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의 교점 # 04

by 청화

대학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에도 주변의 사람들과 교류는 거의 없었다. 강의실에서는 보통 혼자 앉아 있었고, 간혹 누군가 옆 자리에 앉더라도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덕분에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 교수의 말은 어려웠지만, 아주 이해하기 힘든 것도 아니었다. 공강 시간에는 주로 교정을 거닐면서 시간을 보냈다. 학생증을 발급받기 전까지는 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어 빈 강의실에 들어가 강의 내용을 복습했다. 식사는 학생식당에서 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 상당히 편했다. 내 마음대로 혼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자유로웠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더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입학한 지 꽤나 지났는데도 학생들에게는 대학에서 친구를 사귀는 일이 여전히 일생일대의 과업처럼 보였다. 나는 북적대는 점심시간에 학생식당에 가고 싶지 않아 1교시가 끝나자마자 이르게 식사를 했다. 매일 반찬 종류가 조금씩 바뀌는 한식을 먹었는데, 꽤나 괜찮은 구성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와 운동장이 한눈에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학생들을 보았고, 맑은 하늘을 보았다. 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바로 앞을 지나가는 행인 한 명과 우연히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는데, 행인의 시선이 계속 느껴졌다. 그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성큼성큼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나는 경계하며 그의 행동을 몰래 주시했다. 그가 내게로 고개를 돌리고 불쑥 말했다.


“너도 수학과지?”


“누구세요?”


“나도 수학과야. 수학과 1학년.”


그는 앞머리를 올린 리젠트 스타일에 짙은 쌍꺼풀을 지녔고, 이목구비가 진하게 생긴 남자였다. 옷차림에 꽤나 신경을 쓴 느낌이었다.


“아, 네.”


“같은 1학년인데 말 편하게 해. 나는 김재준. 너는?”


“한영수.”


“사실 이름도 이미 알고 있어. 수학의 이해 듣지 않아? 월요일 일 교시 수업?”


“우리가 같은 수업을 들어? 난 처음 보는데.”


“그럴 수도 있지. 아니, 근데 월요일 일 교시 수업은 너무하지 않아? 어떻게 아홉 시까지 학교에 오라는 거야. 그 교수님은 항상 월수, 일 교시에 강의를 한대.” 재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너는 항상 맨 뒤에 혼자 앉아 있던데, 이유가 있어?”


“그냥 편해서.”


“꼭 혼자 앉고 싶은 건 아니지?”


“뭐, 응.”


“그럼 다음부터는 같이 앉자.” 나는 당황스러워 재준의 얼굴을 보았다. “싫어? 싫으면 말고.”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재준은 아무렇지 않게 운동장을 내려다보았고, 나도 그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학생이 있었고, 그 옆으로는 농구를 하는 무리가 보였다. 공을 모는 한 학생이 잠시 멈췄다가 재빠르게 학생들 사이를 파고들어 레이업슛을 했지만, 농구공은 림을 한 바퀴 돌아 밖으로 떨어졌다. 슛을 한 학생은 아쉬운 듯이 머리를 감쌌지만, 밝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재준이 물었다. “근데 너 여기서 뭐 해?”


“그냥 있는데, 날도 좋아서.”


“날이 좋아서 그냥 여기 있다? 너 이상한 애구나.”


나는 뭐가 이상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딱히 대구하지 않고 물었다. “그럼 너는?”


“나? 나는 여기서 친구 만들고 있잖아.” 나는 재준을 힐금 쳐다보았다. 재준도 나를 보고 말을 붙였다. “근데, 수업 너무 어렵지 않아?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던데. 너 필기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받아 적지도 못하겠어. 저기 무슨 이상한 나라의 언어로 적혀있는 것 같아서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 같다니까.”


“나도 비슷해.”


우리는 다시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는지 각 건물에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벤치 앞을 지나는 사람도 많아졌다. 여학생 무리가 우리 앞을 지났다.


재준이 대뜸 물었다. “너 여자 친구 있어?”


“있을 것 같아?”


“아니.” 우리는 조용히 웃었다. “여자 친구 있는 애가 날이 좋아서 혼자 여기에 앉아 있을 것 같지는 않거든.”


“그럼 너는?”


“있을 것 같아?” 재준의 입꼬리는 벌써부터 웃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 우리는 다시 한 번 함께 웃었다.


“혹시 너 여자 소개 안 받을래? 고등학교 친구인데, 소개시켜줄게. 성격도 좋고 괜찮은 애야.”


나는 정색하며 답했다. “아니야, 아니야. 안 할래.”


재준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너 그런 타입은 아니구나. 오케이, 알았어. 강요하지는 않을게.” 나는 대답 없이 벤치 앞을 지나는 학생들을 눈에 담았다. 재준이 물었다. “네가 나한테 소개시켜줄 사람은 없지?”


“아는 친구가 별로 없어서.”


“그럼 어쩔 수 없지.” 재준은 아쉬운 듯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입을 뗐다. “밥 안 먹어?”


“일찍 먹었어.”


“그럼 나는 점심 먹으러 갈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휴대폰을 꺼냈다. “번호 알려줄래?”


나는 재준의 휴대폰을 건네받아 번호를 눌렀다. 재준은 내게 부재중 전화 하나를 곧바로 남기고 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등을 돌렸다. 나는 재준의 전화번호를 등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