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가 모두 끝난 후에도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혼자서 적당히 저녁을 때우고 주로 학교에 남았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직장인의 퇴근시간과 겹치기 때문에 인파가 몰리는 탓이었다. 학기 초에는 몸이 편한 길을 선택하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귀가를 시도했는데, 만족스러운 경로는 없었다. 버스나 지하철이나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서로의 몸을 밀착해야만 했고, 가끔은 원치 않는 접촉으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좁아터지기 일보 직전의 공간에서 누가 누구를 치고 밀었다는 시시비비를 듣고 있으면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나도 주변의 사람을 모두 밀쳐내고 자리를 확보하고 싶은 거센 충동도 들었지만, 나는 몸을 더욱 웅크릴 뿐이었다. 지하철 같은 경우에는 승강장에 줄을 선 채로 두 개의 차량을 눈앞에서 보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탑승한 이후에는 버스나 마찬가지였다. 그 속은 어딘가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려는 인간들의 욕구가 한 데 엉킨 듯했고. 그 첨예한 욕구에 나가떨어지는 사람과 쓰러지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가끔씩 퇴근시간에 하교할 때면 나는 가슴 앞으로 가방을 끌어안고 나름 단단한 경계를 만들었다. 나는 그 속에서 생각했다. 이들만큼 내가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지, 그토록 간절한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집에서도 편히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고, 학교에서 그토록 벗어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나와는 다르게 그들은 퇴근 시간의 고된 마찰을 잠시 견뎌내면 집에서는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따위가 있을 것이지만, 나는 아니었다.
때때로 아버지가 집으로 찾아왔다. 중요한 건 아버지가 언제 집에 돌아올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주어진 조건으로 손쉽게 확률을 계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찾아오기도 했고, 또 언제는 몇 달 정도 감감무소식이었다가 찾아오기도 했다. 머무는 시간도 때마다 달랐다. 하지만 아버지가 집에 올 때마다 취한 상태라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술을 잔뜩 먹고도 용케 집에 찾아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집에 와서 특별히 무슨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거실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향해 욕을 하고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소름 돋는 소리였다. 우리 집의 어딘가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것 같은 소리. 그러다 어느 날 우지끈, 하면서 집 기둥 하나가 쓰러질 것만 같이 마음이 놓이지 않는 소리였다.
집에 들어갈 때마다 현관의 신발을 먼저 살폈다. 아버지의 예측할 수 없는 방문을 그나마 가장 빨리 알아채는 방법이었다. 집으로 들어갈 때뿐만 아니라, 방 안에 있을 때도 내 마음 상태를 그가 좌지우지했다. 언제든 집으로 들이닥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가끔 아무 기별 없이 집을 찾아온 아버지가 거실에 누워 있을 때면 나는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있었고, 어머니는 나의 방에 들지 않았다. 나를 부르지도 않았다. 어머니도 내가 집에 없는 것처럼 굴었다. 나의 존재가 아버지에게 가닿지 않기를, 그래서 별일 없이 아버지가 다시 집을 떠나기를 바랐다. 그 바람이 간절할수록 내가 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귀를 기울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동태를 살피는 일이었다. 다른 것에 집중하고 싶어도 방문 아래로 스멀스멀 불길한 기운이 내게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방을 나가고, 집을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혹시 모를 아버지의 취중 폭력으로부터 어머니를 보호해야만 했다. 누가 맡기지 않아도 그 감시를 나의 몫으로 삼았다. 마땅히 나의 일이었고, 의무였다. 나와 어머니를 지키는 것이었다. 방과 거실은 바로 옆에 붙어있었지만, 괴상하게도 서로 이어지지 못하고 유리된 장소 같았다. 어머니도 나도 문을 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 이유 없이 그 문을 여는 순간 서로가 버티고 지탱하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쏟아질 것만 같았다. 어쩌면 어머니도 나를 보호하려고 하는지도 몰랐다. 다행히도 내가 대학에 들어간 후로는 아버지가 집을 찾지 않아, 서서히 아버지의 존재를 망각하는 때였다.
퇴근시간의 인파를 모처럼 뚫고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쪼그려 앉은 어머니가 보였고, 신발장 문이 다 열려 있었다. 어머니는 신발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자 어머니는 고개만 들어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금세 피했다. 나는 신발장 내부를 살폈다. 처음 보는 신발이 많았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길가 어디선가 주워 온 것이 분명했다. 신발장 한쪽으로 우산도 가득했다. 대충 세어도 열댓 개쯤은 됐다. 파란 우산, 노란 우산, 투명한 우산, 검은색 우산, 단우산, 장우산. 다양한 종류의 우산이 구비되어 있었다. 나는 가장 낡아 보이는 빨간색 우산을 들어 살짝 폈다. 끝은 이미 해진 상태였다.
“이건 이제 버려야겠어요.”
어머니는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빨간색 우산을 뺏더니 다시 돌돌 말면서 말했다. “아직 멀쩡한데 왜 버려? 이건 엄마가 좋아하는 우산이야.” 어머니는 빨간색 우산을 신발장 한쪽에 집어넣다가 장우산을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우산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제 이런 거 그만 좀 주워 오세요. 가지고 와도 다 못 쓰잖아요.”
어머니는 우산을 다시 세워 정리하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뭐가 못 써! 다 나중에 쓸데가 있는 거야. 너는 무슨 툭하면 다 버리려고 해. 최대한 아껴 쓸 생각을 해야지.”
