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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화 Sep 05. 2024

07. 마음으로 가는 길

수현 (2)





사실 인정이 엄마의 생각보다 제가 덜 힘든 모습으로 보일까봐 속으로는 무진 걱정했습니다. 저는 자식과 사별한 후에 힘든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또 그만큼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보았을 때, 제가 괜찮아 보인다면 그것대로 마음이 쓰이고 심란한 일입니다. 그들이 딸아이에 대한 제 사랑의 정도를 쉽게 넘겨짚으며 오해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참 괴로운 일입니다. 성은이만을 생각한다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울기만 해야 합니다. 제가 저로 살아가려고 하는 일, 성은이에게서 적당히 멀어지려고 하는 일, 그런 시도들이 이제는 더 이상 성은이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일까요. 벌써부터 잊어 가기 때문일까요. 선뜻 답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싫어집니다. 저는 벗어날 수 없으면서도 벗어나려고 노력합니다. 벗어나려고 노력하면서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염려합니다. 이 얼마나 모순된 모습인지 제 자신에게 화가 날 지경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래요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인정이가 탐났고 인정이 엄마를 시샘했습니다. 그가 딸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인정이 엄마가 제게 호의 섞인 제안을 할 때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안다고 내게 도움을 주겠다는 거지?


저는 이렇게 쏘아붙이고도 싶었습니다.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네요. 저는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고요. 


딸아이와 여전히 함께 등교하는 그에게 상처를 주고도 싶었습니다. 제 슬픔의 깊이를 이용해 거꾸로 그를 함정에 빠뜨리고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인정이가 생각나서요. 아니, 성은이가 생각난 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정이를 가득 안았을 때, 원망스럽게도 성은이가 생각났습니다. 사실 성은이 같았어요. 성은이가 살아 그대로 자랐다면 인정이랑 비슷할 텐데. 




큰일입니다. 자꾸 못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인정이 엄마가 아니라 제 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화가 납니다. 쑥쑥 자란 인정이의 모습에 되도 않는 분노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인정이를 학교로 보내기 전에 포옹도 해주지 않는 엄마라니, 제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랑한다면 그럴 수 없습니다, 절대 그럴 수는 없는 겁니다.


누구보다 딸을 사랑할 수 있는 제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억울합니다. 아스라이 사라지던 원망을 다시 한 번 가까이 부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원망할 수 없기에 혼자서 속으로 삭힐 뿐입니다.


일 년 전으로 단숨에 되돌아간 듯합니다. 하필 오늘 왜 그들을 만나서……


아닙니다. 이제 그만 해야겠어요. 이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다른 생각을 해야겠습니다. 지금 연구하는 주제가 좋겠습니다. 그곳이라면 꽤나 안전할 겁니다. 머릿속에서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방향을 검토합니다. 어제까지 계산했던 내용을 살펴봅니다. 이 계산으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무슨 구조가 밝혀지려는 것일까. 그것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야 합니다. 긴장하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예상하고, 계산하고, 추측하고, 논리적인 언어를 통해 증명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출근하는 내내 정신력을 쏟아붓습니다. 잊어야 합니다. 모두 잊고 싶습니다. 절박하게 수학의 명제만을 떠올리며 학교로 향합니다.





강의실로 들어가자 맨 앞에 앉은 학생이 제게 먼저 인사합니다. 저도 일부러 밝게 화답하고는 직접 출석을 부릅니다. 사실은 강의실 문 앞에 마련된 얼굴 인식 시스템으로 학생들의 출석 여부는 제가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쉽게 출석 정보를 받을 수 있지만, 저는 한 명씩 이름을 불러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고 목소리를 듣는 편을 더 좋아합니다. 이렇게 출석을 확인하지 않으면 수업 내내 교수와 학생이 교류하는 순간은 아예 없을 겁니다. 오늘은 대출하는 학생은 없었습니다. 지각생이 몇 있을 것 같네요.


수업을 시작합니다. 어떻게 강의를 시작할지 항상 고민됩니다. 저는 분필을 들고 칠판 앞을 서성이다가 입을 뗍니다.


“우리가 가장 처음 만난 순간을 생각해 볼까요. 만약 우리가 이렇게 모여 있는데 서로 아무 대화나 교류 없이 앉아만 있었다면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이미 여러분끼리도 서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았을 거예요. 옆 사람에게 묻죠. 오늘 진도 어디야. 숙제가 뭐였어. 필기 좀 빌려줘. 그런 대화들 말입니다. 우리는 서서히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서로의 성격이나 특징들을 알게 됩니다. 서로의 관계를 지속하다보면 보이지 않는 구조 비슷한 것도 생기죠. 예를 들면, 어떤 두 친구가 더 친하게 지내는지, 어떤 두 친구는 서먹서먹하다거나, 또 누가 누굴 좋아한다거나, 그런 것들 말입니다.”



