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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화 Sep 26. 2024

19. 생생한 연결감

수현 (1)





성은이가 아직 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지 보이지만 않을 뿐 어딘가에 살아 있는 것만 같습니다. 어디서 길을 잃고 망연히 헤매고 있지는 않을까요. 지금 당장이라도 제가 찾으러 가야 할 것만 같습니다. 봉안당에 다녀온 이후 불안한 예감에 사로잡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습니다.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입을 꾹 다문 채로 초조함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가는 어젯밤처럼 또 말다툼을 하고 말 겁니다. 참지 못하고 또 울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슬픔의 여운이 온몸에 어려 있습니다.


성은이의 납골함을 보자마자 감정이 격해져 울고 말았습니다. 왜 시간이 지났는데도 잊히지 않는 걸까요. 남이 욕을 해도 좋으니까, 이제는 잠시라도 잊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 품에 성은이를 그득그득 끌어안고 사는 듯합니다. 저도 모르게 아주 긴 한숨을 내쉬자 남편이 문득 묻습니다.


“이제 좀 괜찮아?”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도 제가 괜찮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말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던집니다. 승용차는 도로 위를 빠르게 달립니다. 날씨는 맑고 하늘 높이 긴 띠 모양의 구름 하나가 지납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시간을 미루고 미루다가 봉안당에 오후 늦게 다녀왔지만, 여름이라 그런지 아직 해가 떠 있습니다. 일찍 다녀오지 못한 것까지 성은이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이게 다 못난 엄마 탓입니다.



“어제 일은 내가 미안해.” 남편이 말합니다. “내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끝까지 잘잘못을 가려, 각자의 잘못을 인정하고 우리가 화해한다 해서 무엇이 나아지기라도 할까요. 모든 것이 그대로일 텐데, 그럴 텐데 왜 남편은 제게 사과하는 걸까요. 제가 사과를 받아주면 다 끝나는 일이 되는 걸까요. 그럴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남편은 무슨 일이든 자기가 먼저 사과합니다.


글쎄요. 아마 싸우고 난 후에 어색한 시간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도 같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먼저 미안함을 고백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제 잘못뿐인 일에도, 남편은 하루를 참지 못하고 사과하기 일쑤입니다. 미련한 사람. 참 착해 빠졌습니다. 저는 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마지못해 답합니다.


“내가 미안해.”


남편은 넌지시 저를 보는 듯하지만, 말을 잇지는 않습니다.


부부의 연은 하늘이 맺어준다고들 하잖아요. 거짓 없이 얘기하자면, 남편과 결혼한 후에도 그런 중대하고도 거스를 수 없는 인연의 끈을 느껴본 순간은 없습니다. 물론 남편이 좋았습니다만, 우리가 그런 식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괜히 심각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등살에 못 이겨 비슷한 옷을 입거나, 결혼반지를 끼고 있을 때나, 어디를 같이 다녀도 우리가 남다르게 이어져 있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그런 장면이 있아요. 아주 사랑하는 사이에서 한 사람이 큰일을 당하면, 상대는 아주 멀리 있어도 무언가를 직감하는 장면 말입니다. 말도 안 되는 허구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남편이 차사고가 났을 때, 어디서 발을 헛디뎌 넘어졌을 때, 독감에 걸려 한밤중에 끙끙 앓을 때조차 제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평소와 다를 게 없었고, 나중에 직접 상황을 듣고 나서야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아이가 생긴 후에는 그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저희 부부에게 한번은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성은이를 초등학교까지 데려다주고, 아마 인정이 엄마와 짧게 담소를 나눴을 겁니다. 그리고는 곧장 대학교로 향했습니다.


그날 오전에는 강의가 없어서 연구실에 앉아 논문을 읽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가슴 한 편이 먹먹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퍽퍽한 고구마를 먹다가 목이 메는 느낌이랄까요. 이해하기 위해 궁리하던 증명이 한 눈에 들어오기 직전에 차오르는 느낌이랄까요. 아주 오묘한 감각이 일었습니다.


저는 연거푸 침을 꿀꺽 삼키다가 물도 몇 잔 들이켰습니다만,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의문스러운 몸의 변화에 얼떨떨한 채로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때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성은이 초등학교였습니다. 알고 보니 성은이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진 것입니다. 저는 식겁해서 바로 병원으로 향했고, 남편에게도 알렸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의 빠른 조치 덕분에 아이는 치료를 잘 받았습니다. 한동안 딸아이가 목발을 집고 다니느라 꽤나 고생했지만, 다행히도 별 탈 없이 회복해서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성은이가 치료를 받는 내내 경황이 없어 남편 얘기를 못 들었지만, 나중에야 신기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성은이가 넘어진 그날 오전에 남편도 역시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겁니다.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등줄기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어리둥절해서 자신의 건강을 탓하며 기지개를 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소식하고 운동도 좀 해야겠다고 다짐했답니다.


그때 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성은이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남편의 일화를 듣고 소름이 바짝 돋았습니다. 남편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저를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무작정 우연이라기에는, 때가 너무도 절묘했습니다. 각자의 전후 상황을 되짚어 보아도, 서로의 자리에서 느낀 극적인 경험에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참으로 공교한 일이었습니다.


