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1시간가량을 달려 학교에 도착했다. 강의실에는 아직 학생이 몇 명 없었다. 나는 가장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학생들은 강의실에 들어오면서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강의실에 등장하는 사람마다 얼굴은 너무도 피곤해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이 우스워서 남몰래 딴청을 피웠다. 모든 학생이 경쟁하듯 서로의 옆자리를 채워 앉았다. 옆자리를 비워두면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굴었는데, 내 옆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9시가 되자 교수가 강의실에 들어왔다. 머리는 희끗희끗하지만 허리는 곧았다. 안경을 썼고 배는 나오지 않았다. 한 손에는 두둑하게 인쇄물이 들려 있었다. 교수는 목을 가다듬고 출석을 부를 준비를 했다. 그때 누군가 나의 옆자리에 서둘러 앉았다. 재준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큰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곧 재준의 이름이 불려, 재준은 바로 답하고는 내게 속삭였다.
“후, 늦을 뻔했다.”
“그래도 안 늦었네.”
“역에서 여기까지 뛰어왔어.” 재준은 침을 꿀꺽 삼키고 숨을 골랐다. “아무리 빨리 준비해도 항상 이때 도착해. 이상하단 말이야. 웃긴 건, 저번 주 이 시간에 역부터 뛰었던 사람들이랑 오늘도 함께 뛰었다는 거야. 그 사람들도 조금만 더 빨리 준비하면 뛰지 않아도 되는데, 나랑 똑같은 거지. 아마 일 교시 시작 직전에 교정이 가장 바쁠 거야.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서 거의 모두가 뛰고 있거든.”
나는 그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은근히 웃었다. 그가 물었다. “너는 언제 도착했어?”
“십오 분 전에”
“부지런도 하네.”
어머니의 새벽 묵상 이야기를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교수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답하고는 말을 삼켰다. 출석을 부르는 중에 몇 학생이 교실로 조심스레 들어왔고, 교수는 출석을 모두 부르고 나서 중간에 들어온 학생들의 이름을 확인했다. 교수가 유인물을 맨 앞 줄 학생에게 적당히 나누어 건네자, 학생들은 일사불란하게 뒤로 넘겼다. 재준은 종이를 받자마자 책상에 아무렇게나 올려두고는 휴대폰을 꺼냈다. 나는 유인물의 내용을 살폈다. 교수가 직접 쓴 것 같은 필기로 되어 있었다.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교수가 헛기침을 하자 어수선했던 교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학생들의 시선이 교수에게로 몰렸다.
“좋습니다. 오늘은, 명제를 증명하는 방식 중에 하나인 무한강하법을 배워보도록 하죠.” 나는 이름부터 희한한 증명 방식에 대한 설명에 집중했다. “무한강하법은 귀류법의 일종입니다. 이 방법은 어떤 명제를 참으로 만드는 값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그 명제를 참으로 만드는 그보다 더 작은 값이 존재한다고 증명함으로써 모순을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어딘가 명제를 참으로 만드는 최솟값이 있어야 하는데 끝도 없이 계속 작은 값을 만드는 것이죠. 이름 그대로 무한강하법입니다. 그렇게 계속 작은 해를, 새로운 해를 만드는 겁니다. 그럼 우리는 모순을 찾은 겁니다. 어딘가 끝이 있어야 하는데, 끝이 나지 않으니까요.”
강의실 안으로 시험 시간처럼 정적이 흘렀다. 나는 교수의 설명이 이해가 되지 않아 재준을 살폈다. 그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교수는 말을 이었다.
“귀류법처럼 모순이 생겼기 때문에 처음 가정한 것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명제를 참으로 만드는 값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증명할 수 있습니다. 같이 예제를 보죠.”
교수가 나눠준 인쇄물에는 제곱근 2가 무리수라는 것을 무한강하법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교수의 설명만으로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예시를 보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대충 알 것도 같았다. 교수는 여러 명제를 무한강하법으로 증명하는 사례를 설명했고, 강의실에 앉은 학생들 모두 미동도 없이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재준은 매우 바빠 보였다. 필기는커녕 책상에 연필 한 자루도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을 적당히 숨겨서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는 듯했다. 손가락은 계속 움직였고, 연락하는 상대에게서도 바로 답장이 오는 듯했다. 재준의 연락은 수업이 끝날 쯤까지 그치지 않았다. 교수는 수요일까지 제출할 과제를 다시 공지한 후에 강의실을 나갔다. 내가 가방을 정리하는 중에 재준은 강의실에 남은 몇 명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다시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정리할 것도 없어서 금세 가방을 메고는 말했다.
“거짓말 아니라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 무한, 무슨 법? 아니 수학은 그냥 수학 문제 푸는 건줄 알았는데, 이건 무슨 증명하니 마니 존재하니 마니 이렇고 있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수학과에 안 오는 건데 말이야. 무슨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나도 몰랐어.”
“방정식 풀고, 미적분으로 문제 풀고 그랬잖아. 근데 지금은, 사사건건 참인지 거짓인지 따지고 있어. 고등학교 수학이랑 대학 수학이랑 너무 다른 거 아니야?”
내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개만 끄덕이다가 물었다.
“아까 보니까 바쁘던데.”
“여자 친구. 연락하느라.” 재준은 한숨을 푹 내쉬고 말을 이었다. “이제 어디 갈 거야?”
“아마 도서관.”
재준은 놀란 눈을 하며 대답했다. “곧 중간고사지?”
“얼마 안 남았어.”
“나중에 필기 빌려줄 수 있어?”
“물론.”
“땡큐. 역시 영수 너밖에 없다.” 재준은 뒤를 돌아보며 조금 전에 대화를 나누었던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미안한데,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갈게.”
“그래.”
재준은 경례를 하듯 손가락 끝을 모아 이마의 정중앙에 가져다 대고 인사를 했다. 친구들과 강의실 앞문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천천히 강의실을 나와 도서관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