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는 순전히 우리 마음의 산물이지만 공간은 마음 외부의 현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성질을 선험적으로 완전히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
수현 (1)
딸아이가 아직 살아 있는 것만 같습니다. 성은이는 아직까지도 저를 깨우고, 일으키고, 하늘을 보게 하고, 웃게 하고, 또다시 울게 합니다. 무엇을 보더라도 옆에서 성은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딸애는 어디를 가나 제게 질문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이름과 뜻을 물을 듯했습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랬습니다. 엄마인 제가 별 수가 있을까요. 질문에 답하고, 흡족한 마음으로 또 답하고, 아이가 만족할 때까지 다시 답할 뿐입니다.
이건 눈이야. 맞아.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랑, 눈코입 할 때 '눈'이랑 똑같아. 저건 새. 이것도 그렇지. 하늘을 나는 '새'랑, 성은이 새 가방 할 때 '새'랑 똑같아. 다 이름이 새는 아니야. 다 따로 이름이 있는데, 저 새 이름은 엄마도 잘 모르겠어.
딸아이에게 이름을 알려주다 보면 오히려 제가 모르는 것이 세상에 이토록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어느 날은 성은이가 별을 보러 가자고 졸랐습니다. 저는 놀라기도 했고 조금은 난감하기도 했습니다. 딸아이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성은이가 참으로 안쓰러웠습니다. 한창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뛰놀 때인데 병원에만 있으려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좀처럼 보채지 않는 성은이의 낯선 안달을 듣다가 고민 끝에 서울 근교로 나갔습니다. 우리 가족은 별이 잘 보이는 곳으로 차를 타고 갔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성은이는 다시 묻기 시작했고, 저는 하나씩 답했습니다.
저건 하늘. 밤. 그리고 별. 그래, 별. 이것도 별. 저것도, 그것도 별. 맞아, 다 별이야. 그래, 엄마도 모르는 게 많아. 다음에 엄마가 꼭 알려 줄게.
성은이는 잠시 말없이 있다가 다시 묻습니다.
“엄마, 별은 얼마나 많아?”
“얼마나 많을 것 같아?”
“셀 수도 없이. 별은 셀 수 없이 많아.”
“셀 수 없이?”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는지 기특하기는 하지만, 저는 눈치를 보다가 말을 붙였습니다.
“별은 셀 수 있으니까, 셀 수 있게 많은 거야.”
“별을 다 셀 수 있어?”
딸아이는 입을 헤벌리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별이 가득 담긴 듯 또렷한 눈망울, 윤기 나는 머리카락, 조막만 한 귀, 포실포실한 두 뺨, 땀 냄새가 섞인 은근한 체취는 저를 마냥 행복하게 합니다.
딸아이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는 가슴이 뛰어 혼났습니다. 더 큰 수를 가르치고 싶다. 더 큰 수를 세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 더 많은 별을 셀 수 있도록, 성은이가 아주 오랫동안 별을 셀 수 있도록. 그게 마땅히 제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랬듯이, 세상에 이름을 붙이는 일을 아이에게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온전히 제게 맡겨진 일이라니, 이토록 놀랍고 설레는 일이 있을까요. 하지만 별을 헤는 순간에는 기다려야 합니다. 딸아이가 셀 수 있는 모든 것을 셀 때까지 말입니다. 그 끝에 닿아야만 모르는 것의 이름을 알기 원하기 마련입니다.
어떡하죠. 딸아이의 옆모습만이 어렴풋하게 기억날 뿐, 별을 모두 헤아렸던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저는 나쁜 엄마입니다. 벌써 딸아이를 잊고 있으니까요. 큰일입니다.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요.
아닙니다. 다시 기억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요. 딸아이는 말없이 하늘을 보다가 물었습니다.
“별들은 어디 있다가 밤에 오는 거야?”
