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3)
우주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행성은 조용하고 잠잠하다. 속에서는 때때로 위험한 모래바람이 불어닥치면서 겉모습은 지극히 평온하기만 하다. 내가 방금 저 행성에서 경험한 사나운 사풍은 착각이었나. 그럴 리가 없다. 앞뒤가 다른 행성의 모습에 잠시 혼란스럽다. 분명 9번째 탐사 행성은 나를 내쫓으려는 듯 사납게 굴었으면서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시늉하고 있다.
탐사한 행성이나 인간이나 매한가지다. 멀리서 보면 착하고, 무엇이든 이해하고, 기꺼이 받아들일 것처럼 굴지만 속사정은 전혀 다르다. 내가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탐사 행성의 모래폭풍보다 곱절은 더 위협적으로 나를 내쫓는다. 우리는 똑같은 인간이 아닌가. 왜 그토록 내게 매몰차게 굴었던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제 이해의 시도를 포기했다. 힘만 빠지는 일이다. 그들은 그냥 내가 싫었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내가 바람을 피해 탐사선으로 돌아온 것처럼, 어차피 그들은 내가 아니어도 돌아갈 곳이 있었다.
그들만의 안식처, 대피소, 오래된 친구들, 거저 주어진 가족들, 안락하고 든든한 곳.
내게는 전무했다. 마음 놓고 다가갈 수 있는 곳, 거부당하는 일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곳, 언제나 변함없이 안전한 곳은 없었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건, 매일 밤 새로운 잠자리를 찾아야 하는 나날처럼 막막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따위 걱정은 하지 않는다. 생명줄이 인도한 우주탐사선 안에는 오직 나만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잠깐 쉬어 볼까."
행성을 떠나기 전, 다음 행성의 좌표를 기다리는 시간일 때면 마치 내가 부모가 된 기분이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을 두고 멀리 떠나야만 하는 부모. 물론 나는 부모가 된 적 없고, 나의 부모도 본 적 없다. 그들이 나를 떠날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럼 나는 그때 어땠지. 당연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방금 전 모래바람 속에 고립되어 생명줄을 부여잡고 있을 때가 쓸데없이 떠오른다. 상상만으로도 같은 상황을 다시 겪는 듯 쉽게 피로해진다. 졸리지는 않는데 눈꺼풀이 무겁다. 눈을 감고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몸을 뉘이고 눈을 감은 채로 호흡을 가다듬어 보지만 편안하지가 않다. 옆으로 몸을 돌려 우주를 바라본다.
수많은 별.
얼마나 많은 천체를 탐사해야 점박이들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가 찾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선생님은 찾으셨습니까?”
방과후에 나는 다짜고짜 김태진 선생의 강의실로 들이닥쳤다.
“자네 예의도 없이……”
말을 끊고 소리쳤다. “찾으셨냐고요!”
나는 하얗게 타오르는 분노에 휩싸였지만 어디서 그 불씨가 시작되었는지 몰라 진압은커녕 손도 못 대고 날뛰는 꼴이었다. 반면 김 선생은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듯 매서운 눈초리로 빤히 노려보았다. 나와 다르게 노기를 찾을 수 없었다. 곧 그가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입을 뗐다.
“일단 진정하고 앉게.”
나는 씩씩대며 강의실 앞 쪽에 앉았다. 그가 나처럼 고아로 자랐다는 비밀을 알아서 그런지, 아니면 그의 강경한 성정을 직면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는 선생의 눈빛에 단숨에 압도되어 비굴하게 숨만 골랐다. 그는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무섭게 일렁이던 나의 분노는 그의 의연함 앞에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억지로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내 속에 태울 것이 하나도 남지 않은 듯했다. 순식간에 전소된 후에 새카만 재만이 사방으로 흩날리는 것처럼 어지럽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급변한 나의 상태를 숨기고도 싶었다. 숨을 거칠게 거듭 들이쉬었다.
김 선생은 나의 호흡이 가라앉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린 후에야 차분히 말을 붙였다.
“김진영 훈련생. 무작정 찾아와서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도대체 뭘 찾았는지 묻는 게야.”
분분한 내 속에서 짧은 말 하나를 겨우 잡아챘다.
“혼자서도 살아갈 이유 말입니다.”
선생의 답변은 나의 질문만큼이나 간결했다.
“아내와 우주.”
나는 어리벙벙해서 선생의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내가 아직도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게. 내게는 이제 사랑하는 아내가 있어. 그 사람 때문에 나는 살아갈 수 있고, 계속 살고 싶네. 자네 마음에는 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아는 것밖에 말하지 못하네. 그래도 먼저 물었으니 답을 하자면, 자네도 사랑하는 사람을 찾게나. 그건 아주 운명 같은 일이어서 찾는다고 쉽게 찾아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노력하지 않아서는 곤란하네. 알아들어? 우선 그 성질머리 좀 죽이게, 마음을 다스리란 말이야. 그래 가지고서는 사람 한 명 사귈 수나 있겠나.”
