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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화 Aug 29. 2024

02. 마음속의 별 하나

수현 (2)




삶 한가운데에서 느닷없이 마주한 딸아이의 죽음으로 저는 간절하게 묻습니다. 아직도 인류가 스스로를 위해 해낸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듯합니다.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기술을 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한 일은 인간은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단지 기억하지 않는 법을 말하는 겁니다.


잊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아주 작은 것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성은이는, 제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거대해집니다.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위로는 이제 지쳤습니다. 하루하루 힘들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예감이 저를 벌써부터 지치게 합니다.


기억하는 방법은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가르쳤으면서, 잊는 법은 왜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기억은 훈련시켰으면서, 망각은, 왜 망각은 훈련시키지 않았을까요. 그대로 두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자라나지 않게 하는 법, 작은 것은 작은 것 그대로 두고 그 주위에 아무것도 엉겨 붙지 않게 두는 법을 이제야 배우고 싶습니다. 기억의 덧없음을 마주합니다. 


무한히 자라나는 기억. 풀리지 않는 매듭 같은 과거.






이번 주 ‘우주의 모양에 관하여’라는 주제로 학회가 열렸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입니다.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물론 저와 같은 위상수학자를 빼놓을 수는 없겠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위상수학자입니다. 다양한 공간과 도형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억지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학회에 참석했습니다. 여러 가지 주제로 세미나가 진행됐습니다. 건물로 들자마자 오른쪽 강의실에서는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적인 입자들은 사실은 진동하는 끈이며 매듭이라는 이론을 바탕으로 강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다지 관심이 가지도 않고 잘 모르는 영역이라 다른 세미나를 찾습니다. 저도 한 강의실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구와 원환체, 그것을 조합한 모양들.



자리에 앉아 세미나를 듣고 있지만 내용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가슴 한 편에 구멍이 난 것처럼 시리기만 합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들이 그 구멍을 통해 그대로 제 몸에서 빠져나가는 듯합니다.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해서 얼마 앉아 있지 못하고 조용히 강의실을 나왔습니다. 삭막한 자연과학대학 건물 주변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모여 우주의 모양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한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우리가 죽기 전에 알 수나 있는 걸까요. 보람도 없고 쓸모도 없습니다. 무엇이 중요합니까. 저는 이미 가장 중요한 것을 잃고 말았는데요. 습관처럼 수학 연구를 붙잡아 보지만 의미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일구어오고 쌓아올린 세상이 모두 무너져 사라진 듯합니다.



어디까지나 제게 있어서는, 존재하는 것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언제나 더 어려웠습니다. 수학 안에서처럼, 성은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아닐지 염려가 됩니다. 설마 영영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죽기 전까지 딸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지 못한다면 어쩌지요.


죽음은 그것 자체로 실감이 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는 삶의 영역에서 살아가고, 죽는다는 것은 이 영역을 넘어갔다는 뜻이니까요. 의심 없이, 어떤 여지도 없이 단번에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성은이의 엄마입니다. 딸아이의 죽음을 모를 리 없습니다. 곧 1년이 됩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요, 어쩌면 이 세상 어딘가에 딸아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의심이 듭니다.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성은이도 이미 배워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분명 성은이는 이 세상 어딘가 있을 겁니다. 제게는 멀더라도 어디선가 살아 숨 쉬고 있을 겁니다. 엄마인 저는 분명 느낄 수 있습니다.






학회에서 일찍 돌아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남편도 집에 있지만 서로에게 말을 거는 일은 드뭅니다. 잘 때가 됐는지 남편은 거실 불을 끄고 침대로 들어옵니다. 어둑한 천정을 보는 중에 무언가가 제게 들이치는 기분이 듭니다. 견딜 수 없이 몸이 떨려와 참지 못하고 남편을 부릅니다.


“여보.”


남편은 답이 없습니다. 방금 자리에 누웠는데 잠에 들었을 리는 없습니다. 저는 다시 부릅니다.


“여보?”


“왜.”


“성은이가 아직도 살아 있는 건 아닐까?”


한숨 소리가 들릴 뿐입니다. 뒤늦게 목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소리야?”


“당신은 그렇게 생각 안 해?”


남편은 지친 목소리입니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나 혼자만으로도 힘들어, 응? 당신까지 왜 이래 정말.”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방이 어두워 다행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제가 잠에 든 줄 알겠지요. 그래요, 저는 몰래 울고 있습니다. 이미 눈물은 눈가를 타고 흘러, 베개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관자놀이가 차가워요. 이제 그만, 그만 울어야지. 언제까지 울고 있을 거야. 그렇게 제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목소리가 들립니다.


“여보, 계속 이러고만 있을 수는 없어.”


저는 눈물을 삼키고 겨우 입을 뗍니다.


“나도 내 마음이 마음먹은 대로 됐으면 좋겠어. 나는 아직 성은이를 잊을 수가 없어. 당신은 성은이를 벌써 잊을 수 있어? 그게 정말 가능해?”


“못 잊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럼 우리 어떻게 해? 계속 이렇게 살아야 돼? 계속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거야? 성은이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응? 성은이가 어딘가에 살아 있으면 어떡해.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가 먼저 성은이를 떠나면 어떻게 해. 당신 정말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저도 모르게 남편을 나무라듯 말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급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남편의 잘못도, 제 잘못도 아닙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단지, 성은이는 아팠을 뿐입니다. 지금은 제 마음이 아픈 탓에 분노할 대상, 슬퍼할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미련하기 짝이 없습니다. 남편은 차분하게 답합니다.