천만다행이었습니다. 답을 아는 질문입니다. 저는 자랑스럽게 대답합니다. 성은이가 모르는 것을 가장 먼저 가르칠 수 있다는 과한 만족감에 절로 오르는 입꼬리를 애써 숨기며 차근히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낮에는 별이 보이지 않는 거야. 왜냐하면……” 딸아이는 진중하게 저와 눈을 마주칩니다. 입술이 동그랗게 모이는 것을 보아하니 이야기가 재미있는 모양입니다. 집중하는 그 얼굴이 얼마나 대견한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꽤나 길게 설명을 이어 나갔습니다. “…… 그러니까 별은 하늘에서 떠난 적이 없어. 그 자리에 항상 있는 거야.”
“마음처럼?”
마음처럼. 그 말이 마음속 깊이 자리하다가 목을 타고 위로 솟는 기분입니다. 눈 밑까지 눈물이 차오르는 탓에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를 빤히 바라보던 딸아이는 제게 가까이 다가와 가슴 위에 손을 얹더니 말을 붙입니다.
“엄마가 그랬잖아. 사랑하는 마음도 항상 여기 있다고. 저번에 엄마 책에 물 쏟았을 때.”
아직도 가슴이 먹먹한 탓에 목소리를 낼 수가 없어 딸아이의 손 위에 제 손을 살포시 포개어 봅니다. 보드랍고 여립니다.
“나 때문에 엄마가 엄청 화낸 날. 그때 엄마가 나를 안아주면서 그랬어. 나를 혼낼 때도 항상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그때 엄마 심장이 엄청 두근두근했어. 그래서 알았어. 정말 항상 여기 있구나, 하고.”
딸아이는 잠시 눈을 굴립니다. 나의 심장박동을 들으려는 듯이.
저 역시 뛰는 심장과 아이의 손바닥을 감각합니다. 성은이의 기억을 통해 제 말을 곱씹으며, 맺힌 눈물도 감출 겸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은 뿌연 빛으로 윤이 납니다. 별이 정말 많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날이 지났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 때문이었을까요. 악착같이 현실을 붙잡아 돌아왔지만, 저와 남편 사이의 빈자리는 크기만 합니다. 말수가 줄은 남편의 곁, 그 곁에서는 제가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 같아 저도 별로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마 남편도 제 곁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요. 우리는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을 버티듯 살아왔습니다. 우리 둘만 남은 후부터 불필요한 말을 주고받지 않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서로를 위한 것 같기도,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것 같기도 합니다.
어느 날에는 집에 늦게 들어오니 남편은 먼저 자는 중이었고 성은이와 관련된 모든 것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장난감, 책가방, 책상, 침대, 방에 있던 성은이의 것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너무도 깊고 짙은 빈 방이 남아 있었습니다. 너무 큰 현실의 부재는 상상 속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는 그 존재를 목격했지만, 남편에게 행방을 묻지 않았습니다.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말 이상하게도, 제게 한마디 말도 없이 유품을 정리한 남편이 밉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마운 감정이 일었습니다. 그 힘든 일을 혼자서 했구나, 나 없이. 그날 밤부터 남편과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예전만큼은 아니었고, 딸아이의 이야기도 아직 꺼내지 못합니다.
장례가 끝난 후 처음 대학으로 돌아온 날, 수학과 1학년 기초 강의에 들어갔습니다. 어쩐지 학생들의 얼굴이 달라진 듯했습니다. 더 어른이 된 느낌이랄까요. 맨 앞자리에 앉아 호시탐탐 강의를 방해할 기회만 노리던 학생도, 맨 뒤에서 강의에 집중 안 하고 딴짓만 하던 학생도, 수업만 시작하면 얘기할 것이 뭐가 그리 많은지 수다를 그치지 않는 두 학생까지, 모두 똑같은 얼굴을 하고서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의 동일한 표정과 시선에 의아해하면서도 아무 내색 없이 책을 폈습니다.
무한. 아무렇지 않게 무한에 대해 설명해야만 했습니다.
