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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화 Sep 28. 2024

20. 북극성의 이름

수현 (2)




잠에 든 기억이 없는데 이미 저는 잠에서 깨고 있습니다. 문득 몸이 가만가만 흔들려 눈을 뜹니다. 숨이 찬 듯 호흡이 거칩니다. 주변은 고요합니다. 침대 옆에 남편이 서서 제 어깨에 손을 올려두고 있습니다. 저는 남편의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뻑뻑한 눈을 여러 번 깜빡입니다. 시계를 찾습니다. 벌써 밤이 됐습니다.


“더 자게 두려고 했는데……”


“아니야, 일어나려고 했어.”


“안하던 잠꼬대를 다 해서.”


“잠꼬대? 내가 뭐라고 했어?”


“뭐라고 한 건 아니고. 그냥 끙끙 앓으면서, 힘들어 해서.”


잠에 든 것도 마음이 미안한데, 고약하게 잠꼬대까지 부렸다니 머쓱합니다. 괜히 어깨를 침대에 붙여 몸을 풀다가 눈을 비비면서 일어납니다.


“당신도 좀 쉬었어?”


“아니, 그냥.”


“안 피곤해?”


“괜찮아.” 남편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말을 붙입니다. “어디 나간다면서.”


“지금 나가도 괜찮아?”


“당신만 괜찮으면. 그런데 어디로?”


답을 뜸들이자 남편은 의아한 듯 제 얼굴을 살핍니다. 저는 시선을 피하며 답합니다.


“별 보러.”


“별?”




우리는 예전에 성은이와 별을 보러 갔던 서울 근교로 나왔습니다. 별이 참 밝습니다. 이제는 서울에서 조금만 나와도 별이 잘 보입니다. 예전에는 도시나 시골이나 별 보기가 힘들었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노력한 보람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비하면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원래는 한쪽에서만 환경 문제를 제기했고, 다른 한쪽은 전혀 관심이 없었던 때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아마도 그때쯤부터 활발하게 논의가 진행됐을 겁니다.


우주 탐사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우리는 지구의 자원과 수명에 대해 더욱 경각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무엇이 먼저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지구로부터 우주로 나간 것인지, 우주로부터 지구로 돌아온 것인지 그 시기의 일을 지금 제가 구분하기란 어렵습니다.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기 위한 운동과 실천들이 활발하게 일어난 것만은 확실합니다. 개인적인 노력도 있습니다만, 예전과 비교해본다면 제 삶이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쓰는 대상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개인의 선택지 자체가 환경에 이로운 것만 남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쉽게 이전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각 개인이 자신을 통제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니까요.




사람들이 그동안 노력한 덕분에 하늘의 별을 볼 수 있어서, 성은이에게 별을 잔뜩 보여줄 수 있어서, 지금도 수많은 별을 눈에 담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별들을 하나씩 이어 보다가 가장 밝은 북극성을 찾습니다.


성은이 별입니다. 딸아이가 이름 지은 별입니다. 성은이가 이 자리에서 제게 물었던 질문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딸애가 말하기를, 한낮의 별들은 우리의 마음처럼 보이지 않는 겁니다. 참 기특합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그런데 정말 성은이는 저 별에 있을까요. 저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요.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하면 딸아이가 제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것만 같은데요. 별을 보다가도 불쑥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 이유입니다. 성은이는 분명 가까운 곳에 있을 겁니다. 저렇게 멀리 있다면 제가 이렇게 힘들지 않을 겁니다.


제 별은 어디에 있나요. 밤이 늦었는데 아직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하염없이 제 별을 찾아 헤맵니다.



남편과 저는 말없이 한참이나 별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번에는 제가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별을 보고 와서 그런지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차량의 주행소리마저 쓸쓸하게 들립니다. 남편이 불쑥 말합니다.


“사실 북극성이 하나의 별이 아닌 거 알고 있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북극성은 가장 북쪽에 있는 별이잖아. 오랜 시간이 흐르면 천구 북쪽과 가까운 별이 바뀐다는 거지.”


“그러니까 하늘의 북쪽과 가장 가까운 별에게 북극성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거야?”


“그래. 심지어 북극성이 하늘에서 가장 밝지도 않아, 다른 밝은 별들도 많거든.”


저는 묵묵히 차를 몰다가 성은이와 별을 올려다보며 나눈 대화를 떠올립니다.


“그럼 성은이 별이 북극성이 아니었어?”


“그건 북극성 옆에 있는 더 밝은 별. 이름이 아마도, 카펠라였을 거야. 뜻도 있었는데……”


“왜 말 안했어? 성은이한테 그게 북극성이라고 알려줄 때. 내가 이름을 잘못 알려줬잖아.”


“그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럼 뭐가 중요한데?”


“우리 가족이 하나를 보는 거. 보이지 않아도 서로를 생각하는 거. 그게 무슨 별이든 우리한테는 성은이 별이니까.”


남편은 말을 그친 후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멀뚱멀뚱 도로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저도 말을 잇지 않고 가족들이 별을 보았던 그날의 일을 돌이켜봅니다. 차량 뒷좌석의 공백이 숨막힐 정도로 무겁게 느껴집니다. 저는 집으로 가는 내내 남편의 말을 차분히 곱씹습니다.


어두운 밤하늘 가운데 성은이와 성은이 별.