높은 언성의 나는 말을 그치고 신발을 벗었다. 어머니 뒤쪽에 낯선 운동화 하나가 내팽개쳐져 있었다. 그 작은 변화 하나를 알아차린 순간 아버지는 이미 나의 곁에 바짝 선 듯했다. 식은땀이 났다. 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집으로 들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거실에 누워 이를 갈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벌레 보듯 눈을 흘기고 방으로 들었다.
나는 내 좁은 방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만약 아버지가 다시 집을 나가지 않는다면 나는 방에 갇혀 평생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텅 빈 나의 방 하나가 사실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세상에 전부라는 인식이 방을 가득 채워나갔다. 점점 차올랐고 무릎과 허리를 넘었다. 명치를 지나 목울대를 기분 나쁘게 건드렸다. 나는 산소를 찾듯 일어나 좁은 방을 서성였다. 나의 세상 전부를 밟았다. 숨이 막혔다. 창문을 열었지만, 바깥바람은 좀스럽게 들었다. 나는 몸을 말아 옆으로 누웠다. 내게 아무것도 들이칠 수 없도록 몸을 움츠렸다. 느닷없이 둔탁하고 불미스러운 소리가 방바닥에서부터 울려 방으로 들어왔다. 나의 심장이 무겁게 뛰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거!”
그 뒤로 무슨 말을 계속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
“미친년아!”
갑자기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세상에 대고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습관적인 주문 같았다.
“한영수!”
그가 갑자기 나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심장은 그의 부름에 반응하여 고동쳤다. 나는 소리를 죽였다.
“한영수! 한영수 어딨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뒤이어 들렸다. “영수는 왜 찾아. 내비 둬.”
잠시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불안하게 들려왔다.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숨을 죽이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몸을 한껏 움츠렸다. 아버지가 찾아올 때마다 지겹도록 솟아나는 질문을 했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더 단단해져야 할까. 나는 얼마나 더 견뎌내야 할까. 도대체 얼마나 더……’
다시 들리는 아버지의 외침. “한영수!”
집 안에 정적이 흘렀다. 나는 딱딱하게 긴장한 몸을 일으켜 문고리를 돌렸다.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방 안에 나지막이 울렸다. 나는 거실로 걸어 나갔다. 어머니는 공허한 눈빛으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부엌에 천정이 다 열려 있었다. 아마 어머니는 천정에 있는 식기들을 모조리 정리하려는 모양이었다. 정말로 그 일이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인지는 알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거실로 나와도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아버지는 거실에 취한 상태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얼굴은 발갛게 올랐고, 눈꺼풀은 왼쪽과 오른쪽이 엇박자로 감기고 떠졌다. 그 속의 눈동자가 나의 얼굴 위에 머물다가 억지스레 힘이 들었다.
아버지가 악을 쓰듯 외쳤다. “영수야! 내 아들!”
나는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벼랑 끝에 불안하게 올라서 있는 사람 같았고, 그의 부름이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부정확한 발음으로 계속 나를 찾았다. 그가 나를 찾을수록 나는 나를 지우고 싶었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나를 통째로 들어내고 싶었다.
“영수야! 아빠한테 와봐. 이리로 오라니까? 여기로. 응?”
아버지는 손을 휘적거리며 계속 나를 불렀다. 나는 그의 앞에 앉았다. 그의 얼굴이 나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나의 뺨을 만졌다. 때린 것은 아니지만, 술기운에 상당히 거칠게 나의 뺨을 문질렀다.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었다.
“내 아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버텼다. 위태로움과 술 냄새와 원치 않는 접촉을 모두 느끼지만 무감각한 듯 모른 척 했다. 아버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견뎌냈다. 나는 고스란히 아버지에게 내 몸을 잠시 재물로 바치고 그가 내게 어떤 일을 범하더라도 오롯이 받아들이고 감당해야 했다. 인내하는 그 시간 동안 일어날 만한 온갖 일들이 머릿속에 퍼져나갔지만, 나는 지우고 지웠다. 아버지는 손으로 나의 볼과 귀를 손바닥으로 거칠게 툭툭 치면서 말했다.
“영수야! 아빠 버리면 안 된다? 알았어? 아빠 버리면 안 돼? 알았지? 알았어, 몰랐어.”
나는 목구멍을 틀어막듯 침을 깊게 삼켰다. 아버지의 손이 뒤로 물러가고 몸도 멀리 물러가더니 다시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다.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등 뒤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수야, 이제 들어가 쉬어.”
나는 어느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별 일이 없어 다행이었지만, 아버지와의 대면이 거듭 재생됐다. 나는 문을 잠그고 방 한가운데 누웠다. 다시 몸을 말아 팔을 베고 옆으로 누웠다. 손목이 따끔거렸다. 상처가 나 있었다. 어디서 난 상처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고 학교 도서관에 들어갔다가 난 상처인지, 퇴근의 인파 속에서 난 상처인지, 방에 들어와서 난 것인지, 아니면 아무 이유 없이 피부가 벌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상처의 근원을 찾기를 포기하고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창은 열려 있었지만 여전히 방 안은 답답했다.
나는 아버지가 집에서 나갈 때까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조용한 거실에 둔탁한 걸음소리가 울렸고, 현관문이 열리고 닫혔다. 새벽이었다. 아버지가 나간 후에도 잠이 오지 않아 쉽게 잠을 포기했다. 괜히 책상에 앉아 있다가 하릴없이 시험공부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