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의 교점 # 09

by 청화

재준과 함께 주점이 모여 있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파전동동은 지하에 있는 허름한 술집이었다. 실제로 허름한지, 일부러 허름하게 보이려고 흉내를 낸 건지 애매했다. 자리와 자리 사이에는 어깨높이에 가림막이 놓였는데, 창호지가 붙었고 구멍이 군데군데 뚫려있었다. 주점 안으로 어릴 적에 어디선가 들어본 가요들이 흘러나왔다. 아마도 노래제목이 GOD의 [길]인 것 같았다. 벽면에는 온갖 글씨와 그림으로 빼곡했다. 몇 년 몇 월 며칠에 누구와 누가 왔다 갔다거나, 사랑한다거나, 화해했다거나, 사귄 지 얼마나 됐다거나, 영원하자는 식에 흔적이었다. 나는 그 약속들을 보면서 시간이 꽤나 흐른 지금에는 얼마나 그 약속이 지켜지고 있을지 가늠했다. 혹시 재준이 벽에 무언가를 남기자고 내게 요청한다면 기꺼이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재준은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자마자 번쩍 손을 들어 능숙하게 주문을 했다. 동동주와 사이다 그리고 해물파전이었다.


“사장님 혼자 하시는 곳인데, 여기 엄청 맛있어. 양도 많고 가성비가 엄청 나.”


나는 메뉴판의 사진을 슬쩍 보고 말했다. “진짜 그런 것 같네.”


재준은 손깍지를 껴서 머리 뒤로 넘기고 상체를 길게 늘어뜨리며 말했다. “시험 끝났는데, 아직 안 끝난 것처럼 왜 이렇게 찝찝하냐.”


“진짜로 아직 시험 남은 건 아니지? 수강 신청한 과목 확인 해봐.”


재준은 재미있다는 쿡쿡 웃었다. “내가 아무리 시험에 관심이 없어도 그 정돈 아냐.”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재준과 나는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주점으로 여자 둘, 남자 둘이 들어왔는데, 가게에 손님이 재준과 나뿐이라 조용한 탓에 그들도 소리를 죽이며 자리를 잡아 앉았다.


재준이 불쑥 말했다. “너 내가 좀 이상한 놈이라 생각하지? 수업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첫 날 보자마자 여자 소개를 해달라고 하지를 않나.”


“그것 때문에 너를 이상한 놈이라 생각하지는 않아.”


“역시.”


“역시?”


“그래, 역시. 그래서 너랑 친구 하려고 한 거야. 너는 그런 걸로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


“그렇게 얘기해 주니까 고맙네.”


“친구끼리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재준 딴에는 멋있게 말한 듯했지만, 내게는 하나도 멋있게 들리지 않아 괜히 방금 들어온 학생들을 살피며 딴청을 피웠다. 재준이 말이 없어 나는 지금 질문이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이제 여자 소개받을 필요 없잖아. 지금 여자 친구 있는 거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여자 친구는 없어. 여자 친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친구들이 있지.” 재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연락하느라 바쁜 것도 그런 이유야. 한두 명이 아니거든.”


“내가 오해했구나. 너 이상한 놈 맞네.” 우리는 서로 짓궂게 웃었다.


재준이 대학에 들어와 처음 치른 시험에 대해 냉혹한 평가를 늘어놓는 중에,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해물파전은 정말 컸다. 다른 음식을 더 주문하지 않을 정도로 양이 많아 보였다. 재준은 파전의 중심을 젓가락으로 푹 찔러 사이를 벌리고는 양파가 올라간 간장 종지를 가운데에 놓았다. 동동주는 머리통보다 조금 작은 항아리에 나왔는데, 재준은 캔 사이다를 따서 절반 정도를 항아리에 부었다. 그리고는 작은 국자로 휘휘 저은 후에 잔에 차례로 담았다.


재준은 술잔을 들고 말했다. “건배.”


나는 잔을 내려다보았다. 소주와 맥주는 아버지의 권유로 고등학생 때도 마셔본 적이 있지만 동동주는 처음이었다. 재준은 술을 들이켰고, 나는 우선 한 모금 맛을 보았다. 고소하고 달짝지근하니 맛이 있었다. 나도 재준을 따라 들이켰다.


재준은 깊이 숨을 내쉬더니 감격하듯 말을 이었다. “어후, 시원해.”


