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의 교점 # 21

by 청화

비는 금요일까지 이어졌다. 외출을 준비하면서 저녁부터는 비가 그치기를 바랐지만, 비는 보란 듯이 쏟아졌다. 나는 뒤늦게 빨간색 우산을 찾기 시작했다. 신발장 구석, 그 안에는 어머니가 주워 온 우산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최대한 손을 대지 않고 빨간색 우산을 찾고 싶었지만, 다른 색 우산만이 눈에 들었다. 나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우산을 하나씩 꺼내 들췄다. 빨간색 우산은 맨 아래에 구겨져 있었다. 끝이 조금 해졌고 여기저기 얼룩이 들어 있었다. 나는 마지못해 그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그나마 다행으로 빗줄기가 차츰 가늘어졌다.

건대입구역에 약속 시간 5분 전에 도착했다. 나는 개찰구를 나와 2번 출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비가 내리는 탓에 역 안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고, 출구로부터 꿉꿉한 바람이 불어 왔다. 모두가 우산을 들고 있었다. 가지각색의 우산들 속에서 나는 빨간색 우산을 지닌 사람들을 몰래 훔쳐보면서 적당히 빈자리에 섰다.


5시 정각이 되었다. 누군가는 친구를 만나 반갑다는 듯이 발을 구르며 높은 고성을 지르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조용히 손을 잡고 출구로 나갔다. 개찰구에서 수시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럴 때마다 물기 어린 마찰음이 발밑에서 끽끽 울렸다. 누군가는 역 안에 남았고, 또 누군가는 곧바로 출구를 나갔다. 역 안의 사람들의 일부가 사라졌고, 또 다시 그 빈자리가 채워졌다. 역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우리는 어색하고 미묘한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다. 인파 속에서 빨간색 우산 몇 개가 사라졌고, 다시 빨간색 우산이 등장했다.


5시가 넘었다. 집으로 돌아갈까 싶었다. 장마가 시작된 순간부터 우산으로 사람을 찾을 수 없는 일은 예견된 것이었다. 비가 오면 모두가 우산을 쓰기 때문이었다. 나는 역 안에 오랫동안 서 있는 빨간색 우산의 주인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누구를 찾아야하는지도 모르면서 사람을 찾아 헤맸다. 외모가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었고, 취향이 아닌 사람도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우스웠다. 마치 빨간색 우산의 주인 중에 한 명을 고를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 것이 바보 같았다. 어쩌면 상대도 인파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하나를 점찍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는 했다.


재준에게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려다가 이내 체념했다. 나는 불쾌한 비교와 은밀한 색출을 그만두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저 구경했다. 내가 여기 서 있는 이유도 아득히 멀어졌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내 앞을 지났고, 사람들은 교체됐다. 물기 어린 소리만이 반복됐다. 나는 찾기를 멈추고 기다렸다. 한결 마음이 편했다. 상대는 어떤 식으로 나를 알아보고 다가올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빨간색 우산을 꼭 쥐었다.


20분이 지나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도 연락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상대는 이미 집으로 돌아갔을지도 몰랐고, 애초에 약속에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나는 이곳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앞으로 수많은 우산이 지나갔다. 저녁이 가까워오면서 역사 내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두터운 인파가 출구로 계속해서 흘러나갔다. 그때,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우산 하나가 펴졌다. 빨간색 우산이었다. 역 안에서 유일하게 펴진 우산이었다. 비가 오지 않는 곳에서는 아무도 우산을 펴지 않는 법이었다. 그 우산에게는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빨간색 우산의 주인은 반대편 벽에 서 있었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가려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출구로 향하는 사람들을 가로질러야 했다. 사람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치며 걸어갔지만 쉽지 않았다. 내가 가려는 방향은 사람들의 방향과 수직을 이루었다. 나는 타인의 길을 막아설 때마다 고개를 대충 숙이면서 한 걸음씩 횡단했다. 붉은 우산은 여전히 펴 있었다. 주인의 머리카락이 사람들 사이로 언뜻 보였다가 사라졌다. 갑자기 빨간색 우산이 움직이더니 사람들 머리 위로 섞여 들어갔다. 나는 그를 놓치지 않으려 고개를 갸웃대며 사람들 사이로 시야를 확보했다. 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일부가 사람들 사이로 보였다가 사라졌다. 빨간색은 여전히 위에 떠 있었다. 그와 나 사이는 점점 멀어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었다. 나는 사람들의 어깨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어설프게 외쳤다.


“저기요.”


생각보다 작은 목소리였고, 아무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내 옆의 사람들만이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계단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서서히 멀어졌다. 나는 목소리를 높여 다시 불렀지만 우산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깊이 고민하지 않고 팔을 번쩍 올렸다. 황급히 빨간색 우산을 높이 폈다. 내 곁을 지나는 사람들이 우산을 흘겨보았다. 저 아래 빨간색 우산은 아랑곳 않고 사람들에 휩쓸려 나아갔다.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수빈!”


나도 놀랄 만큼 큰 소리였다. 어쩐지 내가 충동에 휩싸인 채로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상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덕분에 빨간색 우산은 공중에 정지했다. 행인들은 그 우산을 피해 몸을 돌려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사람들 위에 떠 있던 빨간색 우산은 천천히 반대로 돌아왔다. 나는 그 우산을 응시하며 우산을 든 채로 다가갔다. 두 개의 우산은 서서히 가까워졌다.


그녀는 몸에 붙는 진청색 청바지를 입고 검은색 긴 장화를 신었다. 하얀색 티셔츠에 검은색 가방을 메고 있었다. 머리는 길었고 가볍게 볼륨이 들어가 아래로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었다. 눈은 컸는데, 코는 작았다. 피부는 창백할 정도로 하얬다. 그녀의 눈은 날씨 탓인지 지쳐 보이기도 했고 슬퍼 보이기도 했다. 그 눈빛으로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우산을 접었다. 나도 다급히 우산을 내려 정리했다. 그녀가 엷은 미소를 짓고는 인사를 했다.


“재준, 맞죠? 안녕하세요.”


“아, 그게 저는 재준이 아니라,” 계단으로 내려가는 사람들로 주변은 정신이 없었다. 길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자리 옮겨서 말씀 드릴게요.”


수빈은 의아한 듯 나를 보았다. “오래 기다리셨죠?”


“서로 오래 기다린 것 같은데요?”


잠시 수빈의 눈길이 방황했다. “어떻게 알아보셨어요?”


“갑자기 빨간색 우산을 펴서요.”


“저는 이미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저도 사실 그랬어요.”


“근데 왜 기다리셨어요?”


나는 눈을 굴렸다. 적당한 이유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 서로 만났네요.” 나는 방금 기억난 듯이 준비한 질문을 했다. “좋아하는 음식 있어요? 뭘 좋아할지 몰라서…….”


“비빔밥 좋아해요?”


“네? 네. 좋아하죠.”


“그럼 근처에 한식집 있어요. 거기로 가요.”


재준이 추천해준 파스타 가게가 있었지만, 그녀의 뜻대로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우리는 출구로 나가 각자 우산을 폈다. 그녀가 앞서 걸었고 나는 따랐다. 그녀가 언제라도 내게 말을 걸까봐 그녀에게 귀를 기울였고 그녀와 나란히 걷기 위해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는 말이 없었고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의 우산이 맞부딪혔다.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 떨어져서 걷기도 했고, 일렬로 줄지어 걷기도 했다. 나는 그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주의를 집중했지만, 그녀는 나와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걸어가는 듯했다. 나는 모르는 사람을 졸졸 따라가는 기분이었다. 빨간색 우산만이 나를 착실하게 인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