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 수 없는 행성이다. 기본적인 직접 탐사 결과만으로도 충분하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땅. 내가 서 있는 곳이나, 눈이 닿는 저 먼 곳이나 모두 같아 보인다. 서둘러 탐사를 끝내고 탐사선으로 발길을 돌린다. 우주선에서부터 허리춤까지 연결된 생명줄을 따른다. 팽팽한 장력이 나의 갈 길을 잘도 인도한다.
우주선으로 가는 길은 나도 알아. 재촉하지 말라고, 저 앞에 탐사선이 빤히 보이는 걸.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우주복과 줄까지 모두 거추장스럽다.
도대체가 나를 도우려는 거야, 방해하는 거야.
힘이 들면서도 나는 본래 무언가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닌데, 아니 얽매이는 것 따위는 없는데, 하는 우스운 생각이 스친다. 낯선 곳에서 나를 붙잡아 주는 기다란 줄 하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다니, 스스로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친다.
그래 거의 다 왔어. 이제 다 끝난단 말이지.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모래바람 속에서 우주선 선체의 일부가 희끗희끗 모습을 보이다가 사라진다. 위험요소는 이미 확인한 후였지만, 눈앞이 보이지 않자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허리춤의 버튼을 누른다. 생명줄이 나를 잡아당긴다. 나는 그 힘을 감지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생각보다 내가 멀리 나왔던 모양이다.
현실로도 마음으로도 아주 멀리 떨어진 지금, 내가 믿을 것은 생명줄뿐이다. 이 연결만으로도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무언가에 관여된 느낌이다. 누군가가 나를 인도하는 것만 같은 기분. 하지만 나는 이 행성에서 유일한 생명체다. 이곳에 내가 있어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소외감이 선득 깃든다. 나의 침입에 저항하는 듯 모래 알갱이들이 수도 없이 우주복에 부딪힌다. 나를 쫓아내려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모래 행성을 달래듯 괜히 말을 건넨다.
알았어, 알았다고. 이제 나도 떠날 참이야.
순간, 거센 바람이 불어 몸이 휘청한다. 걸음을 뗄 수가 없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춤거린다. 잘못 움직였다가는 몸을 가눌 수 없을 것 같다.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고 생명줄을 꽉 붙잡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모래바람 속에서 눈을 질끈 감아본다. 이런 위험 속에서 보이지도 않는 선체와 연결되었다는 감각만으로 안전을 넘어 편안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 스스로도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쉴 새 없이 우주복에 부딪는 모래 알갱이의 소리 속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은 채로 숨을 고른다.
“이 줄을 어머니의 탯줄이라고 생각해라!”
돔 형태의 강당 안으로 김태진 선생의 목소리가 왕왕 울리다가 사그라졌다.
“직접 탐사, 위험 요소 확인, 위치 추적 기능이 활성화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생명줄을 해제해서는 안 된다. 홀로 행성으로 나갈 준비가 안 된 상태라는 걸 명심하도록. 이 줄은 비상시에 필요한 물질을 탐사선에서 비행사에게로 빠르게 전달하는 통로이자 길잡이의 역할을 한다. 생명줄은 별칭이 아니라, 공식 명칭이라는 점을 똑똑히 기억해라. 섣불리 해제했다가는 그대로 죽는다. 알겠나?”
조금만 수가 틀리면 강의 후에 몇 시간동안 체력 단련으로 훈련생의 진을 빼놓는 김 선생의 호된 외침이었다. 그는 부임한지 3개월이 채 되지도 않았으면서 우주비행사 사관학교 선생 중에서도 가장 악독하다는 평판을 쉽게 따낸 인물이었다. 그는 생명줄을 둘둘 말아 한 손으로 들어 올려 어깨에 메고 우리를 응시했다. 훈련생들 앞에서 되도 않는 멋을 부리며 소리나 지르는 선생이 아니꼬운 중에 나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외쳤다.
“그런데 왜 선생님은 생명줄을 해제하셨습니까? 그 징계로 여기서 선생으로 계신 것 아닙니까?”
동기들은 웅성웅성됐다. 역시 나를 숨겨주기는커녕 일부러 드러내려는 듯 모든 시선이 나의 얼굴로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선생은 손쉽게 시선의 끝을 확인하더니 동기들을 헤집고 들어와 내 앞에 바짝 섰다. 나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김진영 훈련생. 방금 뭐라고 했나?”
불안하기만한 동기들의 눈동자를 훑어보다가, 나는 다시 선생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선생님은 왜 규정대로 하지 않으셔서, 원치 않게 이곳에서 선생으로 계시는지 질문했습니다.”
동기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드넓은 강당으로 숨이 막힐 것 같은 적막이 잠시 흘렀다. 나를 노려보는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나 또한 거뜬히 응대했다.
“김진영 훈련생. 오늘도 남아서 얘기 좀 하지.”
선생은 뒤로 돌아 몇 걸음 걷고는 외쳤다.
“해산!”