“그런 거 찾을 생각 없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공통의 이유가 있지 않나. 우주 말이야. 자네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 살아. 창공을 가르고 우주로 나아가 천체를 탐사하는 일. 나는 이 일을 사랑하네. 내게는 천직이야”
“제게도 우주비행사가 그런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주로 나가 보면 알 수 있네. 그 전에 마음에 품은 다짐, 포부, 계획, 그딴 것들은 막상 우주로 나가면 아무 쓰잘머리 없는 것들이야. 그것들이 우주를 동경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우주비행사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네. 나가 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야. 백 번 양보해서 우주비행사가 아니어도 좋아. 김진영 훈련생에게 맞는 일을 찾아. 살아가고 싶은 일을 찾으라는 거야.”
“그런 게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선 우주로 나가게. 우리가 있는 곳은 우주비행사 사관학교가 아닌가. 어떤 마음이었든 간에 처음에 여기 들어온 마음이야 있었겠지.”
떠오르는 이유가 없었다. 글쎄, 나조차도 스스로를 이해시킬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내 안을 샅샅이 뒤지려 했지만 까맣고 진득한 재가 곳곳에 내려앉은 듯 어느 하나도 식별할 수가 없었다. 결국 찾는 것을 포기하고 선생의 얼굴을 살폈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찾은 것들을 말할 수 있다니, 그가 부러웠다.
선생은 나와 같은 처지였지만 마침내 찾아낸 것이었다. 나는 왜 아무것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가. 억울했다. 나는 토해내듯 속에 있는 날것을 되는 대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쩌면 김 선생이 나의 마음을 오해 없이 이해하리라는 기대가 일었다. 꺼내기 전에는 나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입에서 나온 후에야 그것이 여태껏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상처와 외로움의 고백이었고, 낯 뜨거운 눈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가, 어디로 가야할지 전혀 모르겠단 말입니다."
김 선생님은 그걸 어느 누가 알겠냐는 표정만 지을 뿐 말이 없었다. 그는 나의 문장과 눈물이 그칠 때까지 침묵으로 함께했다. 나는 다시 텅 빈 기분이 들었다. 멍청하게 책상만을 내려다보았다.
창문으로 노을빛이 들이치고 강의실 안으로 선생과 나의 그림자가 길게 자리했다. 강의실은 고요했고, 하루는 저물고 있었다. 차츰 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갑작스런 나의 돌발행동에도 의연하게 대처한 김태진 선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동시에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나는 머리를 숙여 사죄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 약속했다.
“괜찮네, 그럴 수도 있지. 대신 다음에는 귀띔이라도 해주게.”
나는 부끄럽고도 아련한 마음으로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럼 이제 돌아가서 계속 고민해봐. 김진영 훈련생이 살아갈 이유.”
주위로 모르는 것투성이다. 거의 다 어둡다. 드문드문 별이 보이는 정도. 흰 것도 검은 것도 사실 거의 모른다. 단지 눈에 보인다는 이유만으로도 흰 것을 검은 것보다는 조금 더 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과학자들은 그게 싫은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암흑 물질이라는 단어로 잘도 멋들어지게 바꾸어 표현했다. 결국 암흑물질도 에테르의 운명을 따르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질. 보이지 않지만 있을 것이라 상정한 것. 그것은 천체 사이에서 여러 가지 힘을 매개하고, 우주의 근간과 관련이 있다고 우주비행사 훈련학교에서 배웠던 것 같다.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는 세련된 고백에 불과하다.
나는 모른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던가. 점박이들이 나를 따라오려면 한참이나 멀었다. 나는 그들이 싫어하는 말을 진심을 담아 몇 번이고 되풀이할 수 있다. 나는 친구를 모르고, 형제도 모르며, 어머니와 아버지도 모른다. 모른다는 말과 없다는 말은 정확하게 같은 뜻이 아닌가.
나는 없다.
아주 어릴 적의 기억. 이 기억이 나의 기억이라는 보장도 없는 기억. 어딘가에 누워 있었던 것 같다. 빛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제대로 전파를 수신하지 못해 지지직거리는 듯한 시야와 소리. 무언가가 지나갔고 사라졌다. 그런 모호한 감각이 나의 첫 기억이다. 아무 의미 없는 과거. 어머니의 얼굴도, 아버지의 얼굴도 없다. 목소리도, 촉감도, 부모를 가늠할 그 무엇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부모는 내 곁에 있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름을 억지로 붙여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나의 무지를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다.
06. 온 세상과 같은 아이 _ 수현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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