저는 과연 수많은 별 가운데 성은이 별을 찾을 수 있을까요.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껏 무엇을 찾고,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요. 마음이 심란합니다. 성은이가 사무치도록 보고 싶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저는 겨우 운전에 집중하며 마음을 달니다. 별처럼 흔들리던 성은이의 눈망울을 떠올리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따로 잠자리에 듭니다.




문득 눈을 뜹니다. 집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아주 고요합니다. 얼른 숨을 고르며 가볍게 기지개를 켭니다. 창으로는 이미 밝은 여명이 찾아들었고 부지런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거실로 나갔더니 남편이 소파를 두고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 있습니다. 말을 붙이려다가 저도 모르게 얼른 입을 닫습니다.


남편은 양반다리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있습니다. 팔은 어깨에서 무릎으로 이어져 있고, 손바닥은 무릎 위를 덮었습니다. 목과 허리를 꼿꼿이 세워 얼굴이 정면을 향합니다. 표정은 아주 편안한 듯합니다.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미소까지 지은 듯합니다. 어느 조명 하나 켜지지 않은 푸르스름한 거실 한가운데 앉은 남편은 제가 서 있는 곳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합니다.


분리되고 유리된 두 세상. 내가 있는 곳과 그가 있는 곳.


저는 감히 남편이 있는 곳에 닿지 못할 듯합니다. 저는 조용히 걸음을 옮겨 소파 끝에 겨우 앉습니다. 남편은 미동도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소리를 죽이려 했어도, 분명 소리는 났습니다. 남편도 제 소리를 들었을 텐데 몸가짐에는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남편을 자세히 살펴볼수록 다른 사람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알고 지내던 사람이 아닌 듯합니다. 10년도 넘은 결혼생활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낯선 얼굴입니다.



이 사람에게 이런 모습도 있었나.


그 낯이 싫다기보다 생경하여 자꾸만 갸웃거리며 눈에 담게 됩니다. 남편을 훔쳐보기를 멈추자 작은 호흡소리가 들립니다. 남편의 것인 듯합니다. 저도 남편의 들숨과 날숨에 맞춰 호흡을 시도합니다. 명상하는 남편의 곁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어디선가 싱잉볼의 소리가 조용히 울립니다. 아마도 남편의 휴대폰에서 울린 것 같습니다. 그 소리와 함께 남편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아주 천천히 고개를 양 옆으로 돌립니다. 그다음 어깨가 흔들리고, 무릎 위에 얹어 있던 손도 모아집니다. 다리를 천천히 풀더니 양쪽 발목을 느긋하게 돌립니다. 눈꺼풀이 서서히 오르더니 평온한 눈동자가 드러납니다. 남편의 시선이 제게로 이동합니다. 그윽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엽니다.


“일어났어?”


남편은 다리를 쭉 뻗어 가지런히 모으고는 쑥스러운 듯 눈을 슬쩍 피합니다.


“얼마나 했어? 명상.”


“두 시간.”


“두 시간이나?”


“일찍 깼는데 잠이 잘 안 와서 오늘은 좀 길게 했어. 평소에는 한 시간 정도 해.”


“집에서도 하는지 몰랐어.”


“집에서도 해. 당신 들어오기 전이나, 잠든 후에 잠깐.”


“몰랐어.”


“모를만하지. 아직 당신은 주변을 돌아볼 여유는 없잖아.”


남편의 목소리에는 저를 탓하거나 나무라는 뜻이 없습니다. 마치 수학의 정의를 읊듯 덤덤한 목소리입니다.


“당신은 정말 괜찮은 거야?”


“음…… 나는 기다리고 있어.”


“기다리고 있다니? 뭐를?”


“당신과 나.” 우리 부부는 눈을 맞춥니다. “당신과 나를 천천히 기다리고 있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평생. 이건 평생 걸리는 일이야. 그러니까 더 천천히.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야.”


평생이라는 말에 가늠도 되지 않는 가마득한 시간을 마주합니다.


“당신은 안 힘들어?”


남편은 부끄럽다는 듯 미소를 띱니다.


“힘들지.”


숨이 턱 막혀 입을 앙다물고 눈동자를 위로 굴립니다.


과연 끝이 어딜까, 끝이.



그 끝이 천정 어딘가에 있다면 잡아챌 요량으로 면밀히 눈을 돌립니다. 하얗기만 합니다. 이내 마음이 방황하다가 남편에게로 돌아옵니다. 남편은 의연하면서도 예사로운 얼굴입니다. 신기할 따름입니다. 어떤 문장에도 과한 힘이 들지 않은 것처럼, 남편에게서도 편안한 기운이 감도는 듯합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동일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남편과 제 처지는 서로 다른 듯합니다. 부러운 마음으로, 억울한 마음으로, 또 한편으로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눈을 마주칩니다. 남편의 눈빛은 저를 사로잡습니다. 그 순간, 남편이 그동안 발버둥친 시간과 몸부림의 궤적을 엿본 느낌이 듭니다. 남편도 나만큼이나 힘든 시기를 거쳐 왔다는 서글픈 동질감에 가슴이 아려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럼에도 남편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시선들이 이 순간에 중첩된 듯, 남편의 막막한 눈빛이 무겁게만 다가옵니다.





21. 마음 속 새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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