저는 칠판에 지금까지 배운 대수 구조의 이름을 적고는 말을 잇습니다.


“군, 환, 그리고 체 같은 대수 구조를 생각해봅시다. 아주 처음에는 집합이 있습니다. 그 집합에는 보통 원소가 있고요. 그 원소들끼리 서로 마냥 바라만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그 원소들 사이에 어떤 연산을 부여하는 순간, 각 원소들의 성질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어떤 원소는 연산하는 원소를 바꾸지 않습니다. 또 어떤 원소는 정반대로 바꿔놓기도 하죠. 연산 덕분에 원소들 사이의 관계를 알아가다 보면 우리는 그 대수의 구조를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와 아주 비슷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제 딴에는 꽤나 재밌는 비유라고 생각했는데, 학생들은 못마땅한 표정입니다. 조금 더 흥미로운 주제를 꺼내야겠습니다.


“군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죠. 나중에 배우겠지만, 어떤 군은 한 점으로 돌아오는 길의 서로 다른 방법을 원소로 갖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학생들의 표정이 더 좋지 않습니다. 제가 실수한 것 같습니다. 서둘러 말을 줄이고 오늘 강의 내용으로 곧바로 들어갑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시큰둥한 표정을 마주하면 당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원래도 말주변이 없는데, 더 말을 더듬게 됩니다. 이럴 때는 속 편하게 그냥 교재에 있는 내용만을 읽고 다루는 편이 더 좋은 방법 같습니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 강의가 끝나고 연구실로 돌아왔습니다. 잠시 의자에 앉아 숨을 돌립니다. 강의 중에는 개인적인 일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지만, 강의가 끝나고 혼자가 되면 다시 우울해집니다. 인정이도 다시 생각나고, 인정이 엄마의 난해한 표정도 기억납니다. 당연히 성은이의 얼굴도 계속 맴돕니다. 또 그 굴레를 시작하고 맙니다. 같은 지점으로 계속 돌아오고야 맙니다. 저는 가족사진 속 성은이의 환한 미소를 보다가 연구실을 일찍 나섭니다.


어제 남편이 알려준 곳에 도착했습니다. 도심 속에서 갑자기 근사한 공원이 나왔습니다. 이름은 ‘마음 공원’으로 붙어 있습니다. 입구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수목원처럼 꽤나 깊어 보입니다. 입구 쪽에서부터 키 높은 나무들이 울타리처럼 경계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공원으로 발을 들입니다. 길이 나 있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길과 가로등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 같습니다. 햇빛은 무성한 나무을 지나 바닥에서 유유히 흔들립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소리와 새소리는 제 걸음을 느긋하게 만듭니다. 호흡도 깊게 쉬어집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공원 밖의 공기와 다른 듯합니다. 더 차갑고 상쾌합니다. 금방 안내판이 보입니다. 심지어 전자식이 아닌 나무에다가 글씨를 썼습니다. 그런 팻말 따위를 너무 오랜만에 보는 탓에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남편의 말대로 ○○대학교 부설 심리학과 연구실이 있나 봅니다.


팻말을 세 개 정도 따라 들어가자 야트막한 건물 두 채가 나타났습니다. 숲 같은 공원으로 들어올 때부터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갑자기 건물이 나타나 놀랐습니다. 건물 앞으로는 승용차 두 대가 주차되어 있습니다. 건물 주변으로 키 큰 나무들이 보호라도 하려는 듯 가지를 가까이 대어 자랐고, 벽으로는 초목이 어지러이 올라탄 탓에 건물마저 자연의 일부처럼 보입니다.



고요합니다. 저절로 주변에 귀를 기울이게 합니다.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새소리 끝에 다시 적막이 감돕니다. 남편의 말대로 두 건물 중에 더 작은 건물 입구 앞에 섭니다. 문은 열려 있지만, 안은 어둡습니다. 쉽게 발을 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잘못 찾아왔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정적에 휩싸인 곳이라 괜스레 목소리도 내기 곤란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을 찾다가 결국 문 앞에 바짝 서서 불러봅니다.


“저기요.” 


응답이 없습니다. 목을 가다듬고 다시. 


“저기요, 아무도 안 계세요?”


돌아오는 소리는 없습니다. 저는 조심스레 발을 떼고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갑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갑자기 들려오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저는 화들짝 놀라 옆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08. 대머리 뇌과학자 _ 수현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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