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시간 / 인격 011
가나에서 혼인 잔치가 열렸다(요 2장).
예수님은 그곳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표적을 행하셨다. 요한복음에서 소개하고 있는 일곱 개의 표적 가운데 첫 번째 표적이다. ‘표적’은 ‘표시’라는 뜻을 가진 ‘세마’에서 유래한 말로, ‘이적’이나 ‘기적’과 비교할 때 ‘증명(증거)하다’라는 의미가 더 뚜렷이 내포되어 있다.
사도 요한은 이 사건을 통해 증명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 사건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메시아)라는 사실이다. 그 증명대로라면 우리는 그분을 주님으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어야 한다(20:30-31).
그런데 그 잔치에서 눈여겨볼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하인들이다. 그들은 마리아로부터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그분이 어떤 말씀을 하실지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예수님이 그들에게 입을 여셨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7절). 여기에서 ‘항아리’는 돌로 만든 것으로,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 ‘정결 예식’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지킨 의식적인 규례로, 식사하기 전후 항아리에 있는 물로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을 말한다. 하인들은 그분의 지시에 따라 항아리 아귀까지 물을 채웠다.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이 다 채워지자 예수님은 다시 지시를 내리셨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8절). ‘연회장’은 잔치를 진행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이 사람의 임무 가운데 하나는 잔치에 제공된 음식을 먼저 맛본 후에 하객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이다. 따라서 연회 석상으로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은 먼저 그 음식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어야 하였다.
하인들은 그분의 지시에 따라 그것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다. 그러자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신랑을 불러 이렇게 칭찬하였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10절). 하마터면 떨어진 포도주로 인해 낭패를 당할 뻔하였는데, 오히려 신랑은 혼례 잔치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을 받았다.
하인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가슴으로 옮겨 심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하인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게, 마리아가 지시한 대로, 그분이 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는 모습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지시에 토를 달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모든 하객이 이미 입장한 상황에서 손 씻을 물, 즉 정결 예식에 사용하는 물을 항아리 여섯 개에 가득 채우는 일은 여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이 언제 포도주로 변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만약 연회장에게 갖다 주는 과정에서 그렇게 되었다면, 그것을 지시하신 예수님께 토를 달거나 이의를 제기할 만도 하다. 하지만 본문 속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소개되어 있지 않다.
예수님은 첫 번째 표적을 행하실 때 자기 혼자 하시지 않고 하인들과 더불어 하셨다.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온전히 순종한 하인들은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광경을 목격하였고, 그 첫 번째 표적의 증인들이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경험하였던 것이다.
만약 그들이 그분이 내리신 두 번의 지시에 토를 달거나 이의를 제기하면서 그분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은혜의 잔은 그들을 지나쳐서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순종하되 백 퍼센트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