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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화 Aug 31. 2024

04. 새하얀 부재

진영 (2)




 “김진영 훈련생!” 


조금 만 더 뛰자, 조금만 더. 편안해지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 그런 근원 모를 생각에 휩싸여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선생은 큰 소리로 내게 몇 번이나 중단을 요청했지만, 나는 지금 당장에는 무소용한 생명줄을 떨어뜨리고는 질질 끌며 악착같이 앞으로 나아갔다. 줄은 길게 풀려 나의 꼬리처럼 뒤꽁무니를 졸졸 따랐다. 흙먼지가 사정없이 일어 주위를 어지럽게 했다. 나의 몸을 제외한 모든 것이 육중한 무게를 지녀 나를 넘어뜨리려는 듯했다. 헛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발은 분명 뛰고 있는데, 갑자기 세상이 기우뚱 기울었다. 가슴의 통증, 하복부의 불편한 융기, 까슬까슬한 흙의 감촉, 먼지와 생명줄. 나의 몸은 아무렇게나 뒤섞여 땅바닥 위에 널브러졌다. 저 멀리서 선생이 내게로 달려왔다.


여기는 지구가 아니라 우주인가. 어떻게 나와 수직으로 뛰어오는 거지. 


눈앞이 노랗게 물들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샛노랗게.






모래 알갱이가 부딪는 소리가 조금씩 잠잠해진다. 깊이 심호흡을 하고 눈을 뜬다. 모래바람의 기세는 줄었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생명줄의 조정 버튼을 조작한다. 줄의 장력이 느껴진다. 나를 어디론가 이끌어간다. 나는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된다. 아무 저항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이끄는 대로. 나는 무게중심을 낮춘 채로 한 걸음씩 전진한다. 모래바람은 규칙을 알 수 없이 여기저기서 휘몰아친다. 나를 휘감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마지막까지 나를 못살게 구는군. 


투덜대며 모래바람을 뚫는다. 나의 꾸준한 이동으로 소용돌이 속에서 서서히 우주선의 일부가 나타난다. 나의 생명줄이 인도한 곳, 나와 연결된 곳. 이 넓은 우주에 비하면 너무도 작은 곳. 하지만 유일하게 몸을 눕힐 수 있는 곳. 


어렵사리 우주선에 탑승해 문을 닫고 가장 먼저 우주복을 벗는다. 깊은 호흡을 한다. 가슴이 가득 부풀어 오르는 들숨. 다시 눈을 감으며 내뱉는 날숨. 어깨가 제자리를 찾는다. 모자란 듯 깊은 호흡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우주선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허락한 자유를 만끽한다. 여기까지면 족하다. 창밖으로 모래바람의 흐름이 시시각각 바뀌는 모습이 보인다. 서둘러 이 행성을 벗어나기로 한다. 곧장 이륙을 준비한다. 모래바람을 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행성에서 벗어나자마자 거주 가능성, 생명체 존재 가능성 보고서를 지구로 전송한다.


부적격.


요약하자면, 주의가 필요한 모래바람이 특이사항. 행성은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을 생존의 필수조건으로 상정한다는 것이 오직 지구와 인간을 기준으로 설정한 몹시 편협한 시각이라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임무는 행성의 좌표를 받아 매뉴얼대로 환경을 조사하고 보고하는 것이니 아무렴 상관없다.


이 행성은 그들이 정한 생존 가능 후보 행성 중 9번째이다. 내가 지금껏 탐사한 행성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무엇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당연히 있을 리가 없지. 수십 년간 과학을 연구한 자들의 무지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지구 한가운데 앉아 행성의 여러 조건들을 가늠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머저리들. 그들은 나와 같은 우주비행사를 대거 양성하여 우주로 보내고는 효율적인 이동경로를 설정한다. 천체 탐사 보고를 받는다. 수도 없이 반복한다. 쉬지 않고 계속.




아직도 우주 어딘가에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진실로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믿음과 다를 게 무엇인가. ‘점박이’들은 과연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까.


아, 점박이는 나 혼자서 정한 과학자들의 별명이다. 물론 모든 과학자를 일컫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우주에서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찾으려는 과학자들에 한해서만 이 별명을 쓴다. 점처럼 지구에 박혀서 허튼 이유로 천체의 탐사를 조장하는 사람들. 


다음 행성의 좌표를 기다리며 이미 멀어진 9번째 탐사 행성을 바라본다. 가능성으로 충만했던 만큼 배신감도 크리라. 물론, 내가 아니라 점박이들에게 말이다. 점박이라고 부를 때마다 강아지 이름 같아 씁쓸한 미소가 지어진다. 사실 그들은 강아지보다 더하다. 노예나 다름없다. 이 탐사 프로젝트에서 그들은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할 게 뻔하다.


