은 사람들, 갈 곳 없는 사람들. 우주에 비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곳에 어찌 이토록 다양한 인간의 군상이 모여 있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하지만 나는 곧 끝에 도착하므로 아무 의미도 남지 않았다. 이미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 지 오래다. 돌아갈 생각은 없다. 이제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


비이


느닷없이 울리는 알림.


다음 행성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알림이 울린다. 그다지 중요한 알림은 아니리라 예상하며 내용을 확인한다.


구조 요청.


신원 확인이 가능한 우주탐사선에서 구조 요청이 수신됐다. 나는 순간 심각해져 세부 내용을 정독했다. 우주비행사 박연경은 한 행성에 착륙한 상태였고, 기본 천체 탐사를 마친 후 이륙을 시도했으나 불가했다. 홀로 수리를 진행했지만 역부족이었고, 가뜩이나 행성 내에 있는 상태라면 예기치 못한 사고 발생 위험이 있으므로 긴급 구조 요청을 보낸 것이었다.


다행히도 생존에 필요한 자원은 충분한 상태였다. 나는 얼른 해당 행성의 기본 탐사 보고서를 훑어보았다. 위험 요소는 없어 보였지만, 역시 안심할 수 없었다. 아무리 조사를 정확히 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해도 우주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 요청이 있다 해도 우주에서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법이다. 나는 항로를 유지한 채로 탐사 보고서를 거듭 읽으면서 어떤 신호든 기다렸다.


가장 가까운 우주정거장으로부터 긴급 요청이 이어 들어왔다. 우주정거장에서 박연경 비행사에게 구조선을 파견할 예정이지만 구조 요청이 발신된 행성의 위치는 그나마 나와 가장 가깝고 정거장과의 거리는 배이기 때문에, 김진영 우주비행사가 우선 구조 요청에 응해 속히 해당 행성으로 이동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요청을 수신하자마자 지체 없이 우주선의 행로를 변경한다. 나의 위치와 상태는 서서히 바뀌고, 박 비행사에게로 전속력으로 움직인다. 나는 곧바로 박 비행사에게로 구조 응답을 발신하고서 우주를 노려본다. 구조 요청에 신속하게 대응한 것은 다행인 일이기는 하지만, 순간 양쪽 관자놀이가 지끈거린다. 엄지와 중지로 진득하게 눌러 통증을 가셔 본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후, 왜 하필 지금……


때가 참으로 야속하기만 하다. 마지막 행성으로 가는 도중에 갑작스런 사고에 연루되다니.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부의 일에 개입되어 자살 계획에 차질이 생긴 탓에, 한편으로는 탐탁지 않은 것도 어쩔 수 없는 심정이다.






19. 생생한 연결감 _ 수현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브런치북 보러 가기
이전 17화 17. 서로 다른 우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