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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화 Sep 03. 2024

06. 온 세상과 같은 아이

수현 (1)





아이와 엄마가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갑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은근한 햇살이 두 얼굴 위로 내리고, 그들은 서로를 바라봅니다. 행복한 표정입니다. 아이는 4학년, 아니 5학년 정도로 보입니다. 우리 딸아이가 세상을 떠난 나이 쯤, 딱 그쯤 되어 보입니다. 성은이는 한 살을 더 먹었지만, 기억 속의 얼굴은 1년 전 그대로입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모습 그대로겠지요. 그럼에도 저는 감히 상상해봅니다. 한 살 더 먹은 성은이, 두 살, 세 살, 열 살, 그리고 제 나이까지. 그때는 저랑 판박이일 겁니다. 성은이는 제 어렸을 적 얼굴을 쏙 빼닮았으니까요.


큰길로 나가자 많은 아이와 부모가 보입니다. 모두가 같은 곳으로 향합니다. 서두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학년을 대충 가늠합니다.


저 정도면 1학년. 성은이는 처음에 학교에 가기 싫다고 그렇게 떼를 썼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얼른 초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난리를 부린다던데, 우리 딸아이는 왜 그럴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와 한시도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 같아 괜히 흡족하기도 했습니다.




옆에 지나가는 아이는 2학년쯤 됐을까요. 우리 성은이도 저만할 때, 꼭 내 손을 잡고 등교하고 싶어 했습니다. 잠깐이라도 손을 놓으면 부리나케 제 손을 찾았답니다. 


저만치 걸어가는 여자아이는 3학년. 그때부터 성은이 몸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이렇게까지 될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후로 많이 아팠습니다. 저도 참 아팠고요. 


또 이런 생각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이를 보면서 성은이 생각을 언제쯤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나름 진전이 있다면 이제는 어린 아이를 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성은이가 사라진 이후로는 눈을 들고 다닐 수조차 없었습니다. 아이를 보면 벌써부터 심장이 뛰면서 눈물이 났으니까요. 모두가 성은이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만 보며 다녔습니다. 보지 않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정문을 지납니다. 부모와 아이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기도 하고, 깊이 포옹을 하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저렇게 아이를 가슴 가득 안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렇게 좋을 수 없어요. 좋다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작은 아이를 힘껏 안았다는 것만으로도 세상 전부를 손에 쥔 기분이랍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제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결국 이 감각의 기억도 점차 사라지겠죠.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씁쓸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모습을 끝까지 눈에 담다가 정문을 지나쳐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햇살은 여전히 따뜻하고, 가로수의 잎들은 가만가만 흔들립니다. 제가 걸어가는 방향과 반대쪽에서 학생들이 걸어옵니다. 저는 그 얼굴들을 하나씩 눈에 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하기를, 사실 초등학교 등교시간에 맞춰 일부러 조금 일찍 집에서 나오는 겁니다. 모든 아이의 모습 위로 성은이가 떠오르지만, 아침에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하루를 제법 잘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억지로라도 힘을 낼 생각이 납니다. 문득문득 마음이 복잡하게 비틀리면서 젖은 수건을 짜내듯 손쉽게 눈물이 떨어질 것도 같지만, 아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슬픔을 덜어봅니다. 


다들 하나같이 참 예쁘구나. 참 예뻐. 어쩜 이렇게 다 예쁠까. 아이들은 햇살 같아요. 여리고 고운 햇살.





“저기.”


목소리를 따라 천천히 고개를 듭니다. 저와 비슷한 높이에서 얼굴을 마주칩니다. 그는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갑작스런 만남에 당황스러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렵기만 합니다. 가만히 그의 얼굴을 뜯어봅니다.


“모르겠어요? 나, 인정이 엄마.”


저는 눈을 떨어뜨립니다. 그곳에 인정이가 있습니다. 기억납니다. 인정이. 성은이와 2년 동안 같은 반으로 지내면서 가깝게 지내던 친구입니다. 딸들이 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가까워졌습니다. 딸이 친구라면 엄마도 친구가 된다고 했던가요. 저와 인정이 엄마는 등교 후에 시간이 남으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이상 초등학교로 배웅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만나지 못했습니다. 오늘에서야 우연히 마주하자 반가움보다는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저는 인정이 엄마의 눈길에서 도망치듯 얼른 무릎을 쪼그려 앉아 인정이와 눈을 맞춥니다.


