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시간 / 소망 002
사도 베드로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등지에 흩어진 교회, 즉 그곳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가 <베드로전서>이다. 이 지역들은 흔히 ‘소아시아’로 불리는데, 베드로는 그곳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흩어진 나그네’로 불렀다.
이 편지는 기원후 64년경에 쓴 것인데, 그해 7월 19일 대화재가 로마를 덮쳤다. 수에토니우스 등의 역사가나 <쿠오바디스>를 비롯한 여러 문학 작품에 따르면, 그 당시 네로 황제가 자신이 계획한 신도시를 만들기 위하여 로마 시내를 불태웠고,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면서 시를 읊었다고 한다. 그 일로 로마 시민들은 네로에 대한 의혹과 불만이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네로는 그런 의혹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하여 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가하고 엄청난 박해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받은 고난은 그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만으로도 세상의 표적이 되어 애매한 고난을 받기 일쑤이다. 마치 ‘낯선 사람’이나 ‘외국인’, 그리고 ‘난민’이 이국땅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런 대우가 주어진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고난은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객관적인 표지가 되기도 한다.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들도 그것을 피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그들의 반응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고난을 크게 기뻐하였다. 베드로는 그들이 그냥 기뻐한 정도가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였다”라고 적고 있다(벧전 1:6,8).
고난 가운데 처할 때 이렇게 기뻐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반대로 반응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비교해 볼 때 더더욱 그렇다. 출애굽기와 민수기 등을 읽다 보면 하나님의 긍휼로 애굽을 빠져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하였던 모습을 볼 수 있다. 홍해 앞에 섰을 때, 광야에서 물과 식량이 없었을 때, 가나안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를 들었을 때, 그리고 여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사사건건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무수히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불평과 원망만 늘어놓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을 믿지 않고 멸시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에게 이렇게 진노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민 14:11).
그들이 불평과 원망으로 일관하였던 두 번째 이유는, 종살이하였던 애굽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애굽에서의 생활이 더 좋게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한탄까지 하였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하니”(민 11:4-6).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 뒤에 들어 있는 원인을 뒤집어보면, 소아시아 지역의 나그네들이 고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애굽이 상징하고 있는 이 땅이 아니라 가나안이 상정하고 있는 하늘나라(천국)를 바라보았다. 또 보지 못하였고 지금도 보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만 사랑하고 믿었다. 그들은 그런 모습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라 자신들을 본받으라고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