“여러분, 무한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셀 수 있는 무한과 셀 수 없는 무한. 자연수와 일대일 대응이 가능하다면 그 집합의 원소의 개수는 셀 수 있는 무한입니다. 마찬가지로 실수의 구간과 대응시킬 수 있다면 그 집합은 셀 수 없는 무한입니다. 셀 수 있는 무한은, 셀 수 있는……”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차올라서요. 우리는 모두 유한하면서 이렇게 모여 무한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껏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개념이 왜 이렇게 가슴에 사무치는지, 화가 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몰라 글자가 번진 교재만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다급히 눈물을 짓이기듯 어금니를 꽉 깨물고 호흡을 머금었습니다. 얼른 몸을 돌려 분필을 들고 칠판에 아무것이나 판서를 해봅니다. 강의와 아주 관련이 없는 것을 쓴다면 그것대로 또 낭패입니다.
countable. uncountable.
손을 멈추고는 학생들을 응시합니다. 모두 똑같은 표정입니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기이한 표정. 목을 빳빳이 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습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 침묵에 숨이 턱 막힙니다.
저는 곧바로 예감했습니다. 그랬구나. 제자들도 이미 알고 있었구나.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이유. 강의에 다른 교수님이 들어온 이유. 강의 중에 내가 갑자기 말을 그친 이유. 급히 고개를 떨어뜨린 이유. 저는 그들의 육중한 시선을 외면하며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강의실에 가득한 정적이 저를 옥죄어오는 듯했습니다. 전화를 받는 척하며 탈출하듯 강의실 앞문으로 나왔습니다. 차갑고 어스름한 복도. 저는 우두커니 서서 시간이 어서 흐르기를, 모든 것을 흔적도 없이 지우며 흐르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그만 마무리하죠."
어렵사리 개념을 전달한 후에 일찍 강의를 끝내도 학생들은 즐거워하는 기색 없이 조용히 강의실을 나갔습니다. 저는 학생들의 인사를 피하며 서둘러 연구실로 돌아왔습니다.
서가에 꽂힌 책들, 작은 세면대, 널찍한 책상과 그에 비하면 작은 컴퓨터, 목까지 기댈 수 있는 편한 의자, 그 앞에 증명해야 할 명제가 초라하게 종이의 형태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득 연구실이 지저분해 보였습니다. 책상 위는 너저분했고, 서가에 꽂힌 책들은 구분 없이 여기저기에 자리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 책상과 책들을 사용하는 사람은 오직 저뿐인데도 말입니다. 제가 없는 동안 누군가가 들어와서 아주 조금씩, 자세히 보아야 겨우 알아볼 정도로만 연구실을 어지른 듯했습니다.
저는 참지 못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 대청소를 시작했습니다. 그 많은 책을 다 빼고, 다시 꽂았습니다. 바닥을 쓸고 닦고, 서랍을 정리했습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남길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사진 한 장. 가족사진. 딸아이와 남편은 모두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얼이 빠진 채로 그 사진을 바라만 보았습니다. 야속하게도 시간이 멎은 것만 같았습니다. 열어 둔 창으로는 엷은 햇볕이 들어와 책상에 빛기둥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그와 함께 새소리와 대학생들의 활기찬 웃음소리, 도시의 소음이 멀리서 희미하게 섞여 들려왔습니다.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족사진을 가슴에 묻고 목놓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창문을 닫지도 못했습니다. 누군가가 제 울음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오히려 나의 슬픔과 아픔을 누군가가 절실히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속이 너무도 먹먹해서 가슴을 연거푸 내리쳤습니다. 그만 울고 싶은데 눈물을 멈추는 방법을 몰라 답답한 듯 발을 굴렀습니다. 발버둥이 치듯 울다가 슬픔에 기진하여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청소를 마무리했습니다.
여전히 책상 위에 남아 있는 가족사진. 딸아이의 얼굴, 남편의 얼굴, 그리고 제 얼굴은 영원히 풀 수 없는 명제처럼 멀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