“미안해. 내 잘못이야. 오늘은 이제 그만 자자.”



저는 이불을 박차고 나와 베란다로 나갑니다. 눈물이 흐른 피부 위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저는 눈을 감고 밤공기를 천천히 들이마십니다. 진정이 되지 않습니다. 저도 이제 그만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습니다. 남편이 미우면서도 가엾고, 야속하다가도 불쌍합니다. 저도 제 마음을 모르겠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이지러지는 마음에 손도 대지 못한 채로 멀뚱히 서 있습니다. 뒤에서 인기척이 들립니다. 남편이 저를 따라 베란다로 나왔습니다. 제 곁에 서서 말합니다.


“여보, 혼자서는 이겨내기 힘들어.”


남편이 뒤에서 천천히 제 몸을 감쌉니다. 남편의 품과 손길을 아주 오랜만에 느껴봅니다. 처음에는 낯선 이가 몸에 손을 댄 듯 두렵고 생경했지만 점차 그의 품이 편안해집니다. 이토록 따뜻한 감촉과 그윽한 체취를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의 마음씀씀이와 보드라운 접촉에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남편의 팔뚝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어내리며 말합니다.


“나도 알아.”


“그래.” 그가 나지막이 속삭입니다. “사실 나, 도움을 받고 있어.”


“도움?”


“응. 당신도 이제 도움을 받는 게 어떨까 싶어서.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다시 얘기하자.”


저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남편이 말하는 그 도움이란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법인지 사실 궁금하지 않습니다.


“먼저 들어가 자. 나는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갈게.”


남편은 제 말을 듣지 못한 듯 가만히 있다가, 문득 힘주어 저를 안아주고는 조용히 침실로 돌아갑니다.


저는 다시 혼자가 되어 밤하늘 봅니다. 별들이 보입니다. 저 먼 별빛은 과거의 것입니다. 과거의 빛을 지금 보는 겁니다. 제게 성은이의 존재도 그런 것일까요. 이미 사라진 성은이의 미소를 아직도 바라보는 것일까요. 성은이는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다시 기억이 납니다. 저는 나쁜 엄마가 절대로 아닙니다. 성은이와 있었던 일이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그날 밤, 같이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셌던 밤에 딸아이가 제게 물었습니다.


“저-기 밝은 별은 무슨 별이야?”


“저거? 제일 밝으니까 북극성.”


“저 별은 이름이 있네?”


“밝고 가운데 있으니까.”


“그럼 저 별은 내 걸로 할래.”


“성은이거?”


“응. 안될까?”


“되고말고. 왜 안 되겠어. 저 별을 성은이 별이라 하자.”


저와 남편, 그리고 성은이는 손을 한데 모아 약속합니다. 성은이는 북극성, 아니 성은이 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무렇지 않게 말합니다.


“엄마,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알아?”


심장이 덜컥 내려앉다 못해 문드러지는 듯 아파옵니다. 옆에 앉은 남편과 묵언의 눈길을 주고받습니다. 남편도 난처한 듯합니다. 수많은 질문 중에 하필 왜 이 질문일까요.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저는 답할 수가 없습니다. 모르는 것에 대해 제가 어떻게 답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성은이는 엄마의 심정을 이해라도 하는 듯이 금세 스스로 답합니다.


“하늘나라로 간대. 생각해봤는데, 나는 저기 북극성으로 갈 거야. 이름도 지었으니까.”


제 입술이 일그러집니다. 울면 안 돼. 성은이 앞에서 절대로 울면 안 돼. 죽음이라는 것도 다른 사물의 이름처럼 가볍게 넘겨야 해. 스스로에게 되뇌지만, 이미 뺨은 입술과 함께 일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초점이 흐려집니다. 나는 왜 이렇게 눈물이 많을까요. 눈을 크게 뜬 채로 고개를 뒤로 젖힙니다. 눈꺼풀을 깜빡이며 눈물을 말려봅니다.


“이제 엄마도 별 하나 골라. 그 별도 엄마 별이라고 부를래. 별이 이렇게 많은 데 이름이 없는 건 정말 이상해.”


눈물이 주체가 되지 않아, 별을 찾을 만한 여유는 없습니다.


“성은이가 골라 줄래?”


딸아이는 광막한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눈을 좌우로 굴리며 별을 찾습니다. 그러더니 손을 들어 가리킵니다.


“저 별 어때? 저-거.”


“어떤 별?”


“저기 있는, 저 별. 엄마도 보이지 저-거?”



아이의 손가락을 따라 하늘을 눈에 담습니다. 별이 많습니다. 가리키는 곳만 해도 수십 개의 별이 있는 듯했습니다. 저는 두리번대다가 이내 고개를 내려 성은이의 이마와 콧등, 그리고 입술을 바라봅니다. 성은이는 수시로 저와 눈을 마주치며 자신이 고른 별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확인하지만, 저는 아이와 밤하늘 어딘가를 번갈아 볼뿐입니다. 다시 아이를 보니 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엄마도 좋아. 그 별로 하자. 이름은 엄마 별.”


성은이는 저를 닮은 미소를 지으며 제 품속에 안깁니다. 가슴 언저리가 간질거리다가 벅차오릅니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으로 몰래 생각합니다. 엄마는 이미 별을 가진 걸. 이렇게나 가까이.


내 마음속의 별 하나.





03. 생명줄을 붙잡고 _ 진영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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