우리는 젓가락으로 파전을 적당히 뜯어 입에 한 움큼 집어넣었다. 역시 맛이 좋았다.


재준은 우물거리며 말했다. “맛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파전을 찢어 한 입 더 먹었다. 우리는 잔을 채웠다. “너 공부 진짜 열심히 하더라. 수업도 열심히 듣고.”


“딱히 할 일이 없어서.”


“할 일이 없어서 공부를 한다고? 너도 이상한 놈이구나.”


“서로 이상한 놈이니까 만나서 이러고 있지.”


재준은 다시 동동주를 시원하게 들이켜고 입 주위를 손등으로 닦았다.


“나 사실 이상한 놈 아니었어.”


“그럼 지금은 왜 그렇게 된 거야.” 우리는 엷게 웃었다.


“억울해서. 생각해 봐. 우리가 지금까지 시험을 도대체 몇 번을 봤어. 일 년에 네 번, 중학교부터만 쳐도 육 년이니까 스물네 번을 본 거고. 사실은 그것보다 훨씬 많이 봤잖아. 온갖 평가에, 모의고사에 수능에. 거의 매달 시험을 봤다고 해야 돼. 그때 다 나한테 거짓말을 했어. 대학만 들어가면 무슨 행복한 날이 펼쳐질 것처럼 말이야. 나는 정말 그렇게 믿고 나름 열심히 공부했거든. 그래 조금만 더 버티면 고생 끝이다. 나에게 자유가 주어진다. 그런 꿈을 꾸면서 공부를 했어. 근데 막상 대학에 들어오니까 무슨, 고등학교 때랑 똑같잖아. 다시 교실에 가만히 앉아서 수업이나 듣고. 중간고사에 기말고사. 또 시험이잖아. 나는 이제 시험이면 지긋지긋한데 말이야. 너는 안 그래?”


“나도 그래. 근데 나는 너처럼 무언가가 끝나기를 기대하지는 않았어. 오히려 대학에 가도 똑같겠지, 뭐. 크게 달라지기나 할까? 제발 더 나빠지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으로 대학에 왔어. 막상 대학에 들어오니까. 진짜 별 거 없더라고. 네 말대로 똑같이 시험에, 더 알아들을 수 없는 수업을 듣는 거지. 가장 크게 변한 건, 내가 점심 메뉴를 고를 수 있다는 정도야. 그래도 나 같은 경우에는 크게 실망하지 않았어. 기대가 없어서 그런 것 같지만…….”


“나도 원래 기대가 없었어. 다 주변에서 나를 기대하도록 부추긴 거야. 내 잘못은 없어.” 재준은 술잔을 들어 올려 보였다. 우리는 건배를 했고 술을 마셨다. 재준은 시원한 소리를 내고 말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계획대로 하는 거야.”


“계획이 뭐였는데?”


“죄책감 가지지 않고 노는 거. 여자 친구도 만들고, 술도 먹고,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거지.”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시험에 신경 쓰는 것 같은데.”


“아주 예리하군. 역시 마음에 들어. 그래,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놀 수가 없어. 수업에 들어가 봐. 나는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애들은 뭔가를 받아 적고 공부를 하고 있잖아. 고등학교 다닐 때랑 똑같이 말이야. 심지어 몇몇 애들은 교수님이 물어보면 대답을 한다고, 대답을. 아니 어떻게 대답을 하지? 고등학교 때랑은 차원이 다른 문제란 말이야. 걔네들은 대학이 이런 곳인 줄 처음부터 알고 들어온 것 같아. 고등학교나 대학교나 다 똑같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굴잖아.”


“걔네들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네?”


“좀 그렇지?”


“그럼 나는? 나도 별로야?”


“아니. 네가 마음에 안 들면 내가 너랑 여기서 이러고 있겠어? 너는 좀 달라. 뭐랄까. 네가 말한 것처럼, 애초에 별 기대가 없다는 느낌이랄까. 뭔가 버둥대는 느낌도 없고. 그냥 대학이 이런 곳이구나, 하고 이리저리 관광하는 것처럼 보여. 외부인처럼 말이야.”