그 일련의 사건 끝에 이르러 저는 처음으로 우리 부부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와 남편의 연결이 아니라, 저와 딸 그리고 남편과 딸이 맺어진 것이지만 전자나 후자나 거의 비슷한 말입니다. 결국에 우리는 성은이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셈입니다. 사실 성은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우리 부부는 몸으로나 마음으로나 가까웠습니다. 떨어진 적이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딸아이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양육하기 위해서 정신력과 체력을 모두 쏟았습니다. 밤낮으로 아이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아주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우리 가족이 긴밀하게 관계하고 있던 적도 없었을 겁니다. 직접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배려하며 서로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성은이가 배고프지는 않는지, 졸리지는 않는지, 대변을 누었는지, 어디가 불편하지는 않는지, 아프지는 않는지 시시때때로 살폈습니다. 몸이 둘이라도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 혼자 하는 육아는 상상만으로 힘에 부칩니다. 그래서 동시에 남편의 상태를 가늠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편의 체력과 일정, 수면과 식사, 아주 기본적인 일상의 조건들도 중요했습니다. 제가 잠시라도 쉬기 위해서는 그동안 남편이 아이를 돌보아야만 했고, 또 남편이 힘에 겨우면 제가 나서야만 했습니다. 아이와 우리, 육아와 일 사이에 적당한 지점에 머무르도록 우리 부부는 서로를 지켰습니다. 아이와 남편에게 시선을 돌린 만큼 제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법이지만, 감사하게도 그만큼 남편은 자신의 몸과 같이 저를 들여다보고 지켜주었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언제나 성은이가 있었고, 성은이로 인해 우리는 더욱 끈끈하게 하나로 묶인 것입니다. 하지만 성은이가 사라진 이후로는……


상념을 뚫고 남편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은 들어가서 좀 더 쉬어.”


남편의 물음에 고개를 돌려 잠깐 눈을 마주칩니다.


“그래야지.”


“저녁은?”


입맛도 없고, 아이 기일에 식사를 제대로 챙긴다는 것도 부모가 할 짓은 아닌 듯합니다. 입에 무언가를 넣는다면 그마저도 죄스럽겠습니다. 괜히 남편이 못나 보여서 슬쩍 흘겨봅니다.


“안 먹을래.”


“그래도……. 그래, 알았어. 당신 편한 대로 해.”



우리는 집에 돌아와 각자의 시간을 보냅니다. 저는 안방에만 틀어박혀 있고, 남편은 거실에 있습니다. 남편은 일부러 저를 내버려두는 눈치입니다. 이제는 남편이 아주 멀게만 느껴집니다. 남편은 우리의 유대를 벗어난 듯합니다. 그것이 뜻대로 가능한 일인가요. 성은이가 없는 지금은, 우리가 연결되어 있을까요.


남편은 우리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듯합니다. 성은이가 태어나기 전으로 되돌아간 듯합니다. 저는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여기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느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버티고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연결감.


성은이와 저는 아직 이어져 있습니다. 단언하건대 성은이가 제 자궁 속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끊어진 적은 없습니다. 엄마와 자식의 인연이야말로 하늘이 맺어준 것이 확실합니다. 제가 끊고 싶다고 해서 끊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맺고 싶다고 해서 다시 맺을 수 있는 것도 아닌, 오로지 하늘에게 달린 일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할까요.


역시 기다리는 방법 외에는 없겠지요. 가슴 한쪽이 선득 시려옵니다. 제 빈자리가 따뜻해질 줄 모릅니다. 영영 차갑게만 굳어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제 빈자리는 점점 몸집을 키우는 듯합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겠습니다. 저는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갑니다. 남편은 소파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습니다.



“여보. 나, 이따가 가고 싶은 데 있는데 같이 나갈까?”


남편은 물을 얼른 삼키고 답합니다. “그래, 같이.”


“그때까지 좀 쉬고 있을게. 당신도 좀 쉬어.”


침실로 돌아오며 생각합니다. 남편은 제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제가 가고 싶다니 무조건 같이 나가겠다는 뜻입니다.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고맙고, 쏘아붙이고 싶으면서도 미안합니다. 다시 침대에 누워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금세 지치고 맙니다. 그냥 멍하니 누워 천정을 올려다봅니다.


이름 모를 작은 벌레 한 마리가 방 안을 휘저으며 날아다닙니다. 벌레의 비행을 눈으로 좇습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지만, 마음은 심란합니다. 지금 나는 존재하지 않는 건가 묻다가도, 그럼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지 위치를 가늠하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 남편과 가까울까요. 성은이와 가까울까요.


별 볼 일 없는 벌레를 보며 별 쓸데없는 걸 묻고 있는 스스로가 별로입니다. 옆으로 돌아누워 남편의 구겨진 베개를 응시합니다. 급격하게 피곤이 몰려옵니다. 침대에 누워 정자세를 취합니다. 지난밤에 못 다한 잠과 한바탕 쏟아낸 눈물의 여운에 저항하지 못하겠습니다. 졸음이 쏟아집니다.





20. 북극성의 이름 _ 수현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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