그들도 이미 체념했을지 모른다. 이 세상에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 다음으로 우리가 향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예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또 그들 중 일부는 신념에 따라 행성을 찾고자 우리를 보내겠지. 지식과 기술, 때로는 신념도 족쇄의 다른 이름인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그 연결이 그들을 삶으로부터 지나치게 멀리 벗어나지 않도록 붙잡아주는지도 모르겠다. 생명줄처럼, 천체들 사이의 중력처럼. 

이 항성계의 중심에서 밝은 빛을 내뿜는 저 먼 항성을 응시한다. 하얗게 눈이 부시다. 






“정신이 좀 드나, 훈련생?”


눈을 떠보니 천정의 둥그런 조명 아래로 김태진 선생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만하라는 내 말을 듣지 못했나? 진정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야?”


나는 눈만 끔뻑끔뻑 감았다 뜨며 밝은 빛의 중앙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우리의 주변으로는 흰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커튼 밖에서 안으로 미세한 소음이 들이치기는 했지만, 가림막 덕분에 마치 우리 둘만이 좁은 공간에 남겨진 듯했다.


“징계 한 번 더 먹이려고 작정을 했나 보군. 기어코 다시는 우주로 가지 못하게 할 속셈이었나?”


“죄송합니다.” 


나는 이제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객기 부리지 말고 더 누워 있어.” 


그는 나의 한 쪽 어깨를 가볍게 눌렀고, 나는 몸에 기운이 없어 그대로 다시 침대 위에 쓰러지듯 누웠다.


“이만 쉬게. 쉬는 법을 알고 있다면.”


선생은 커튼을 치고 하얀 공간을 빠져나갔다. 그가 나간 후에도 나는 멍하니 천정만 올려다 볼 뿐이었다. 나의 규칙적인 호흡 소리, 구분할 수 없이 아주 먼 소음, 흰색과 어울리는 의무실 냄새.


갑자기 커튼이 살짝 열리더니 김태진 선생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내가 들릴 정도로 크고 긴 한숨을 내쉬더니 침대 옆에 놓인 간이 의자에 앉았다. 그럼에도 나는 멀뚱히 천정만을 응시했다. 힘이 없었고, 힘을 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냥 이대로 오랫동안 누워서 쉬고 싶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정말이지 쉬고 싶었다. 옆에서 한숨 소리가 다시 들렸다. 나는 누운 채로 고개만 돌렸다. 선생은 한손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누르며 손바닥으로는 눈앞을 가리고 있었다.


“주제넘게 선생질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자네를 보면 나 어렸을 때가 생각나서 말이지.”


그는 뜻밖의 고백으로 말을 이었다.


“나도 고아로 컸네. 자네처럼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서 자랐어. 지금도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아무렴 상관없지만.”


조도가 급격하게 밝아진 조명을 바라본 것처럼 눈시울이 싸하게 아려왔다. 나의 의지와는 별개였다. 눈물이 천천히 스미어 흘러나와 눈앞을 가렸다. 깊은 물속에서 태양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숨을 쉬기 힘든 것처럼 목울대가 울컥대려 했다. 나는 입술을 앙다물고 그 요동을 겨우 참아냈다.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 파일을 봤네. 그걸로 무슨 약점을 잡겠다는 건 아니니까 걱정은 하지 말고. 자네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거, 잘 알겠네만 이제 자신을 그만 괴롭히게. 나도 해봤지만, 그거 아무 소용없어. 자기 자신에게 잘 대해주게. 다른 사람한테도 친절하게 대하도록 노력하고. 적을 일부러 더 만들지 말라는 뜻이야. 안 그래도 우리는 처음부터…….”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말을 붙였다.


“착각하지 말았으면 하네. 사람은 본래 혼자야. 그러니까 자꾸 뒤를 돌아보고, 보이지 않는 걸 눈 부릅뜨고 찾는다고 없던 게 생기기라도 하겠냐는 말이야. 그런 게 없어도 태어난 이유라거나, 살아갈 뜻 같은 건 스스로 정할 수 있네. 지금 하는 말은 자네한테만 하는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인 셈이니 기분 나쁘게 듣지 않았으면 하네.”


눈물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윤곽이 물방울처럼 어렴풋하게 흔들렸다. 김 선생이 일어나는 듯 했다.


“얘기는 해 놓았으니, 이만 그만 좀 쉬도록 해.”


거짓말처럼 주변은 조용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마저 갑자기 사라진 듯했다. 나는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든 후에야 눈물을 얼른 닦아냈다. 하지만 보충하려는 듯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천정과, 조명과, 침구의 색처럼 가슴 속이 하얀 빛깔로 가득 차서 오히려 텅 빈 기분이었다. 아니, 그 공허는 애초에 내 안에 있었지만 이제야 마주하는 듯한 친숙하고도 억울한 부재였다.






05. 살아갈 이유 _ 진영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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