“그런 것도 같네. 아마 그게 적응하지 못한다는 말이겠지만…….”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뜨끔하여 급하게 말을 줄이고 동동주를 들이켰다. 항아리 안을 보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재준은 사장님을 불러 동동주를 하나 더 시켰고, 항아리가 금세 나왔다. 나는 재준처럼 남은 사이다를 항아리에 붓고 국자로 휘휘 저었다. 재준의 술잔에 동동주를 채우는데 그가 입을 뗐다. 아주 심각한 표정이었다.


“적응과 타협은 다르잖아.”


“그 두 개가 달라?”


“그냥 내 느낌에는 달라. 부정을 생각해 봐. 부적응은 내가 꼭 해야만 하는데 하지 못한 일이라 내가 잘못한 것 같은데, 비타협은 내가 꼭 지켜야만 하는 일을 끝까지 지켜낸 기분이라 멋있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는 적응하지 못한 게 아니라 타협하지 않은 거야. 기대를 하고 왔든 기대를 하지 않고 왔든, 우리 안에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거지. 나는 그렇게 생각할래.”


“왠지는 모르겠는데, 너 방금 좀 수학도 같았어.”


재준은 씩 웃어 보이더니 물었다. “너는 왜 수학과에 왔어?”


“글쎄. 다른 과목은 재미가 없어서 억지로 했는데, 수학은 곧잘 따라갔거든. 그래서 자연스럽게 수학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 너는?”


“나? 멋있잖아. 수학과.”


“그게 다야?” 재준은 눈썹을 추켜올리며 자랑스러운 듯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너 정말 이상한 놈이구나.”


“너도 만만치 않거든?” 재준은 술잔을 들며 말했다. “이상한 놈들을 위해 건배. 아, 아니다. 우리는 정상이야. 지극히 정상이라고.” 재준은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이상한 세상을 살아가는 두 정상인을 위해 건배.”

우리는 술잔을 부딪쳤다. 재준은 동동주를 한 번에 들이켜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를 둘러보니 어느새 사람들로 거의 가득 차 내부가 흥성거렸다. 모인 사람들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크게 떠들고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벽에 쓰인 글자들을 훑어보았다. 대부분 굵은 검정 펜으로 쓰였지만, 개 중에는 얇은 볼펜으로 쓰인 글도 있었고 굵은 펜이 지나고 번져서 읽을 수 없는 글도 있었다. 딱히 눈에 띠는 내용은 없었다. 재준이 돌아와 앉았다.


“뭘 그렇게 봐?”


“그냥 낙서.”


재준은 벽면을 채운 수많은 글씨들을 훑어보았다. 문득 어디선가 시선이 멈췄고, 흥미로운 듯 바라보았다. “여기 여자 친구랑 헤어졌다고 쓴 사람도 있다.” 나는 재준이 바라보는 곳을 대충 같이 보며 어색하게 미소를 띠었다. 재준이 물었다. “너 여자 친구 없는 거지?”


“응, 없어.”


“영수, 너 진짜 미팅 한 번 안 할래? 진짜 괜찮은 친구 있는데.”


“아니, 됐다니까. 어떻게 너는 만날 때마다 물어보냐.”


“내가 그랬나? 너 진짜로 관심 없어? 사귀기는 해 본 거야?”


“한 번. 고등학교 1학년 때, 잠깐.”


“오.” 재준은 감탄하듯 말을 길게 이었다. “왜 헤어졌어?”


“나보고 재미없다던데.” 재준은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너는? 많이 만나봤어?”


“웃지 말고 들어.” 재준은 잠시 말을 뜸들이다가 속삭이듯 말했다. “나 여자친구 사귄 적 없어.”


나는 상당히 당황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럴 수도 있지. 우린 아직 어리잖아.”


“뭐가 어려. 스물인 걸. 사실 이것도 똑같아. 대학 가기 전에는 공부에 방해되니까 연애하지 말라고 해서 그래. 나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그대로 따른 거야.”


“너 지금이랑 다르게 엄청 모범생이었나 보다.”


“그런 척 한 거지, 뭐. 사실은 전혀 아닌데, 내 안에 욕구가 들끓는데도 계속 참았던 거지. 나는 안전하고 허용된 세상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걸 꺼내놓고 싶었어.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는 않았거든.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도 싫고. 근데 고등학생 때는 그런 시기가 아니지. 공식적으로는 아무도 그런 걸 허용하지 않잖아. 딱 그런 기분이야. 다들 교복을 입고 있는데 어느 날 나는 수영복을 입고 싶은 거야. 근데 그럴 수 없어. 다 교복을 입고 있거든. 하지만 내 옷장 한 편에는 항상 수영복이 있는 거야. 나는 매일 아침 그 수영복을 보고 다시 옷장을 닫지. 그리고 교복을 입어. 내가 하는 말 무슨 말인지 알지?”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아.”