“인정아, 안녕. 잘 지냈니?”


“안녕하세요.”


인정이는 배꼽에 손을 포개고 상체를 깊이 숙입니다. 기특하기만 합니다.


“벌써 이렇게 컸구나. 몰라보겠어.”


아이를 빤히 보다가 용기를 내어 두 팔을 벌려봅니다.


“아줌마가 인정이 좀 안아 보자. 얼마나 컸나.”


인정이는 눈을 들어 엄마를 슬쩍 보더니 주뼛주뼛 제 품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두 팔을 모아 아이를 가득 품습니다. 기분이 이상합니다. 제 품에 있는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씁니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정말 터질 듯이 숨이 차오릅니다. 조금 더 인정이를 안고 싶지만, 숨을 쉬기 위해서라도 팔에 힘을 풉니다. 인정이는 제게서 멀어져 엄마의 손을 다시 잡습니다. 인정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겠습니다. 위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인정아, 학교까지 혼자 갈 수 있지?”


“응, 그럼. 내가 어린 애도 아니고.”


인정이는 엄마에게 귀여운 핀잔을 줍니다. 인정이 엄마는 제 눈치를 보며 못 말리겠다는 듯 난처한 미소를 짓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그들은 손을 가볍게 흔들어 인사를 합니다. 인정이는 제게도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히 가세요.”


저도 손을 흔들어 봅니다.

“그래. 안녕.”



몸을 일으켜 인정이 엄마를 마주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이해가 됩니다. 생각해보니 인정이 엄마는 제 이름도 모릅니다. 그에게 저는 성은이 엄마로 불렸고, 저도 그를 인정이 엄마로 불렀습니다. 서로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리는 누군가의 엄마로 서로를 알고 지내도 충분했습니다. 수현이라는 이름보다 성은이 엄마라고 불리는 쪽이 더 편하고, 더 정확히 표현해주는 것도 같았습니다. 제가 성은이의 엄마라는 것이 지금도 변함없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성은이 엄마라 불려도 되는 것인지 제 자신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겠습니다. 인정이 엄마 곁에는 인정이가 있는데, 제 곁에 성은이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그 이름에 자신이 없습니다.


“인정이 엄마,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제 행색을 살피더니 말을 잇습니다. “출근길이에요?”


“네.”


“같이 걸을까요?”



저는 어색하게 입으로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인정이 엄마는 방향을 틀어 저와 함께 길을 걷습니다. 등교하는 학생들이 우리의 곁을 지나칩니다. 저는 다시 혼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그들은 둘씩 짝지어 길을 걷습니다. 이제 부모와 아이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다시 땅만 바라보며 걷는데, 인정이 엄마도 말이 없습니다. 아무 대화 없이 걸어갑니다.


정류장에 거의 다다르자 인정이 엄마가 입을 뗍니다.


“얘기 들었어요. 작년에……”


제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굴면 될 것 같은데, 자연스럽게 행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마지못해 답합니다.


“들으셨구나.”


“네.”


다행히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괜히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핑계를 댑니다.

“이제 출근해야 해서.”


“아, 네. 그렇죠.”


인정이 엄마는 난처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코를 훌쩍이고는 말합니다.


“그, 혹시 작은 일이라도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요.”


“네? 아, 감사해요.”


우리는 가볍게 목례를 나눕니다. 인정이 엄마의 뒷모습이 멀어집니다. 예전 같았으면 잠깐 시간을 내서 커피라도 한 잔 했을 텐데, 어느 누구도 권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후회가 됩니다. 오늘은 일찍 나오지 말 걸.


정류소에 우두커니 서서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과 그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생각합니다.


방금 나는 누구였지.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플까. 고개를 급히 좌우로 젓다가 저만치 멀어진 인정이 엄마를 바라봅니다.


헤어지기 직전의 인정이 엄마의 얼굴이 눈앞에 선합니다. 나를 가여워하지만 그것을 애써 숨기려는 표정, 금방이라도 대신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눈, 어쭙잖은 위로는 삼키려는 입, 고민하며 망설이는 뺨, 그것들을 제가 보지 못할 리 없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이 그에 상응하는 표정과 태도를 취한 기분입니다. 마음에 죄책감이 들어 제 솔직한 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07. 마음으로 가는 길 _ 수현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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