동기들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흩어져 출구로 향했다. 그 중 일부는 힐금거리며 불쌍하다는 눈빛, 곧 내게 닥칠 시련을 벌써 마주한 듯 겁먹은 눈빛,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경멸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보란 듯이 무시했다. 곧 선생과 나, 단둘이 남았다. 동기들이 모두 사라지자 강당은 평소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다. 선생은 동기들이 모두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등을 보인 채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나 또한 열중쉬어 자세로 위쪽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을 고정하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 또 어디 해보라면 해보라지.
체력 단련이라면 얼마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지금껏 그의 수업에서는 한 번도 빠짐없이 남아 고된 훈련에 임한 터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전에는 낙오자, 태도 불량자, 조금이라도 굼뜬 동기들 몇과 함께였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홀로 남은 것이었다. 나는 김 선생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당신이 왜 이곳으로 왔는지는 훈련생 모두가 알고 있어. 동기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다니 꼴좋군.
선생은 아무 말도 없이 강당 출구로 걸아 나가기 시작했다. 항상 똑같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훈련생을 강당에서 데리고 나와 기어코 운동장을 뛰게 한다. 강당에서 뛰면 먼지가 난다나 뭐라나.
나는 훈련용으로 지급받은 생명줄을 대충 말아 오른쪽 어깨에 들쳐 메고 얼른 선생을 따라 나섰다. 그는 출구를 나오자마자 묵묵히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늘 한 점이 없었다.
늘 그렇듯이 우선 쓰러지기 직전까지 달리는 것부터 시작인가.
나는 몰래 침을 꿀꺽 삼켰다. 김태진 선생은 출구 앞에서 갑자기 물었다.
“자네는 왜 우주비행사가 되려고 하나?”
평소와는 다른 선생의 질문에 나는 놀라 반사적으로 반문하고 말았다.
“네?”
“아니, 되고 싶기는 하는지 묻고 싶군.”
“되고 싶습니다!”
“진심인가?”
“예!”
“근데, 왜 매사에 그렇게 불만이고 시비조인가? 선생뿐만 아니라 동기들과도 밥 먹듯이 싸우고 있지 않나. 자네도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얘기하지. 똑똑히 말하지만 나는 자네와 안 싸워. 아니, 자네는 나랑 싸울 수가 없네. 나는 경쟁상대가 아니야. 나는 자네를 우주비행사가 되게 만들 수도 있고, 절대로 될 수 없게 만들 수도 있어. 지금 당장이라도 자네를 이곳에 얼씬도 못하게 혼쭐을 내고 쫓아낼 수도 있다는 말이네. 그걸 모르나?”
잔뜩 기합을 넣어 답했다. “죄송합니다!”
“왜 무서운 척 하고 그래, 자네는 무서운 게 없지 않나.”
의외의 대응에 나는 고개를 돌려 선생을 볼뿐이었다.
“꽤나 정곡을 찔렀나 보군. 하나 더 얘기 해보지. 왜 자네한테 무서운 게 없는지 잘 알고 있어. 자네에게는 잃을 게 없기 때문이다. 자네는 이미 다 잃었거든. 내 말이 틀리나?”
나의 턱이 부들부들 떨려오는 탓에 치아가 닳도록 입을 앙다물었다. 선생 아저씨,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거야. 주먹을 불끈 쥐고 그를 노려보았다.
“왜 아무 말도 안 하나, 김진영 훈련생?”
평소처럼 체력 단련이나 시킬 것이지 오늘따라 쓸데없는 질문으로 속을 뒤집어 놓는 그 이유를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나는 보란 듯이 질문을 무시하고는 곧장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볕은 매우 따가웠고, 구름 한 쪽도 지나지 않았다. 선생은 멀어지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나는 그늘에 서 있는 선생을 곁눈질하고서 운동장 가장자리를 뛰기 시작했다. 그는 나의 행동을 예리한 눈초리로 지켜볼 뿐이었다.
처음에는 나의 위치를 따라 움직이는 그의 시선을 의식했지만, 몸이 지쳐가면서 나의 상태도 의식하기 힘들었다. 땀은 내렸고, 닦고 닦아도 소용없었다. 햇빛은 땅 위의 모든 사물이 지닌 윤곽을 없애려는 듯 눈부시도록 밝게 내렸다. 머리통은 불로 지진 듯 뜨거웠다.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지만, 야속하게도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점차 어디가 어딘지 구분할 수 없었다. 땀이 눈앞을 뿌옇게 가렸다. 짭조름한 맛이 입술 주위에서 가시지 않았다. 몇 바퀴를 뛰었는지 모르겠다. 달리면 달릴수록 허리춤과 연결된 생명줄은 몹시 성가신 짐이 되었다.
이 줄이라도 없으면 좋으련만. 벗어나고 싶다. 그만하고 싶다. 이제 그만.
“김진영 훈련생. 이제 그만!”
김태진 선생의 호령이 먹먹한 정신 상태를 뚫고 어렴풋이 감각됐다. 하지만 나는 듣지 못한 척 계속 뛰었다. 아니,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