재준은 파전을 입에 넣고 금방 삼키더니 말을 이었다. “나는 기다렸던 거야. 뭐든 입어도 괜찮은 때가 오기를. 그게 다른 사람한테 이상하게 보이거나 방해가 되지 않을 때가 오기를 기다렸어. 그리고 그때가 모두 대학이라는 듯이 말하니까. 나는 기다렸던 거지. 근데 막상 와서 보니까 아무도 수영복은 안 입어. 다들 교복이랑 대충 비슷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 같다니까. 수영장에서는 수영복을 입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이 주점에서 수영복을 입고 있으면 그냥 미친놈 되는 거지.”


“그래서? 이제 수영복은 입지 않겠다 이거야?”


“아니. 이제는 그럴 수 없지. 지금까지 참아 왔잖아, 옷장에 숨겨두기만 하고. 이제 나는 수영복을 입고 그 위에 교복을 입어.” 나는 재준의 몸을 투시하듯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재준이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말을 붙였다.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아니 아무것도.”


재준은 나무라듯 말했다. “거짓말 마. 너 방금 상상했지? 수영복이랑 교복은 다 비유라고.”


“알아. 그래도 교복 입고 그 위에 수영복 안 입어서 다행이야.”


재준은 입모양으로만 내게 심한 욕을 하는 듯이 중얼거리다가 곧 서글서글한 눈웃음을 지었다. “아무튼 나는 그래. 대학에 들어오면 뭔가 세상이 다 바뀌고 내가 마음껏 뛰놀아 다녀도 안전한, 그런 곳에 도착하는 줄 알았어. 근데 그때나 지금이나 완전히 똑같아. 세상은 변함없이 똑같다고. 나도 변함없이 똑같고.”


재준의 유쾌한 표정이 사라지고 씁쓸한 눈빛이 남았다. 우리는 동동주 항아리 하나를 천천히 비우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와 계속 술잔을 기울였다. 우리는 취했고, 나는 재준의 자취방에서 잠을 잤다. 취중에도 내가 처음 시도하는 외박에 불호령을 내릴 어머니의 목소리가 선득 들렸지만, 그것까지 신경 쓰며 몸을 가눌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나는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재준은 앓듯 괴로운 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나는 대충 세수를 하고 재준의 집에서 나왔다. 이른 아침의 찬 공기와 숙취가 섞여 세상은 금방이라도 종말이 올 것처럼 희부연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에 어머니는 집에 없었다. 거실 한 쪽에는 기도용 작은 상이 접혀 있었고, 그 위로 햇살이 들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집에 들어왔다는 연락을 남기고 물을 엄청 마셔댔다. 그리고는 다시 잠을 청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자 숙취가 거의 가셨고, 그제야 몸을 조금씩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어머니에게서는 걱정과 달리 ‘알았다.’라는 짧은 답장이 와 있었다. 나는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는 매운 라면을 하나 끓여 끼니를 때웠다. 그리고는 누워서 저녁까지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집에 오자마자, 곧바로 노크도 없이 방에 들어왔다. 나는 어머니의 질책을 감내하기 위해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별일 없냐면서 다음에는 외박할 때 미리 연락만 남겨주라는 간단한 요구를 하고 방을 나갔다. 집요하게 어젯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요구할 줄로 알았지만, 예상과는 다른 어머니의 반응에 나는 어리둥절하여 멍하니 다시 누워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갑자기 다른 세상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나에 대한 어머니의 대우가 갑자기 바뀐 듯도 했고, 내가 조금 나이든 느낌까지 들었다. 나의 위치가 어제보다 높이 오른 기분이었다. 미세하게 남은 숙취마저 높은 곳에 올라 느끼는 현기증처럼 실감됐다. 나는 창가로 다가가 언덕 아래에 동네를 바라보았다. 낯설고 싱숭생숭하면서도 위태로운 그 기분을 만끽하며 발소리를 죽이고 방 안을 돌아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